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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시티헌터' 출생의 비밀보다 더 기막힌 반전




드라마 '시티헌터'는 볼수록 무지무지한 작품으로 느껴진다. 시청률만을 노린 클리셰의 향연에다가 대충 디스를 섞어 놓은 것에 불과하면서도 잰 체하는 드라마 제작진들을 보면 참으로 꼴같잖다. 이런 연유로 드라마 '시티헌터'가 지난 방송에서 이윤성의 친부가 박무열이 아니라 실은 대통령 최응찬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출생의 비밀이라는 클리셰를 반전의 카드로 꺼내들 때만 해도 그저 그런 드라마로 전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드라마 '시티헌터'가 근래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디스를 사용함으로써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쳐 있었는데 어김 없이 등장한 출생의 비밀이라는 클리셰는 실망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으로 끝낼 것으로 보이던 드라마가 다시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는 반전을 만들어냈다.

이윤성이 대통령 최응찬의 친자라는 드라마적 사실보다는 스토리를 불편한 현실로 되돌려 놓은 전개가 더 어마어마한 반전이 아닌가 생각된다. 친부의 존재를 알게 된 이윤성이 어떻게 복수 시나리오를 그려나갈지 자신의 인생을 엉클어뜨린 양부에게 어떠한 댓가를 치르게 할지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그보다는 드라마가 불편한 현실로 돌아왔다는 그것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복면을 벗겨 이윤성의 실체를 확인한 김영주는 특공대가 뒤쫓아오자 이윤성을 도주할 수 있게 해 준다. 부장 검사의 닦달에도 총을 뺏겨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묵인해 준다. 이윤성이 찾아와 왜 보내줬냐고 묻자 김영주는 이렇게 말한다. "김종식 이사장의 아들 김영주라면 이윤성 너 당장 현행범으로 쳐넣겠지만 생각해 보니까 법이 해내지 못하는 걸 시티헌터는 해내더라고. 나한테 널 잡을 자격이 없었던 거지. 니가 법을 이겼으니까."

김영주는 진세희를 찾아가 이런 말도 한다. 김영주는 진세희에게 이윤성에 대해서 아는대로 말해 달라고 얘기하나 진세희는 화제를 돌리려 하자 김영주는 이윤성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들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검사로서 자존심이 상해. 자꾸 인정하게 되잖아. 나보다 그 자식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잖아. 분하고 화나는데 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법이 졌어. 그 자식한테."

김영주는 천재만의 금고에서 압수한 난 그림에 찍힌 '향일'이란 낙인을 힌트로 해서 대통령 블로그에 올라 있는 난 그림을 비교하면서 이윤성에 얽힌 출생의 비밀을 알아채게 된다. 그리고 이윤성을 찻집으로 불러내 이렇게 물어 본다. "어쨌든 넌 복수를 할려고 했던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사회비리를 바로잡았잖아. 만약 그 비리들이 니 복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어도 이윤성 넌 했을까? 그냥 궁금하더라고. 이윤성이 복수가 없었어도 이윤성이 시티헌터가 될 수 있었는지. 단순한 호기심에서 묻는 거야."

 


그러자 이윤성은 이렇게 대답한다. "목숨 걸고 했던 일이야. 복수도 중요하지만 내가 목숨을 걸었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어? 너라면 고통받고 상처받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있겠냐고." 사회비리를 바로잡는다는 면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의기투합해가는 이 두 남자의 대화는 심장(深長)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상당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눈여겨볼 만하다.

이윤성을 만난 후 김영주는 이진표의 사무실로 찾아가서 말한다. "이윤성은 자신이 시티헌터가 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어.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둘수가 없다고. 그 대답이 맘에 들더라고. 누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를 납치해서 살인법으로 만드는 복수에 비하면. 이윤성의 복수는 지지할 수 있지만 당신의 그 피비린내나는 복수는 용서할 수가 없어."

박무열이 이윤성의 친부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을리 없는데 왜 이윤성을 데려다 키웠는지 알고 싶다고 이진표에게 말하는 김영주는 김나나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주었던 캐릭터와 부합한다. 이진표는 기밀문서 안에 다 들어있으니 찾아내서 국가가 스무명의 목숨을 어떻게 죽이고 덮었는지 밝혀내고 국가도 법정에 세워야 할 거라고 말한다. 김영주는 이진표를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게 만들고 자기 아버지도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말하고 돌아간다.

