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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헌터' 대단하고 담대한 마지막 반전




볼 만한 드라마가 없는 근래에 '시티헌터'는 참말이지 대단한 드라마였다. 마지막회에서까지 몰아치는 반전을 보면 대담하기까지 한 드라마였다고 하겠다. 드라마는 마지막에 다시 이상으로 돌아가 시청자들에게 꽤나 재밌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르면 이윤성의 생사는 더 이상 중요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어진다.

마지막회에서 이윤성은 어릴 적과 같은 무모한 행동을 반복하지 않고 냉철하게 대처한다. 김영주를 천재만에게 불러들인 사람이 이진표라는 사실을 알고 이진표에게 전화를 걸어 김영주를 죽인 건 이진표나 다름 없다고 얘기하나 이진표는 죄가 없어도 얼마든지 죽을수가 있고 천재만은 곧 죽는다고 전화를 끊는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가 상황을 부연설명해 준다.

이윤성이 항만에 도착했으나 이미 천재만은 사망하고 상황이 종료된 후다. 이윤성은 차 안에서 기밀문서를 들쳐보며 싹쓸이 계획과 그 계획을 짜고 실행한 사람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최응찬의 이름을 확인한 이윤성은 비로소 이진표가 자신을 그렇게도 혹독하게 훈련시킨 연유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채고는 갈등한다.

사무실에서 칼에 묻은 피를 닦고 있는 이진표를 찾아온 이윤성은 김영주의 피도 닦아내라며 천재만의 손을 빌려 김영주를 죽게 만들었으니 천재만과 다를 게 없다고 몰아세운다. 이윤성은 감히 천재만과 똑같이 취급하냐며 일어나 칼을 겨누는 이진표에게 친부를 죽게 만드는 복수를 못할 거 같다고 한다. 친부라서가 아니라 곁에서 지켜봤더니 꽤 훌륭한 대통령으로 보였기 때문이란다.

 
 

 
 


여기서 굉장한 반전 시나리오가 또 한번 펼쳐진다. 줄곧 최응찬은 뭔가 도덕적일 것 같은 분위기로 이끌어 오던 드라마가 대통령 최응찬의 가면을 낱낱이 벗겨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서용학이 시티헌터의 다음 처단 대상자가 대통령 최응찬인데 28년 전의 싹쓸이 계획을 직접 세웠고 진두지휘를 했던 사람이 바로 최응찬이었다는 기자회견을 한다.

그러자 최응찬도 긴급 기자회견을 하게 되는데 싹쓸이 계획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잡아 떼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서용학이 시티헌터가 마지막으로 대통령을 노린다고 했었다는 질문에도 그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부인한다. 그런데 김영주 검사가 기밀문서를 찾기 위해 수사하던 중에 사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하지 못한다.

최응찬은 김영주의 빈소를 찾아 방명록에 서명을 하는데 차 안에서 최응찬의 기자 회견을 목격한 이윤성이 들어와 최응찬에게 인사를 한다. 이때 장필재 수사관이 일어나 이윤성에게 다가가 '김영주 검사거 너를 쫓다가 이렇게 됐는데 여길 왜 왔냐'며 '시티헌터는 너'라고 몰아세우고 나라도 꼭 잡고 말거라고 말한다. 현직 수사관이 이따위 망발을 했다면 당장 잘라야 하나 드라마적 상황이기에 가능하다. 장필재의 말은 피의사실공표죄(被疑事實公表罪)에 해당한다.

차 안에서 최응찬의 기자 회견을 야외 멀티 비전을 통해 알게 된 이윤성은 서서히 최응찬의 이중적인 행보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최응찬의 대선자금으로 천재만의 뭉칫돈이 들어갔고 그 댓가로 천재만이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김상국으로부터 듣는다. 최응찬의 집무실로 찾아온 이윤성은 기자회견 내용이 사실이냐고 묻는다. 이에 최응찬은 사실이라고 대답하며 대통령이란 자리의 고충을 토로하지만 이윤성은 방법과 방식이 잘못됐다고 해도 그것이 대의냐고 물으며 돌아간다.

