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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가든' 김주원의 무의식이 지워버린 기억




김주원은 21살 때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 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주원의 무의식이 스스로 사고 당시의 기억을 밀어내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왔다. 그래서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김주원에게 혼자 운전하고 가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김주원을 보호해 오고 있다. 그 사고 당시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김주원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김주원은 애써 스스로 기억을 지우며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했을까?

먼저 김주원이 그 당시에 당했던 엘리베이터 사고는 어떤 사고였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김주원은 길라임으로부터 길라임 아버지가 김주원을 구하고 순직했다는 얘기를 듣고 돌아와 당시의 신문기록을 뒤진다. 그 당시의 사고를 보도한 신문기사의 내용은 다음의 이미지에서 보는 바와 같은데 신문에 보도된 기사의 내용을 아래에 별도로 정리해본다.

화재 진압하던 소방관 사망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이 인명을 구하던 중 엘리베이터 추락으로 숨졌다. 4일 오후 5시 25분께 무영동 건물에서 불이 나 진화 작업에 나섰던 소방관 길익선씨(41)가 엘리베이터 추락으로 사망했다. 사망한 소방관은 엘리베이터에 갖힌 인명을 구하던 중 엘리베이터가 추락하여 떨어져 매몰됐다. 현장에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사망했다.
불길은 3층 건물 가운데 2층과 3층, 1000여m2를 태우고 1시간 30여분 만에 잡혔다. 소방당국은 현재 잔불 진화 작업을 진행 중이며 정확한 화재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편 순직한 소방관에게 구출된 인명은 L백화점 후계자로 알려졌다.




'갖힌'이란 오타가 상징이라도 하듯이 이 신문기사의 내용은 특이한 부분들이 꽤 보인다. 먼저 3층 건물인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고 하는 부분이다.

건축법 제64조(승강기) ①항을 보면 '건축주는 6층 이상으로서 연면적이 2천제곱미터 이상인 건축물(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은 제외한다)을 승강기를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이란 층수가 6층인 건축물로서 각 층 거실의 바닥면적 300제곱미터 이내마다 1개소 이상의 직통계단을 설치한 건축물을 말한다. 혹시 지하층이 있을 수도 있으니 6층 이상의 건물에 속하지 않겠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건축법 시행령 제119조(면적 등의 산정방법) 제9호에 보면 지하층은 건축물의 층수에 산입하지 아니한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이는 의무규정이므로 3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해서 이상할 건 없다. 2층과 3층의 연면적이 1000여m2라고 하는 것으로 보면 아마도 대형 할인마트와 유사한 용도의 건물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또한 화재 발생 후 1시간 30여분 만에 불길이 잡혔다면 굉장히 신속하게 대응했다는 얘기인데 그 와중에도 사망자가 있었다니 참 안타까운 사고였다.

여기서 엘리베이터가 2층에서 멈췄는지 3층에서 멈췄는지는 불명확하나 2층이나 3층에서 추락했는데 매몰될 수 있는지 의문이고 어디로 파묻혔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 정도 높이에서 엘리베이터가 추락했는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사고였었다니 이 또한 참 안타까운 경우였다. 그리고 이 엘리베이터 안에는 김주원의 친구들도 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친구들의 생사에 대해서까지는 알 수가 없다. 길익선이 구출한 것은 L백화점 후계자라는 것과 매몰되었던 길익선은 현장에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사망했다는 것 외에는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김주원은 두 번의 기억상실을 겪게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 번은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워버린 것이었으니 기억상실은 한 번이라고 해야겠다. 길라임과 영혼을 바꾸었다가 다시 돌아온 김주원은 사고를 당했던 21살 이후의 기억이 상실되었다. 그런데 김주원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은 기억하나 여전히 사고당시의 몇몇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몇몇 부분은 김주원이 왜 의식적으로 21살 때의 사고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렸는지를 알아내는데 있어 중요한 열쇠인 것으로 짐작된다. 사고 당시에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도대체 김주원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애써 그 때의 기억을 송두리째 지워버리고 싶었을까? 김주원은 왜 그 때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면서까지 그토록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애써야만 했을까?

김주원의 언행을 보면 대략 재밌다. 내가 시청하지 않은 회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김주원의 몸을 빈 길라임이 백화점 직원을 성추행하는 VVIP에게 주먹을 날렸다가 경찰서에서 영혼이 바뀌는 바람에 김주원은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그 때 옆에서 김주원이 말하는 '한 땀 한 땀 이태리 장인이 수놓은 작품'이라는 트레이닝복과 같은 옷을 입고 만취해 잠들어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원래 이런 거 잘 안 묻는데 이 옷 어디서 났어요? 이 옷은 당신이 이렇게 함부로 대할 옷이 아니야. 이봐요, 어디서 샀냐니까? 내 말 무시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나중에 알게 되면 아 내가 저런 분이랑 함께 유치장엘..." 그 때 만취한 사람이 돌아눕는데 등짝에 '입구에서 현빈'이라 새겨져 있고 만취자가 '웰컴 투 스페셜 월드 시크릿 나이트'를 주절거린다. 화들짝 놀라는 김주원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재미를 주었던 명장면이었다.

김주원은 뇌사상태인 길라임과 영혼을 바꾸기 위해 주변정리를 하던 중에 길라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다. "미리 밝혀두지만 그 쪽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보는 사회지도층 김주원의 편지를 받는 유일한 소외된 이웃이야.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또한 마지막으로 천둥 번개 치는 빗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길라임에게 말한다. "사회지도층의 선택이니까 존중해 줘."