 

 


그동안 스토리가 전개되어 온 것을 보면 김영주가 이윤성을 체포해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법 정의를 철칙으로 여기던 김영주가 어떤 갈등과 명분으로 이윤성을 놓아줄 것인가가 궁금했다. 김영주가 이윤성을 도주하도록 묵인한 명분이 다소 성글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김영주라는 캐릭터에는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다. 위에 적시한 김영주 검사의 말들을 현직 검사가 했다면 검사의 자질을 문제삼아야 할 정도라고 생각되고 단지 드라마적 상황으로만 보아야 한다.

천재만은 출국하면서 김영주에게 우편으로 보냈던 기밀문서를 찾아오라고 수하들에게 지시하고 되찾는 과정에서 진세희가 부상 당한다. 김영주는 진세희를 병원으로 데려가는데 이윤성에 대해서 얘기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풀기 시작했던 진세희는 넌지시 재혼을 제의한다. 그런데 이 때 기밀 문서를 보고 싶으면 폐차장으로 오라는 이윤성의 문자 메시지를 받게 되고 진세희는 김영주에게 가보라고 한다. 김영주는 재혼하자는 말을 약속한 거라고 다짐시키며 폐차장으로 향한다.

천재만은 기밀문서를 이용해 이진표와 시티헌터를 유인할 계략이었으나 김영주가 기밀문서를 찾기 위해 단독으로 현장에 나타남으로써 천재만으로서도 김영주를 놓아줄수는 없기에 상황은 엉뚱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뒤늦게 이윤성이 도착한 것을 알고 비밀문서의 위치를 문자메시지로 알려주지만 천재만을 막아서다가 김영주는 결국 최후의 일격을 당하고 만다.

 


김영주의 희생으로 기밀문서를 찾아낸 이윤성은 도망가는 천재만과 마주치나 김영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천재만을 쫓지 않고 김영주를 찾아 올라간다. 이윤성은 쓰러져 있는 김영주를 끌어안는데 김영주는 이윤성에게 찾아낸 기밀문서로 국가가 국민들을 어떻게 우롱했는지 밝혀내고 천재만이 도망간 항만을 일러주며 잡으라고 말한다. 이윤성은 손을 뻗는 김영주의 손을 잡아주는데 김영주는 자기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최후를 맞이한다.

일이 먼저이고 사랑에는 서툴렀던 김영주는 진세희와 이혼했고 그 후에도 늘 대립각을 세워왔다. 그런데 시티헌터를 매개로 둘은 화해의 계기를 마련하고 드디어 재혼을 약속하는 단계로 진전되었다. 빨리 올테니 갔다 와서 얘기하자며 돌아서던 김영주의 등짝이 클로즈업되고 서로 돌아서서 미소짓는 장면에서 설마했었는데 그렇게 김영주는 끝내 불귀의 객이 되었다.

드라마에 몰입해서 김영주를 왜 죽이냐고 할 일이 아니다.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보이는 김영주가 불의와 주먹에 죽임을 당한 것은 불편한 현실이다. 법과 주먹을 얘기하면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것과는 선을 그으며 이상으로 치우치며 끝낼 것 같던 드라마가 불편한 현실로 되돌아온 것으로서 이윤성에 얽힌 출생의 비밀보다 더 기막힌 반전이라고 하겠다. 드라마에 나오는 말처럼 '똘끼'라는 말로 매도되지만 김영주처럼 정의감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검사 아니 법조인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법과 정의는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실현가능할 것이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쥐고 만행을 저질렀던 놈들'이 시청하기엔 꽤나 불편한 장면들이 많은 이런 드라마를 '시방새'라는 말로 매도당하는 방송에서 방영했다는 사실들을 모으다 보면 역사라는 단어의 정의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쥐고 만행을 저질렀던 놈들'뿐만 아니라 '조국이 되지 못하고 또 다른 정권이 되어버린 놈들'에게도 똑같이 법과 정의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 또한 불편한 사실이고 이런 게 역사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를 일이다.

도망 다니고 추격하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기도 했던 이윤성과 김영주는 한가지의 목적을 앞에 두고 서로 의기투합해 가지만 김영주가 희생되고 말았다. 이윤성이 김영주에게 '다음번에 또 같은 일 생기면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검사로서 너 할일 다해'라거나 '김영주 니 손으로 직접 잡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둘은 서로 대척점에 서있지만 이미 동질감과 친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윤성은 트라이앵글에서 어머니의 정을 느끼던 무앙수린이 죽자 이성을 잃고 섣불리 덤비다가 지뢰를 밟는 위기를 맞았었다. 김영주의 죽음을 본 이윤성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면 이윤성도 법이 아닌 주먹에 희생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트라이앵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진표의 희생으로 이윤성이 또 다시 위기를 모면하게 되고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해피엔딩이 될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