 


김상국으로부터 사학법 개정안 통과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이용태 의원이라는 사실을 들은 이윤성은 최응찬과 이용태가 만나는 자리로 잠입한다. 이용태와 정치적 뒷거래를 하는 것을 목도한 이윤성이 최응찬 앞에 나타나자 최응찬은 대의명분이 필요할 때가 있다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윤성은 대의를 이유로 희생을 강요하고 비리를 덮을 수 없으며 기밀문서를 공개할 뜻을 비추며 그것의 자신의 대의라고 말하고 돌아서 나간다.

이윤성은 최응찬이 대통령 후보시절 참모로 보이는 사람을 찾아가 최응찬이 직접 거래한 장부의 존재를 알고 대통령 사저로 잠입해 뒤지기 시작한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최응찬은 이윤성이 올 것을 직감하나 사학법 개정안 통과 후이기를 바란다. 이윤성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눈치챈 최응찬은 베개 속에 감추어둔 장부를 꺼내 이윤성에게 내보이며 이유를 물어본다.

"믿음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선출한 정치인들이 양심껏 정치를 해줄거란 믿음. 나라를 지키려 입대한 군인들을 국가가 지켜줄거란 믿음. 대학이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인재를 만들어줄거란 믿음. 기업이 근로자들과 고통과 성장을 함께 해줄거라는 믿음. 그리고 남포 앞바다에서 조국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을 스물한명의 믿음. 그 믿음을 지켜주는게 대의라고 생각합니다."

최응찬은 싹쓸이 계획을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정치를 하는 동안 불법적으로 받을수밖에 없었던 선거자금들을 기록한 장부를 건네며 뜻대로 하라고 한다. 이윤성이 장부를 받아 들고 나가려는데 최응찬이 '윤성아, 널 이렇게 살게 한 아버지가 미안하다'라고 말하자 이윤성은 순간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나간다.

 

 


이윤성이 그동안 겪었을 갈등이 사실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하지만 이윤성은 이경환, 서용학, 김종식, 천재만 모두 비리가 있었기에 처단했던 것이므로 친부인 최응찬의 비리를 밝히기로 결심했다. 친부에게 꼭 그렇게 해야겠냐는 김나나의 말에 이윤성은 '김영주도 아버지라서 아버지니까 덮어주고 은폐하고 그랬을 것인데 그게 정말 아버지를 위한 거였을까?'라고 대답한다. 이윤성은 이진표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았지만 독립된 인격체로서 김영주의 갈등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윤성은 기밀문서와 최응찬의 비밀 장부를 복사해 각 언론사로 보내는데 그 시각 국회에서는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된다. 그러나 최응찬의 비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발의하고 여론은 들끓는다. 보좌관이 이 소식을 전하자 최응찬은 진작에 이렇게 됐어야 했다며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보좌관에게 말한다. 최응찬이 끝까지 이리도 당당하고 뻔뻔한 것은 현실에 즐비한 그런 정치꾼들이 말하는 대의명분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진표와 이윤성은 각자 총에 총알을 장전하며 마침내 최후를 준비한다. 이진표는 최응찬에게 전화를 걸어 심판을 받으라고 말하고 최응찬은 이진표를 막지 않는다. 이진표는 문을 열고 들어서나 앞에는 최응찬이 아니라 이윤성이 나타나 이진표를 막아 선다. 이진표는 28년간의 복수를 막을수는 없다며 총을 뽑아 들고 이윤성도 이진표에게 총을 겨누고 대립한다. 28년간이나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두 사람은 최후의 복수를 남겨둔 순간에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대치하게 된다.

