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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헌터' 반역죄로 몰릴 텐데 해피엔딩 되나?




드라마에서 이진표와 이윤성은 5인회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며 대단히 정의로운 인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들의 행위는 여러가지 범죄를 총합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를 보면 이 두사람은 불법 무기 소지에서부터 주거 칩입, 도청, 절도, 약취, 폭행, 상해,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죄 행위를 하고 있는데 과속이나 차선 변경 같은 교통법규 위반은 범죄도 아닐 정도다. 이러한 범죄 행위를 통해서 과거의 복수를 정당화하고 미화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범죄 행위 중에서 한두가지만 엮어도 이들을 제압할 명분은 충분하다. 그런데 위협을 느낄 자들은 사회의 주류들이고 더군다나 숨겨야 할 은밀한 비밀을 공유한 채 뭉친 자들이기에 아마도 다른 대응 방법을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반란이나 내란의 죄목을 씌우거나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 고무했다고 몰아세워 제거할 음모를 꾸밀 수도 있다. 이진표는 북한군 장성의 목을 따는 임무를 받고 북한에 잠입했던 사람이나 그렇게 몰릴 수밖에 없는 약자다.

이진표는 박무열의 희생으로 혼자 살아남아 최응찬을 찾아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지만 정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쿠데타 세력인 신군부가 조작된 '북괴 남침설'을 내세워 집권 시나리오인 '시국수습 방안'을 기획하고 실행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던 때에 젊은 청춘들의 갈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국과 정권을 분리해서 명쾌하게 정리하기가 난감하기도 했었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표현대로 '체육관 선거 출신 소리를 듣는 각하'의 정당성 없는 정권을 유지하는데 동원되고 싶지도 않았던 딜레마였다.

 


사실 드라마 초반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를 한다고 했을 때 스토리를 어떻게 끌어가겠다는 것인지 내심 궁금했었다. 이윤성과 이경희의 인생을 본인들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망가뜨리는 것이 과연 잔인한 복수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lex talionis(talio 법칙) 즉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복수를 전제로 이른바 사회적 요인을 암살하는 행위를 과연 어떻게 그려낼 것이며 얼마나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기대감이었다고 하겠다.

드라마는 반드시 응징한다는 이진표식의 복수와 복수한다는 데에서는 동감하나 이진표와는 달리 법의 심판에 맡긴다는 이윤성식의 복수를 대비시킴으로써 법과 주먹을 얘기하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 명제와는 선을 그어 놓고 법의 힘을 믿는다는 방향으로 가는듯해 보인다. 법은 멀다는 이진표와 반드시 법으로 바로잡아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김영주 그들 사이에 법을 믿어 보고 싶어 하는 이윤성을 대비시킨 다음에 이윤성과 김영주의 대결 구도로 압축해 가고 있다.

드라마는 어쩌면 이윤성을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김영주가 이윤성을 놓아 주는 방향으로 진행시키지 않을까 예상되고 그렇게 법과 주먹이라는 명제에 대한 결론을 보류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일도양단하듯 명쾌하게 결론을 내기가 쉬운 명제는 아니다. 현실에서는 법도 주먹도 멀기만 해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조차도 사치로 들릴 사회적 약자들도 쌔고 쌨다. 드라마이기에 시티헌터라 불리는 사람이 나타나 약자를 도우며 법을 얘기하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김영주가 정의로운 검사로 나오나 현실에서는 이렇게 사명감이 투철한 검사가 몇이나 있을지 검찰 조직을 보면 회의적이다. 한 재벌의 자손이 폭행의 가해자였을 때에 마치 조폭의 무리들처럼 재벌의 옆에 도열해 있던 다수의 변호사들이 있었던 것에서처럼 그들에게서도 법 정의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고 미국 인사들의 발언의 진의를 훼손하면서까지 '체육관 선거 출신 소리를 듣는 각하'를 지지한다는 오보를 내보냈던 언론이 그 역할을 해줄 거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역시 홍길동식 해피엔딩으로 가나?

