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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능동적 폐지가 최선일 수도 있다




MBC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일밤'의 한 코너인 '나는 가수다'가 근래에 참 보기 드문 재밌는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방송 시작 전부터 논란을 빚었던 '나는 가수다'는 방송 후에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극과 극을 오가며 끝없이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나는 가수다'는 프로그램 진행 중에 터져 나온 문제로 거의 사망선고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른 코너를 결방하면서까지 2시간 45분간이라는 시간을 할애해 특집 방송했던 MBC의 정면 승부수가 통했는지 이젠 프로그램 존속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로 급격히 전환되어 버렸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낸 것을 보면 공중파 방송이 가진 치명적인 무기인 편집의 위력은 참으로 가공할 만하다.

그동안 시청자들의 비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철저히 무시해 오던 MBC가 '나는 가수다'의 문제가 불거진 후에 곧바로 반응해 사태진화에 나선 것은 굉장히 이례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프로그램 존치 쪽으로 가닥을 잡고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보면 이 프로그램의 파급력이 그만큼 위력적이었다는 얘기로서 오랜만에 찾아온 가능성 있는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사 상태에 빠진 프로그램을 살려내기 위한 MBC의 승부수가 통했고 이제 분위기가 전환되자 프로그램의 문제를 지적했던 사람들을 매도하며 한방향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려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문제를 지적했던 사람들의 의견들은 선을 넘은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타당했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67.1%가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시청하겠다는 여론 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이성적이기까지 했다.

시청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했던 그들의 의견은 여전히 타당하며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이제 와서 그들이 매도당해야 할 만한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오히려 그동안 오만한 태도로 시청자들의 비판을 철저히 무시하고 안이하게 대처해 오던 MBC와 프로그램 제작진들의 정신을 들게 한 측면에서는 대단히 잘했다고까지 생각한다.



'나는 가수다'는 포맷 자체가 결함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고민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나는 가수다'의 기획의도를 보면 첫머리가 '아이돌 그룹들과 댄스음악으로 편향된 방송 가요계에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는 무대!'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밤'은 한 회에서만 40여명에 가까운 아이돌을 대거 출연시키는 것을 반복하며 고정 출연자들을 소외시켜 왔다. 이렇게 아이돌에 의존해 아이돌이 프로그램을 지배하게 만들며 스스로 화를 자초해 왔었던 '일밤'이 이런 거창한 기획 의도를 내걸고 프로그램을 런칭한 것을 보면 실소가 터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 후 아이돌을 불러다 놓고 트로트와 발라드를 부르게 하고 이를 심사하는 가수들의 혹평을 들은 아이돌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이슈화를 시도했던 게 '일밤'의 마지막이 되었다. 이러한 포맷에다가 거세게 몰아치는 오디션 열풍과 세시봉 열풍을 대충 뒤집어 씌워서 내놓은 게 '나는 가수다'라고 할 수 있다. 휴일 저녁에 채널 지배권을 가진 시청자층의 욕구를 아예 무시하거나 파악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아이돌로 승부수를 띄우다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급조해낸 게 '나는 가수다'인 셈이다.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도 아이돌이 지배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MBC가 편향성과 다양성을 모토로 내세운다는 것은 넌센스다. MBC가 그렇게 편향성과 다양성을 염려한다면 가요 프로그램이나 개그 프로그램을 단지 시청률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폐지해 버렸던 것에 대해서는 어떤 궤변을 내세울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일밤'의 경우도 그나마 프로그램을 시청해 주던 시청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슬그머니 서둘러 끝내버린 것도 결국은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선택이 아니었던가?

가수들을 데려다 놓고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으로 누군가를 떨어뜨린다는 포맷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면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굉장히 치밀하게 기획해야 한다. 그런데 논란을 보고 있으면 제작진들이 얼마나 안일하게 졸속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는지 알 만하다. 프로그램을 시작 하자마자 처음으로 튀어나온 변수에 김영희 PD가 한심하게 대응한 것은 이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고작 그런 정도의 변수에 대한 고민조차도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현재 당면한 문제는 당연한 결과물이다.

