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시크릿가든' 김주원의 트라우마와 진짜 마법




드라마에 남아 있는 갈등구도가 몇 개 있다. 길라임과 김주원에 대한 임종수의 감정 정리와 문분홍은 어떻게 길라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김주원은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로 생긴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정도이다. 여기에 더해 길익선이 김주원과 길라임을 꿈 속에서 초대해 말했던 진짜 마법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추론해보고 싶어졌다.

임종수는 길라임에게 이성의 감정을 갖고 김주원을 연적으로 대했으나 길라임이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지자 '일어나기만 하면 웃으면서 김주원한테 보내 줄테니까 일어나기만 하라'고 말하며 길라임의 병실을 지킨다. 그런데 김주원이 의식불명 상태인 길라임과 영혼을 바꾸고 대신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자 밤새 혼자 김주원의 병실 문 앞을 지킨다. 김주원 혼자 무서울까봐, 문 밖에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거 알면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로 보면 임종수는 김주원의 무모한 이타적인 선택으로 인해 기적적으로 생환한 길라임을 웃으면서 김주원에게 보내고 진심으로 축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분홍은 길라임을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에 앞서 지지난주에 방송되었던 문분홍의 과잉반응의 문제를 먼저 언급해 본다. 김주원을 구출하고 사망한 길익선이 길라임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문분홍은 드라마의 전개와 무관해 보일 정도로 과잉반응을 보였다. 그 장면은 아무래도 연출의 문제로 봐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의도가 어디에 있든 내용상의 간극이 생기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전체의 퀄리티를 추락시킨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문분홍은 길라임을 찾아 가 돈으로 어마어마하게 보상할테니 주원이 발목 잡지 말고 그만 좀 놓아주기를 부탁한다며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문분홍은 곧 길라임을 향해 눈을 치켜 뜨며 대답하라고 종용하며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 정도까지 했으면 나같으면 더러워서라도 접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말 남은 거 하나 없이 빼앗을 후에 패대기친 후에야 정신차리지 말고 주원이와의 관계가 정리를 끝내고 돈 받으러 찾아오라고 모욕하고 간다.




이 장면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하게 한다. 길라임은 아버지가 김주원을 구출하고 대신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운 상태인데 그런 길라임이 문분홍의 저러한 행동에 모욕감이나 연민을 갖게 될 거라는 발상은 좀 어이없어 보인다. 이 장면은 내용상의 간극을 초래한 연출의 문제와 겹치면서 더 도드라져 보였던 것도 같다.

아무래도 내용보다는 비주얼이 우선인 시대이다 보니 이것도 하나의 트렌드가 되버린 것이라 생각되는데 요즘은 비단 드라마 뿐만 아니라 소위 방송 작가라 불리는 자들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실상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특정인을 인터뷰한 것만으로 내용을 채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아마도 작가가 인터뷰한 재벌가 사모님의 사고방식이 대략 저러했었다고 봐줄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문분홍은 소외된 계층에게 적선한다는 사고가 뿌리 깊게 박힌 재벌가 사모님임에도 불구하고 위의 장면을 보고는 아주 친절하게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측면에서 나온 행동 정도로 이해하려고 하고 그러한 의견이 압도적인 공감을 얻는다. 그에서 그치지 않고 약간은 다른 관점의 의견을 찾아다니며 모욕적인 언사를 동원해 댓글을 달기도 하는데 마치 재벌의 대변인을 보고 있는 것 같을 정도다. 대한민국 국민의 2~30%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두 재벌들이라서 저러한 재벌의 언행을 이해한다고 말하고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는지는 모르겠다.

길라임이 김주원을 찾아 가 청소기를 돌려주는 장면이 있다. 길라임은 김주원의 주소대로 찾아가는데 입구에서 경비원들이 제지를 하고 CCTV가 녹화중이며 경호원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연락처를 남기라고 한다. 집 안으로 들어서 만난 여자 둘에게 길라임은 김주원씨 댁이 몇 동 몇 호냐고 묻는데 여자 둘은 여기가 김주원 사장님 댁이라고 대답한다. 길라임은 다시 이 중에 어느 집에 사느냐고 묻자 여자 둘은 여기가 다 김주원 사장님 댁이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이 이해가 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면 재벌이든가 아니면 재벌가의 시종이든가 둘 중에 하나다.