이전 글에서 시티헌터에게서 홍길동이 연상된다고 언급했었는데 18회에서 홍길동을 연상하기에 충분한 장면이 나온다. 이윤성은 천재만이 출국한다는 사실을 알고 잡으러 나가면서 김영주에게 전화를 걸어 네시까지 검찰청 앞으로 오라고 한다. 김영주는 시티헌터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 특공대를 배치하고 시티헌터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때 복면을 한 누군가가 다가오고 경찰 특공대가 그를 덮쳐 복면을 벗기려 하는데 그는 시티헌터가 아니라 시티헌터를 만나러 온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데 복면을 쓰고 시티헌터를 만나겠다며 나타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복면을 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함으로써 검찰청 앞은 일대 혼란이 벌어지게 된다. 이 많은 사람들이 검찰청 앞에 모이게 된 것은 이윤성의 계략이었다. 이윤성은 '네시에 검찰청에 나타날테니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마스크를 쓰고 모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라고 배식중에게 지시했고 그 글을 보고 모여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홍길동의 둔갑술을 응용한 작가의 깜찍한 발상이라고 하겠다. 임금이 홍길동을 잡으라는 체포령을 내리자 전국에서 잡혀온 홍길동이 3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시티헌터를 체포하기 위해 기다리는 김영주 앞에 수많은 시티헌터가 자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혼란을 틈타 이윤성은 잡아온 천재만을 내려놓고 사라지는데 김영주가 이윤성을 뒤쫓아 가면을 벗기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김영주가 이윤성을 체포해서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 같지는 않다. 마치 홍길동의 도술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신출귀몰한 이윤성의 무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김영주가 의도적으로 이윤성을 놓아줄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김영주는 법으로 약자를 도울 수 있다는 확신에 차있고 법의 힘을 믿는데 자신은 차마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이윤성이 했었다는 사실이 혼란스러울 것이고 이윤성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만이 과연 정의인가에 대해 딜레마를 겪을 수도 있겠다.

사실 이진표는 5인회에 속한 자들을 법의 심판으로 끝내선 안되고 죽여야 한다고 하지만 자기를 죽이러 온 천재만의 수하들에게 칼을 뽑지만 칼등으로 치는 장면들에서 보듯이 5인회의 수하들까지 죽일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천재만을 무너뜨리기 위해 회사를 부도내지만 이윤성의 활약으로 수많은 실직자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아냈다. 두사람의 합작품 같은 이 장면은 눈여겨볼 장면이지만 이런 이상향은 현실에서 존재하기가 어렵다고 하겠다.

 


결국 예상되는 것은 홍길동식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경희가 배식중을 통해 이윤성에게 건네준 수놓은 손수건을 매개로 이윤성과 최응찬은 친부자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리 드라마라고는 하나 이진표와 이윤성의 행위는 범죄이고 그것을 덮고 살 수는 없다. 홍길동이 병조판서를 내놓고 율도국을 찾아갔듯이 이윤성 또한 떠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된다.

드라마 초반에 이윤성이 엄마의 정을 느끼던 무앙수린이 죽자 이성을 잃고 무리하게 추격하다가 지뢰를 밟게 되는데 이진표가 이윤성을 구하다가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는다. 이 때 이진표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이윤성에게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17년 전 조국에 배신을 당한 스무 명의 목숨이 있었다. 그때 작전 중에 부상을 당한 네 아버지가 날 살리겠다고 날 감싸 안고 대신 총을 맞았다. 그 총알은 네 아버지 심장을 뚫고 내 어깨에 박혔다. 내가 악착같이 사는 이유는 날 살린 너의 아버지를 위해 그들을 복수하기 위해서다. 윤성아, 넌 살아서 너희 아버지와 내 원수의 심장에 총알을 박아라."

그러자 이윤성은 "그래서 날 혹독하게 훈련시킨 거였어요? 복수하라고? 제 친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들을 죽이면 아버지와 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한번 잘 살 수 있습니까?"라며 "나 이제 변할 거다. 이게 내 운명이다" 하고 결심한 후 혹독한 훈련을 감내하게 된다. 18회 방송까지 보고 나니 이윤성이 아버지와 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한번 잘 살 수 있느냐고 말한 것은 아마도 홍길동식 해피엔딩의 결말에 대한 복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진표와 이윤성이 떠나야 할 곳이라면 트라이 앵글이 될 가능성이 크고 김나나도 동행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결말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