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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헌터' 가장 잔인한 복수? 율도국 찾아가나?




드라마 '시티헌터'가 준비한 마지막 히든카드는 출생의 비밀인 모양이다. 대통령 최응찬이 이윤성의 친모 이경희를 만나던 장면과 이경희가 이윤성에게 밥을 차려주던 장면이 합쳐지면부터 긴가민가했었는데 16회 방송분에서는 이 관계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윤성의 친부는 남포 앞바다에서 사망한 박무열이 아니라 당시 싹쓸이 계획에 동참했었고 그 후 대통령이 된 최응찬인 것 같다.

드라마 '시티헌터' 도입부에서 이진표는 이경희의 아기를 몰래 데려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를 해 주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라, 작가가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라는게 뭔지 꽤나 어이없었다.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어린 아기를 친모에게서 강제로 떼어 놓고, 한창 친모의 품 안에서 재롱을 부리고 사랑을 받으며 커야할 그 어린 아기에게 혹독한 군사훈련을 시키고, 국내로 잠입시켜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는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라는 건가?

그럼 그 어린 아기를 잃고 홀로 눈물 속에서 살아야 할 이경희의 인생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친모의 정도 느껴보지 못하고 양부를 친부로만 알고 성장해야만 하는 이윤성의 인생은 누가 책임질 건가? 이진표가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보다 이게 더 잔인한 일인 거다. 게다가 이진표가 자신이 희생하면서까지 자기의 목숨을 살려냈을 정도로 혈육과 같던 친구 박무열의 아들을 데려다가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버리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설정인 것이다.

결국 작가가 드라마 초반부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를 얘기했던 것은 자식이 성장해서 그 아버지에게 총을 겨눈다는 설정을 준비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윤성은 박무열의 친자가 아니라 현 대통령 최응찬과 이경희 사이에서 난 혼외자인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진표가 이윤성을 데려다가 혹독한 군사훈련을 시키고 종국에는 친부인 대통령에게 총을 겨누게 한다는 그게 작가가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의 실체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걸 과연 잔인한 복수라고 할 수 있을까? 이진표로서야 혈육과도 같던 자기 동료들이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사살되었는데 그 싹쓸이 계획에 연루되어 있는 최응찬을 혈육인 이윤성으로 하여금 총을 겨누게 한다면 가장 잔인한 복수가 될 거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아무런 죄도 없는 심지어 최응찬이 친부라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이윤성이 최응찬에게 총을 겨누게 되고 사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이윤성이 갖게 될 죄책감과 고통은 도대체 누가 보상해 줄 건가?



남은 분량 동안 작가가 이와 관련해서 어떤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을지 알 수 없으나 왠지 한가지에 매몰되어 오로지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 명제에서 뭔가 삐걱거리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든다. 대통령이 연루된 출생의 비밀과 그 혼외자가 친부인 대통령에게 총을 겨눈다고 판을 벌려 놓았는데 남은 분량 동안에 작가가 이 부분을 쓸어 담기에도 벅차 보이기에 말이다.

'시티헌터' 16회 방송분에서는 이윤성과 천재만 그리고 이진표와 관련한 몇가지의 정황을 통해 이윤성이 최응찬의 친자라는 사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먼저 이윤성의 경우는 최응찬과 이경희를 같이 엮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윤성은 최응찬 그리고 최다혜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는데 이 셋은 밥상을 앞에 두고 똑같이 먼저 콩을 골라내기 시작한다. 이경희는 이윤성을 집으로 데려가 콩밥을 차려주는데 이경희의 바람대로 이윤성은 콩을 골라낸다. 그러자 이경희는 아버지와 똑같이 콩을 골라낸다고 말을 했었다.

콩을 골라내는 사람은 많으나 이경희의 언행에 미심쩍은 부분이 나온다. 이경희는 병실로 찾아온 이윤성에게 남아 있는 아버지 사진이 없을 거라고 말을 한다. 이윤성이 대통령 경호처 앨범에서 찾아다 주겠다고 대답하자 이경희는 대뜸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며 몇가지 의문을 얘기하고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 줄 수는 없는 거냐고 한다. 그동안 이경희에게서 보이던 일련의 미심쩍은 언행들과 관련해서 생겼던 의문점들은 이 장면에서 모두 해결됐다.

조상이 콩을 싫어하면 자손도 똑같이 콩을 싫어한다는 건 의학적인 관점에서 신빙성이 있는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드라마의 경우에는 이런 경우 발가락이 닮았다는 드라마적 재미의 요소라기보다는 보통은 유전형질의 문제로 다룬다. 드라마가 출생의 비밀을 다룰 수는 있으나 이처럼 유전형질의 문제로 갈 경우에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평가한다. 후천적 환경의 측면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경우 드라마에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싹쓸이 계획 5인 중에 하나인 천재만의 경우다. 최응찬은 천재만을 불러 문제가 되고 있는 환자를 산재로 처리하고 마무리하라고 권유하지만 천재만은 '싹쓸이 계획 말고도 대통령의 약점을 아는 유일한 한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며 되려 최응찬을 겁박하고 나온다. 그리고는 부하에게 빠른 시일 안에 이경희를 찾아내라고 지시한다. 이경희가 미국으로 출국한 거 같다고 하자 천재만은 미국을 다 뒤져서라도 반드시 찾아내라고 하는데 마지막 히든카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재만은 이윤성이 시티헌터라는 사실과 시티헌터인 이윤성이 곧 최응찬의 친자라는 사실까지 알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최응찬과 이경희와의 사이에 자식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나 최응찬과 이경희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천재만이 말하는 대통령 최응찬의 약점이란 이것을 말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진표의 경우다. 이진표는 국정원 직원을 매수해서 싹쓸이 계획이 담긴 기밀문서를 빼돌리나 아직은 이 문서를 이윤성이 봐서는 안 된다며 금고에 숨겨두고 있다. 천재만의 부하가 비밀문서를 훔쳐가자 이진표는 이윤성이 비밀문서의 내용을 아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라지는게 낫다고 말한다. 이진표는 지속적으로 이윤성이 살인을 하도록 종용해 왔다. 이진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마지막 한방은 이윤성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진표가 말하는 마지막 한방이란 결국은 이윤성이 친부인 최응찬에게 총을 겨누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겠다.

