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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조짐들




'나는 가수다'는 태생적으로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는 조악한 프로그램인데도 오로지 시청률 지상주의에 얽매여 전후사정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졸속으로 런칭했다. 결국 프로그램의 부작용 중에 일부가 현실화되고 한차례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고 지나갔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마치 눈발을 머금은 듯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달을 불길한 조짐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MBC가 가수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는 진정성을 인정받고 싶다면 더 심각한 부작용이 현실화되기 전에 지금은 이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고 MBC가 자사의 이익을 위해 편집을 무기 삼아 이리 저리 부나비처럼 휩쓸려 다니는 대중들을 조종해 들러리를 세우며 계속해서 고집을 부린다면 그로 인해 생길 폐해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논란의 중심에 있는 '나는 가수다'는 '오늘만 즐기면 땡'이라던 '일밤' 제작진들의 그 천박해 보이던 인식이 그대로 녹아 있는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 자사의 이득만 내면 그만이고 어떤 부작용이 생겨나든 누가 손해를 보든 알 바 아니라는 그 오만한 태도도 똑같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며 거창한 포장지를 씌워 교묘하게 대중들의 눈속임을 하는 얕은 수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일밤' 제작진들은 이와 같이 오만한 태도로 시청자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해 오면서 시청자 게시판에 적절한 비평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게 하며 더 이상의 기대를 접게 만들었다. MBC 예능국이 과연 공중파를 사용할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럽게 만들기까지 했던 게 '일밤' 제작진이었고 그 수장격인 김영희 PD는 비단 이번 사태가 아니었어도 그 이전에 마땅히 사퇴를 했어야 했다. 그래도 늦게나마 교체된 것은 다행한 일이고 더는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지극히 타당하다.

그런데 이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MBC 예능국이 김영희 PD의 복귀를 위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얕은 수를 쓰고 있다. MBC 예능국이 김영희 PD의 교체를 놓고 김재철 사장 탓을 하며 질 낮은 여론몰이를 시도하는 것은 그동안 MBC 예능국이 견지해 왔던 태도를 보면 사실은 별로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김재철 사장이 문제가 아니라 시청자를 무시해 왔던 MBC 예능국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고 과연 공중파를 사용할 자질이 있는지 스스로 반문해 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가요제작자들이 MBC '나는 가수다'의 음원 공급이 가요시장을 죽이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며 이번주 중 회의를 열고 방송국의 음원공급에 대해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은 가요계를 심각하게 왜곡할 위험성이 농후하고 가요제작자들의 문제제기는 타당하다. 공중파를 사용하는 거대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통해 음원을 홍보하고 판매해 그 수익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가며 불공정 경쟁을 한다면 가요제작자들은 위기에 빠지게 된다. 제작자들이 투자를 꺼린다면 가요계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모두 후퇴해버리고 말 것이다.

가요제작자들의 문제제기는 가요계 내에서의 이전투구 양상이 벌어질 조짐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대중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가요제작자들이 공중파를 사용하는 거대 방송사에 대적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약자에 해당한다. 거대 방송사가 음원 시장을 어지럽히고 수익을 가져가기 시작하면 가요계는 방송사에 종속되고 말 것이다. 이런 상황은 가요계의 편향성이 더욱 심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는 가수다'의 기획의도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게 되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나는 가수다' 제작진들이 '진짜 가수'라고 언급하며 기획의도에 숨겨 놓은 교묘한 잔꾀에 있다. 말하자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가수는 진짜 가수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늬만 가수라는 분위기를 조장하며 논란을 부추겨 반사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아이돌은 가수도 아니라느니 가수 없는 가요계에 일침을 놓았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들을 주워섬기며 부나비처럼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대중들도 나타나 부작용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들은 그 말들이 결국은 자기네 자신들을 모욕하고 있다는 사실은 왜 모를까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아이돌은 가수도 아니고 가창력도 없을까? 그래서 그동안 뛰어난 실력으로 한류 붐을 이끌고 있다며 극찬을 보내고 때로는 달려들어 사정없이 물어뜯고 찢고 해왔던 것인가? '한류 스타'가 되지 못하면 '잔류 스타'라며 자조 섞인 말들을 늘어 놓던 연예인들은 왜 그랬을까? '나는 가수다'에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출연했다. 그런 그들과 단순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돌의 가창력도 함부로 무시하고 모욕해도 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주류에 속하는 가수도 야심적으로 노래를 발표했다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는 흔하다. 그랬다가 후에 어떤 계기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하고 후배 가수가 리메이크한 곡이 주목받는 바람에 재평가를 받게 되기도 한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재조명 받는 노래와 가수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음악 프로그램을 전격 폐지했던 MBC와 대중들이 만든 측면도 있다.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생겨나는 현상을 가지고 과대 포장하는 것은 삼가할 필요가 있다. 만약에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올라갈 가망성이 없었다면 그 때도 부나비들이 꼬여들고 방송사가 프로그램 존치를 고집했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잊혀진 음악과 묻혀 있던 실력파 가수들을 재조명해 보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고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그런데 아이돌과 비교하고 아이돌은 가수도 아니라며 그들의 가창력을 폄하하고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 장르를 깎아내리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요의 다양성을 모토로 한다는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나는 가수다'는 아이돌은 출연할 수 없는 포맷으로 출발하고 있어 대중문화를 이끌고 한류 붐을 주도해왔던 아이돌은 당분간 가창력이 없다는 대중들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만 하는 황당한 상황이기도 하다.

MBC가 '나는 가수다'를 통해 음원 수익을 싹쓸이해가는 현상이 길어진다면 한국 가요계는 전반적으로 퇴보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음원 유통자여야 할 방송사가 음원 공급자로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해 가요계를 왜곡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새로운 가수와 노래가 나오는 것을 막게 될 수도 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방송을 통해 소비되는 노래는 지나간 노래로서 그러한 노래들이 음원 차트 상위를 휩쓸어버린다면 역으로 신곡들이 알려질 기회가 줄어들어 묻혀버리는 결과가 생긴다. 새로운 음악과 가수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라면 한국 가요계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레전드급 가수들은 당해 프로그램이 동료 가수는 물론 후배 가수들마저 죽이고 결국엔 가요계 전반의 퇴보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부작용을 노출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윤도현은 '무대에서 관객에게 또 시청자들에게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는데 이 프로그램의 순기능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데 이미 그 순기능을 상쇄할 만한 부작용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중들은 그때 그때 이슈에 휩쓸려 다니며 충동적으로 소비할 뿐 언제든 싫증을 내고 등을 돌릴 것이고 그 때 유통자인 방송사는 책임져주지 않는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 중에서 계속 살아남는 가수의 비율이 높을수록 또는 이전의 출연자 만큼의 감동적인 무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대중들은 등을 돌리거나 비난을 쏟아낼 것이고 방송사는 슬그머니 프로그램을 폐지해 버릴 것이다. 지금도 대중들은 부나비처럼 이리 저리 휩쓸려다니며 또 다른 누군가가 희생되기를 바라는 대중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레전드급 가수들이 순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포맷으로 끌고갈 수 없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살펴보고 결정해야 한다. 한국 대중 음악이 발전하려면 가요의 생산자인 가수들이나 공급자인 제작자 그리고 소비자인 대중들에게 모두 이득이 되는 구조여야 하고 그런 취지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 게 레전드급 가수들의 어깨에 올려진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