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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프린세스' 김태희인가, 딱 맞는 옷인가




MBC 수목드라마 '마이프린세스'는 현 시대가 만들어낸 '비주얼이 오디오를 이긴다'는 일종의 공식에 가장 충실한 드라마로서 한마디로 '캡쳐할 맛이 나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최고의 비주얼인 김태희와 송승헌을 내세워 시청자를 유혹하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넉넉지 않게 생활하는 한 대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순종의 딸로 밝혀져 공주가 된다는 상상을 토대로 한 드라마의 황당한 내용으로 일반 대중들의 허영심을 자극하고 있다.

드라마는 국내 최고 재벌기업 총수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끊어진 순종의 후사를 찾아내 황실을 재건하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출생의 비밀, 거금 600만원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일시불로 지불할 정도로 돈 많은 재벌 3세가 외모도 준수하고 학벌도 좋고 직업도 좋은 완벽남,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공주가 되어 있는 평범한 여대생 등 일반 대중들의 말초적인 허영심을 자극하고 대리충족시켜주는 통속극의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요즘 MBC의 드라마나 프로그램들을 보면 어떤 시대정신이나 시대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화려한 비주얼과 감각적인 내용만을 앞세워 휴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왔듯이 오늘만 즐기면 땡이라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다. 또한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특정인의 비주얼과 그 후광에 기대어 이득을 보겠다는 단순한 발상으로 프로그램을 쉽게 만들었다가 단기간의 성과만으로 쉽게 엎어버리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MBC 프로그램들은 대략 시청하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게 한다. 일일연속극이나 주말연속극의 경우도 거의 재벌들로 채워진 등장인물들과 대체적으로 출생의 비밀과 같은 막장의 요소들이 가득하고 내용 또한 특이한 점이 없다.

황실을 복원한다는 뜬금없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의 소재도 상기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이 프린세스'는 어느 정도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감각적인 로맨틱 코미디로 일반 대중들의 로망을 대리충족시켜 주는 내용의 드라마는 대체적으로 잘 먹혀 들어간다. 여기에다가 완벽한 외모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지만 연기력에 대해서는 줄곧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김태희의 연기가 드라마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요즘 김태희의 기사를 보면 찬사 일색인데 드라마를 시청하는 대중들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가장 많이 보이는 기사의 내용은 '서울대 출신답게 도도하고 지적이며 청순한 이미지'라거나 '망가져도 예쁘다'를 들 수 있다. 서울대 출신이면 도도하고 지적이며 청순한 이미지라는 고정관념은 대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의아하다.

하지만 이러한 근거 없는 고정관념은 배우로서의 김태희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 일반 대중들은 김태희가 서울대 출신으로서 우아한 이미지를 갖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배역에 어울리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이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김태희는 단역에서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으면서 연기력을 검증받은 연기자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반짝 스타였다. 연기력 논란은 피할 수 없지만 대중들의 고정관념 충족을 위해 이미지 관리도 필요하므로 부족한 연기력 논란의 악순환만 계속되게 된다.

'마이 프린세스'에서 김태희의 연기를 보면 어느 정도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향후 다른 작품에서 배우로서 '미친 존재감'을 발휘할 정도로 연기력이 향상될지는 미지수라고 하겠다. 여전히 대중들의 고정관념의 범위 내에 있는 우아한 공주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이 프린세스'를 보면 극중 이설이 평소의 김태희인지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인지 조금 혼동되기도 한다. 그 정도로 이설을 연기하는 김태희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김태희가 울다가 마스카라가 번진 팬더 눈을 하고 화장실에 못 가 안절부절하고 코 푸는 연기하는 것을 '망가졌다'라고 표현한다. 허나 이것은 망가진 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의 행동이다. 사람들이 망가졌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상기한 일반 대중들의 고정관념에 입각한 것이다.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는 내용면에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나 어느 장면에서 프린트스크린을 눌러도 다 작품이 되기에 시청한다. '마이 프린세스'에서의 이설이 평소의 김태희인지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인지 옷에 몸을 맞추는 법을 터득한 것인지 아직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점인 것 같다.

김태희가 '미친 존재감'의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되려면 무엇보다 우아한 공주님이라는 이미지와 근거 없는 대중들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드라마를 보다가 김태희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던 캐릭터가 있는데 보석비빔밥의 궁비취 역이었다. 김태희가 우아한 공주님이 아닌 좀 더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면서 연기력 논란을 불식시키고 TV에도 자주 등장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