대통령 최응찬은 이윤성이 친자임을 이미 알고 있다

이경희의 과거는 사진으로만 등장시켜서 설명하고 있는데 여염집 규수는 아니었고 화류계 여성이었던 것 같다. 최응찬과 이진표 그리고 박무열 모두 이경희에게 연정을 품었으나 이경희는 최응찬의 아이를 잉태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응찬이 이경희와 정식 혼인하지 않자 박무열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이경희와 일가를 이루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이경희가 출산하던 당시에 박무열이나 이진표의 태도 그리고 이진표가 이윤성을 데려가면서 보였던 언행들이 여기서 모두 통하게 된다.



16회 말미에 이윤성은 대통령 경호처에서 싹쓸이 계획이 있었던 해의 앨범을 찾고 있는데 이 때 최응찬이 나타나 앨범을 건네며 이걸 찾느냐고 물으며 끝이 났다. 이는 최응찬이 이미 이윤성에 대한 신원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장면이라 짐작된다. 사회적으로 지대한 관심의 중심에 놓여 있는 시티헌터의 정체를 대통령의 정보력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결국 대통령의 양심선언으로 사태를 무마시킬 것인지 이진표와 이윤성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망타진되면서 비극적으로 끝을 낼 것인지 작가의 선택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꿰맞추면 기가 막히는 장면

'시티헌터'는 그동안 군화 비리, 반값 등록금, 백혈병 노동자 등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는 문제를 그려왔었는데 16회에서는 불친절한 여종업원 얘기를 집어넣었다. 이는 마치 달포 전에 이슈화되었던 이른바 '성매매 여성들의 10원 시위'를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였다. 그런데 이 부분은 관점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는 면이 조금 아쉽다고 하겠다.

성매매 여성 사건의 경우 명품점에서 처음엔 매장 직원들이 동전계산기까지 가져오는 등 호의적이었으나 구매자들이 성매매 여성임을 알아채면서 무시하고 불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물품 대금을 동전으로 결제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홀대를 당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사건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경우는 관점을 명확히 하지 않았기에 종업원의 잘못만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아마 이 부분에서는 약간의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여자 종업원 뒤에 걸린 액자 속에 담긴 "2009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 대통령상 수상"이라는 글귀가 흥미를 끈다. 이른바 '성매매 여성들의 10원 시위'를 디스하기 위해 화류계 여성이었던 이경희와 대통령 최응찬 그리고 동전 결제를 등장시켰고 이윤성이 나타나 종업원에게 일장 훈시를 한다. 최응찬과 이경희의 친자가 곧 이윤성이다로 꿰맞춰 본다면 흥미롭다. 이게 드라마 제작진들이 설정해 놓은 디테일이라면 정말 기가 막히는 장면이 되는 셈이다.



이윤성, 율도국 찾아가나?

이조판서 홍공과 시종 노비 춘섬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였던 홍길동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식이 뛰어났다. 하지만 서자라는 신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가출하여 활빈당의 두목이 되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불의한 재물을 탈취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 조정에서는 홍길동을 잡을 수 없게 되자 회유하여 병조판서를 제수한다. 그러나 홍길동은 고국을 떠나 남경으로 가다가 율도국을 발견하고 거기에 정착해 이상적인 왕국을 건설한다.

설마하던 출생의 비밀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 이윤성에게서 홍길동이 연상되었기 때문에 뜬금없이 홍길동 얘기를 서술해 보았다. 최응찬이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으니 이조판서 쯤이었고 이경희가 화류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니 노비와 다를 바 없는 신분이었다. 둘 사이의 서자인 이윤성은 트라이앵글로 가서 갖가지 군사훈련과 병법을 익히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이진표가 부상으로 다리를 잃자 이윤성이 그 조직을 이끌다시피 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윤성은 군화 비리를 해결하기도 하고 김종식이 숨겨둔 돈을 탈취해서 반값 등록금 문제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를 돕기도 하고 불친절한 여종업원에게 독설을 대신 해주기도 한다. 천재만의 부하가 백혈병 노동자를 겁박해서 산재 포기 각서를 받아내고 현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들을 찾아가 폭행할 때 시티헌터가 홀연히 나타나서 그들을 일거에 응징해버리는 장면은 홍길동의 활약을 연상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신출귀몰한 이윤성의 솜씨는 홍길동이 일찍이 부렸다던 도술에 견주어 손색이 없다. 홍길동은 둔갑술도 알았고 비와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호풍환우법(呼風喚雨法)도 알았다고 한다. 이렇게 줄창 비가 내리는 건 혹시 시티헌터 이윤성이 활개를 치고 다니며 호풍환우하는 도술을 펼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 보게 되기도 한다.

하여튼 이진표와 이윤성이 벌인 일들이 엄청나고 최종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상대가 대통령이다 보니 이윤성이 한국에서 생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윤성은 율도국을 찾아 떠나야 할 것이고 이윤성이 안착하게 될 율도국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트라이 앵글이 되지 않을까? 드라마가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는 결국 출생의 비밀로 정리되어질 것 같고 그 출생의 비밀로 인해 주인공은 율도국을 찾아서 떠나야만 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