쌀집아저씨의 영화를 재현하겠다며 어려운 상태에 처한 '일밤'의 구원투수로 나섰던 김영희 PD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야심작이라고 내놓았던 '단비'에서는 부담스러운 시선과 편집과 그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며 실망시켰고 그 후에는 잦은 코너 개편으로 상황을 더 어렵게 했다. 굳이 이번의 문제가 아니었어도 독선적인 태도로 시청자들의 의견을 배척해 왔던 김영희 PD는 진즉에 자진 사퇴했어야 했다고 본다.



이번의 문제가 생긴 것도 프로그램 제작자로서 미리 예상했어야 할 변수였음에도 그러지 못했기에 출연자도 아닌 제작자에게 돌발적인 변수가 되버렸다. 그 상황에서도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취지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다면 막을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고 평가단의 의견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결정해버린 것이 문제를 키워버렸다. 시청률 지상주의에만 입각해 그 후에 벌어질 일은 일고도 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위기를 자초한 장본인인 김영희 PD의 퇴진은 당연하다. 혹시라도 분위기가 반전된 틈을 타 슬그머니 '일밤'으로의 복귀가 논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수다' 논란을 보면 가장 큰 문제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프로그램이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연한 가수 중에 누군가가 탈락하는 것은 프로그램의 포맷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가수의 실력과 직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방송되지만 시청자들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시청한다. '나는 가수다'에서 누군가의 탈락은 이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은 출연자가 프로그램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면 이미 숙지하고 있어야 되는 기초적인 사항에 속한다. 그런데도 출연자가 이를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문제를 야기했다면 기본적인 양식의 문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번의 문제가 생겨난 근본적인 원인은 제작진이나 출연진들이 평가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도나 대비책이 전혀 없었던 데에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출연진들부터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중들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완전히 넌센스다. 그 무대는 결국은 대중과의 교감이자 소통의 도구가 되고 현장에 있는 평가자는 그런 대중의 일부일 뿐이다. 말하자면 그 평가에 동의하지 못하는 대중들은 많이 나온다는 것이고 그러한 이슈들이 모여 프로그램의 인기도를 견인하고 덩달아 출연자들의 인기도 올라가며 부수입도 늘어나게 되는 구조가 서바이벌 형식이다. 가장 기본적인 변수를 받아들이지 못해놓고는 대중들을 매도하는 것으로 반전을 노리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윤도현이 방송 중 '요즘 누가 록을 좋아해'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굉장히 현실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아이돌이 대세인 것은 변화해가는 대중 음악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고 방송사들이 아이돌에 편향된 방송을 제작하는 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진짜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고 정의되어 있는 '나는 가수다'의 기획의도는 마치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만이 진짜 가수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포장해 놓음으로써 가요계 내에서의 알력을 부추길 수도 있는 또 다른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가요계의 파이의 크기가 현실화되고 혹시라도 가요계 내에서의 불협화음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걷잡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가수다'에 대한 시청률이 낮고 파급력이 크지 않았다면 MBC가 과연 프로그램의 존속을 놓고 고민했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며 이슈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MBC는 시청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밀실에서 프로그램 폐지를 논의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타의 가요 프로그램들을 폐지하기까지 했던 MBC가 편향성과 다양성을 언급하며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대중가요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번 논란을 보면 프로그램 중에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박명수가 "다음 번에도 이런 일이 발생하면 또 재도전 시킬 거냐?"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가수다'가 현재와 같은 서바이벌 형식을 유지한다면 이와 유사하거나 미처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가 생기고 불편한 논란은 언제든 재현될 수도 있다. 만약에 향후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또 다시 PD를 교체하고 재정비한다며 방송을 중단했다가 재개할 것인가?

만약에 이 프로그램에서 서바이벌이라는 요소를 빼고 음악 무대를 꾸민다면 시청률을 담보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면 그때도 '아이돌 그룹들과 댄스음악으로 편향된 방송 가요계에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는 무대!'를 만들겠다며 프로그램을 지속할 것인가? 지금은 프로그램이 존속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프로그램 제작진과 출연자에게 어느 쪽이 최선인지 잘 선택해야 한다. 향후에 걷잡을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해서 피동적으로 폐지하는 것보다 지금 능동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대중 가요의 공급자인 가수는 물론 수요자인 대중들에게도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