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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 최선의 멘토는 베짱이 김윤아




'위대한 탄생' 5인의 멘토 중에서 유독 깔끄럽게 여겨졌던 이가 김윤아였는데 그래서 더 눈여겨보게 되었던 멘토이기도 했다. 딱히 멘토로서의 자질이나 존재감이 있어 보이지는 않으면서도 가끔씩 정곡을 찌르는 평가를 하기도 해 몹시 공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온화하고 상냥한 표정 뒤에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고 그러면서도 잘 정돈된 언행을 견지하는 모습이 주체궂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일종의 선입감을 돌려놓은 계기가 되었던 것은 김윤아가 당연히 탈락하는 것으로 보였던 정희주를 합격시켰을 때였다. 당시 김윤아가 타 멘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희주를 합격시켰던 이유란 게 '반주 있는 상태에서 노래하는 거 듣고 싶다'는 거였다. 이것은 다른 경쟁자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반주 있는 상태에서 들어본다고 뭐가 달라지랴하는 생각에 시답잖게 보이기도 했다.

정희주의 경우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더 눈에 띄지 않았었는데 이런 게 가수로서의 고집이나 오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런데 그 다음에 등장한 정희주는 '김윤아씨가 이 친구 안 살렸으면 어쨌을까 싶네요'라는 방시혁의 평이 가장 적확하다고 생각되는데 방송용 화면으로만 보는 거라고 해도 눈에 띄지 않았던 건 알게 모르게 비주얼에 길들여져 있었던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희주는 감동적이었다.

물론 당시 김윤아의 선택은 형평성에 맞지 않았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멘토링 시스템이 가미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형평성을 무시하고 당락을 결정짓는 것은 프로그램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오디션이라는 취지에는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묻혀 버리고 말 수도 있었던 정희주를 살려낸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김윤아가 비난을 감수하면서 백새은을 멘티로 선발했을 때도 멘토 스쿨 기간이 지난 후를 지켜보기로 했다.



김윤아는 자신을 '베짱이과'라고 칭하며 멘티들과 함께 "베짱이가 세상을 바꾼다"고 외치면서 멘토 스쿨의 시작을 알렸다. 김윤아는 '정희주는 성실한 타입인데 반해 나머지 셋은 베짱이인데 제일 베짱이는 제일 배짱이 두둑한 아리'라며 멘티들이 멘토 스쿨에 도착하는 순서를 족집게처럼 맞혔다. 2박 3일 동안의 '위대한 캠프'에서 이미 멘티들의 특성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로서 김윤아는 멘토 스쿨을 시작하면서부터 지켜보는 관전자의 흥미를 배가시켜주었다.

'내 능력 그리고 내 영역 안에서 품고 갈 멘티를 고르겠다'던 김윤아는 각각의 멘티들의 장단점과 수준을 미리 파악해서 그에 맞추어 멘토링을 했다. 자기의 아픈 경험을 들려주며 다독이기도 했고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하면 더 이상 소용이 없도록 일축하기도 했다. 밴드의 실수로 틀려도 차분하게 문제점들을 짚어주기도 했고 각각의 멘티들이 따라오는 진도에 맞추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욕심을 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윤아는 감상적이지 않았고 시종일관 냉철함을 유지했다.

생방송에 진출할 멘티를 가리기 위해 홍대밴드와 같은 무대에 멘티들을 세웠다. '그 안에서 살아남으면 어디에 가도 두렵지 않은 약간의 내공 정도는 갖출 수 있을 거'라는 게 이유였지만 그 무대는 온전히 멘티들을 위한 무대였다. 무대 아래에는 기세등등하게 노려보며 기를 죽이던 심사위원들도 없었고, 김윤아는 일일이 멘티들을 소개한 후 객석에 앉아 관객들과 함께 멘티들의 음악을 즐겼다.

노래를 무사히 끝낸 멘티들은 가장 먼저 김윤아를 바라보았고 그런 멘티에게 김윤아는 가장 먼저 일어나서 박수를 쳐주며 화답했고 관객들도 함께 일어나 박수를 쳐주게 만들었다. 마지막에 완곡을 불렀던 백새은이 이런 말을 했다. "무대 위에 섰을 때 되게 따뜻한 느낌이었어요. 여태까지 오디션에서는 되게 소외된 느낌이 들었었거든요. 오늘 무대 같은 경우에는 모든 게 다 사랑스러워보였던 것 같애요. 그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는." 김윤아가 멘티들에게 만들어주려 했었던 무대를 이보다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생방송에 진출할 멘티를 선발하는 장면은 참으로 인상 깊었다. 김윤아는 멘티들이 서로의 손을 잡게 한 채 모두 무대 위에 세우고 각각의 멘티들에게 스폿 라이트를 켠 다음에 탈락자의 조명을 끄는 방식을 선택했다. 탈락자에게는 미래를 얘기해주었고 합격자에게는 별다른 수식어를 달지 않고 오히려 담담한 투로 합격을 전했다. 그리고 무대 위로 올라가 멘티들을 안아주며 축하해주고 위로해줬다.

김윤아가 이런 것까지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서로의 손을 잡은 멘티들은 합격과 탈락의 순간에 경쟁자이자 동료였던 옆 사람의 안도와 좌절을 고스란히 느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무대에 올라가 있는 멘티의 음악을 함께 즐겼던 멘티들은 함께 무대에서 당락을 알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해주었다. 누군가는 합격했다는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애써 괜찮다며 기꺼이 안아주며 축하해주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감동적이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스스로 베짱이과라던 김윤아가 선택한 것은 의외로 개미과인 정희주였고 만점이라도 주고 싶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베짱이과 김윤아는 '정희주가 겸손하게 언제나 노력하는 부분에 항상 감탄해하고 앞으로도 많은 발전하기를 기원하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한다'며 뜻밖에도 정희주의 노력하는 자세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베짱이가 세상을 바꾼다"는 김윤아의 '베짱이론'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베짱이와는 조금 다른 베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에서 일반적으로 베짱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서 노래나 부르는 게으름의 표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김윤아가 말하는 베짱이는 무작정 놀고 먹는 게으른 베짱이가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서 실력을 충분히 연마한 다음에야 무대 위에서 진정으로 즐길 줄 안다는 의미에서의 베짱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에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뜻인데 者를 人으로 보면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바꾸어서 표현하면 즐기기 위해서는 뭘 알아야 되고 좋아해야 된다는 것이 되겠는데 역시 베짱이론과도 의미가 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하위징아(J. Huizinga)가 그의 저서에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개념을 제창했는데 이는 유희(遊戱)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인간의 본질을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 규정했다.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호모 파베르형 인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베짱이는 게으름의 표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차츰 호모 루덴스형 인간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유희만 아는 게으른 베짱이보다는 열심히 노력해서 알아내고 그것을 좋아해서 진정으로 즐기는 베짱이가 21세기형 인간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만든 김윤아의 멘토 스쿨이었다.

김윤아는 시종 냉철한 태도로 멘티들을 가르쳤고 최종 선택에는 아무런 토를 달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겸손하게 언제나 노력하는 부분을 높이 평가했다. 유난히도 깔끄럽게 느껴졌던 김윤아가 멘토로서는 최선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 이유다. 이러한 면에서 5인의 멘토 스쿨 중에서 김윤아의 멘토 스쿨이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