"친아버지를 쏴야 하는 잔인한 복수 하고 나면 잘 살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여자한테 총을 겨눠야만 했던 내가 아무렇지도 않을 거 같아요? 날 위해 다리까지 잃으신 아버지한테 맞서야만 하는 내가 어떨 거 같애요? 날 한번쯤은 생각해서 멈춰주길 원했어요. 전 전 그냥 평범하게 아버지랑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구요. 근데 다 꿈이었어요." 이렇게 말하고 이윤성은 자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이게 제 운명이라면 제 손으로 끝내겠다'라고 말하고 이진표는 고통스러워 한다.

 
 

 
 


이때 최응찬이 나타나고 김나나가 이진표에게 총을 겨누며 그만 멈추라고 한다. 이진표는 최응찬에게 약속한 목숨 받으러 왔다 말하고 최응찬은 김나나를 밀쳐내며 이진표의 복수를 받아들이려 한다. 그런데 이윤성이 몸을 던져 이진표가 쏜 총을 대신 맞고 쓰러지고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 이진표도 김나나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지게 된다.

총소리에 놀란 경호원들이 몰려 들어오자 이진표는 이윤성에게 총을 겨누며 소리친다. "허튼 수작하면 여깄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 난 싹쓸이 계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이진표다. 조국의 배신을 당해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위해 이경환 천재만이를 내 손으로 죽였고 김종식이를 육교에서 떨어뜨렸으며 서용학이를 검찰에 보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최응찬이를 죽일거다. 내가 바로 시티헌터다."

이진표는 먼저 탄창을 빼고 경호원들 쪽으로 총을 겨눔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혼자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죽음으로써 이윤성은 보호하겠다는 양부의 부정이다. 총을 맞고 바닥에 쓰러진 이진표와 이윤성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손을 뻗어 붙잡고 그렇게 이진표는 최후를 맞이한다.

이진표는 가장 잔인한 복수를 하겠다며 이윤성을 데려다 혹독한 군사훈련을 시켰지만 이진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다름아닌 이윤성이었다. 이 사실을 알기에 이윤성은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이진표를 멈추게 하려고 했다. 드라마적 상황이 아니라면 여기서 최응찬과 김나나가 어설프게 등장하지만 않았어도 이윤성의 의도는 성공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윤성에게도 가장 소중한 사람이 이진표였으며 그냥 평범하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이진표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어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를 하고자 했던 이진표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로 잔인한 복수는 이루어진 것이기도 했다. 김영주가 죽음을 맞이하던 그 순간에 김종식은 의식을 회복하고 김영주의 장례식장을 지키게 된다. 세상에 이보다 더 잔인한 복수가 있을까? 결국 이진표가 꿈꿨던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란 애꿎은 희생자를 만들었을 뿐이기도 하나 법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국가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로서 드라마가 말하는 잔인한 복수의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김나나는 부친상을 치루고 청와대를 떠났으며 최다혜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신은아와 고기준은 혼인을 한다고 청첩장을 돌리러 다니며 이경희와 배식중은 미국으로 건너가 한식당으로 대박 낼 꿈을 꾼다. 그 어마어마한 일들이 언제 있었냐 싶게 또 다시 새로운 날들은 시작되었다. 식물원에 들른 김나나는 이윤성과 조우하고 이윤성과 김나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현실에서는 식물원으로 보였는데 드라마적 상황에서 공항으로 설정한 거라면 이윤성의 생사는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윤성의 생사는 더 이상 중요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그런 상황이라고 하겠다.

드라마 '시티헌터'는 김영주 검사를 죽이고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나서는 등 참으로 대단하고 담대한 드라마다. 대통령의 양심선언 정도로 끝내지 않겠나 정도만 예상했었지 마지막에 소위 몸통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건드리고 나서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김영주 검사를 죽인 것은 현실이라면 대통령을 겨냥하고 나선 것은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원작이 있다고는 하나 현실의 민감한 문제를 직접 건드리며 소재를 전환시킨 획기적이라고 할 만한 이런 드라마를 당분간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