21살 사고 당시부터 34세까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21세의 김주원은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싸가지인데다가 허세까지 있다. 그런데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이름이 길라임이었다. 그런데 막상 길라임을 알아보지는 못하는데다가 30살에 스턴트우먼을 알고 지낸 것도 모자라 사랑하기까지 했다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김주원은 정원을 거닐면서 전처럼 길라임과 함께 정원을 걷고 있는 것을 상상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의아하게 생각한다.

김주원은 길라임의 병원에 찾아가 병원식 대신으로 촛불까지 켠 식탁을 가져다 준다. 이미 이러한 것에 익숙해진 길라임은 놀랍지도 않기에 촛불을 꺼버린다. 김주원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식사에 촛불은 기본이지'라며 다시 불을 붙인다. 그리고 '혹시 오해해서 그러나본데. 나 그쪽 생각해서 이러는거 아냐. 일종의 선행이지 선행. 나 가정교육 그렇게 받았어'라고 한다.

그리고 김비서를 길라임의 집으로 보내 길라임을 '옮겨오라'고 지시한다. 길라임은 이미 이러한 모든 상황이 익숙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안 그래도 보고 싶던 참인데 어디로 옮겨오랬냐'며 김주원을 찾아간다. 아니나 다를까 김주원은 예의 표정과 말투 그대로 길라임에게 '내가 가라 그럴 때까지 앞으로 옆에서 살아라'고 얘기한다.

이상은 김주원의 평소 언행을 몇 개 언급한 것으로 이를 통해 김주원의 인품과 성품을 추론해 볼 수가 있겠다. 김주원은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은 일종의 선행이라고 여기며 여자 하나 때문에 가진 걸 잃기엔 너무 많은 걸 가진 사회지도층이라는 확고한 고정관념과 허세를 갖고 있다. 길라임에게 길라임의 아버지 성함을 물어 보면서 '어느 집안'인가를 먼저 물어볼 정도이다. 또한 김주원은 24세 이상의 여자와 알고 지낸다거나 스턴트우먼과 같이 천하다고 여기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도 알고 지낼 리가 없다. 김주원에게 여자는 결혼할 여자와 몇 번 놀다 치울 여자 딱 두 부류만 있다.

김주원은 전세기를 띄워 일본으로 가버린 영화감독을 불러들여 특별 오디션을 성사시킬 정도로 뭐든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회지도층이라는 오만한 특권의식과 허세로 무장하고 그렇게 성장해 왔다. 그런데 그렇게 잘 나가던 김주원이 뜻하지 않게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는 사고를 당했다. 그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한 김주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좌절해 갈 때 쯤 김주원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메시아가 다름아닌 소방관인 길익선이었다.



평소에는 알고 지낼 필요도 전혀 없었고 선행이나 베풀면 된다고 했던 천한 직업을 가진 길익선에게 목숨을 의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천한 직업의 길익선은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사태를 수습해냈고 종국에는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김주원을 구해낸 것이다. 김주원으로서는 이 사실만으로도 그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받아들이기 싫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만약에 김주원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길익선에게 눈물로 매달리며 생명을 구걸하고 무릎을 꿇기까지 했었다면 사고 후에라도 엄청난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작가가 이런 근본적인 고뇌에 대해서까지 다룰 만한 역량이나 의도는 없는 것으로 짐작된다. 하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길익선이 김주원이 보는 앞에서 기도를 한 일은 있었던 것으로 봐야겠다.

박상무의 호기심으로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김주원은 의식을 잃어가면서 길라임 아버지의 기도를 떠올린다. 주지하고 있는 '소방관의 기도' 중에서 약간의 각색을 한 그러한 내용의 기도였을 것이다. 김주원은 어렴풋이 이러한 것을 떠올리고 무언가 되게 소중한 걸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고 하는데 소중한 게 사고 당시에 소중했다는 것인지 현재에서의 소중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재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봐줘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김주원은 어쩌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길익선에게 사회지도층으로서의 허세를 부렸을 수도 있다. 신비가든으로 김주원을 끌어들인 길라임의 아버지는 닭백숙을 끓여 와 김주원에게 '내 마음이니 많이 먹으라'며 닭다리와 살을 뜯어 준다. 그리고는 혹시 암이나 백혈병 같이 아픈 데는 없느냐고 묻는데 김주원이 없다고 하자 '없겠지 돈도 많고 젊은데'라고 말한다.

또한 김주원은 길익선에게 어떠한 약속을 했던 것 같다. 꿈 속에서 김주원과 길라임을 초대해 꽃술을 권하며 마법을 끝낸 길익선은 '다시 날 잊어도 좋아. 나와의 약속도 잊어도 좋아. 자넨 이미 약속 이상의 것을 해줬으니까'라고 김주원에게 말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했던 약속일 수도 있고 함께 병원에 실려 가 병원에서 했던 약속일 수도 있겠다.



김주원에게서 몇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아마도 길익선은 음지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잊지 말고 그들을 위해 배려해달라는 말을 했던 게 아닐까 짐작된다. 또한 아비 없이 홀로 살아가게 될 길라임을 보살펴 달라는 부탁도 빼 놓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길익선은 어쩌면 문분홍에게도 길라임을 부탁하지 않았을까 짐작되는데 문분홍과 김주원 모두 지키지는 못했다.

김주원이 무의식에서까지 애써 사고당시의 기억을 지워내야 했던 것을 작가는 어떻게 풀어내 놓을 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아마도 사회지도층이란 오만함과 허세로 무장했던 김주원이 절체절명의 절망적인 순간에 느껴야 했던 무기력함과 자괴감 때문이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그 때의 기억을 지워내야 했을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