각설하고, 문분홍은 길라임을 받아들일까의 문제인데 문분홍이 길라임을 받아들이게 될 거라는 암시는 있었다고 생각된다. 뇌사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길라임은 김주원의 모든 언행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또한 문분홍의 어떤 심한 독설도 두렵지 않고 참아 넘길 여유도 생겼다. 문분홍을 찾아 간 길라임은 모욕적인 언사를 들으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끝으로 딱 한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아드님 저 주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그러자 기가 막힌 문분홍은 '너 대체 정체가 뭐야?'라고 말하는데 이 부분은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암시였다고 해석된다.

김주원의 폐소공포증은 드라마에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미 치료된 것으로 보인다. 의식이 깨어난 김주원은 21살에 엘리베이터 사고를 당하던 때의 기억 중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돌아왔으나 대신에 그 후의 기억이 사라졌다. 이것은 폐소공포증에 대한 기억도 사라졌다는 얘기가 된다. 신비가든에서 길익선이 길라임을 살릴 거라며 주었던 약술로 인해 길라임이 살아났고 딸의 영혼이 들어갔던 김주원의 병도 치료해준 셈이다.

또한 김주원은 비록 21살 이후의 기억은 없으나 결국 길라임을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 길라임의 액션 스쿨에 찾아간 김주원은 길라임의 발차기를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되는데 이처럼 길라임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하고 있다. 김주원이 마지막으로 길라임과 영혼을 바꾸기 위해 주변정리를 하면서 곳곳에 남겨두었던 흔적들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길라임과의 추억들이 불현듯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김주원이 의도적으로 지워버렸던 기억 중에서 상당부분은 되돌아왔으나 여전히 길익선이 연관된 부분은 기억하지 못한다. 사고 당시에 김주원에게 각인되어진 트라우마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김주원이 과연 이를 다시 기억해내고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어쩌면 진짜 마법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추정해 본다.



김주원이 엘리베이터 사고를 당하기 전과 후의 변화는 추론해 볼 수 있다. 김주원은 마지막으로 주변정리를 하면서 '엄마 사랑해요 언제나 언제나요 주원이가요'라고 쓴 카드와 함께 꽃배달을 문분홍에게 보낸다. 이를 확인한 문분홍은 '꼭 스무살 무렵 우리 주원이같네'라고 반색하며 좋아한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 김주원은 문분홍의 말도 잘 듣고 살갑게 굴었던 모양인데 그 후부터는 약간의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었던 모양이다.

또한 김주원이 엘리베이터 사고를 당하기 전에 대한 기억만이 남아 있는 상태를 확인하게 되자 오스카는 박지현에게 '싸가지인 본바탕에 21살의 허세까지 더해졌다'고 말한다. 이로 보면 김주원은 엘리베이터 사고를 당하기 전에도 싸가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사고를 당한 이후부터 34살까지 살아오면서는 허세를 부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분홍과 오스카는 아마도 김주원이 길익선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문분홍은 사고 현장에서 김주원을 구하고 순직하게 되는 길익선에게 어마어마한 보상을 약속했으나 결국 이를 지키지는 못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문분홍이 소외된 계층에게 선물을 주지 못했던 이유는 김주원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분홍은 애써서 사고 당시의 기억을 밀어낼 정도로 힘들어하는 김주원을 어떻게 해서든 보호하고 싶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길라임과 연관된다면 그로 인해 김주원이 또 다시 사고 당시를 기억해내고 더 힘들어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결국은 차를 몰고 가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었다고 입을 맞추어야만 했을 것이다. 싸가지에 허세를 부려도 동생으로서 김주원을 아끼던 오스카도 여기에 동의를 했었을 것이다. 이전 글에서 김주원을 구출하고 순직하게 된 길익선이 어쩌면 문분홍에게도 홀로 남게 될 길라임을 부탁했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었던 이유다.



길라임이 길익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문분홍이 소스라치게 놀라고 과잉반응을 했던 것도 아마 길라임의 존재로 인해 김주원이 사고 당시를 기억해내고 또 다시 힘들어할까봐 사전에 막아보려고 두서 없는 행동을 했던 게 아닐까 짐작된다. 그런데 이번엔 김주원이 21살 이후부터 13년 간의 기억이 사라졌음에도 문분홍은 오히려 반갑다. 김주원의 13년 기억이야 공부하고 습득해서 채우면 되지만 길라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그 사실이 반가운 것이다. 하지만 두렵다. 김주원이 길라임을 기억해낼까봐, 그로 인해 길익선까지 기억해내고 또 다시 힘들어할까봐.

어떤 계기로든 김주원은 무의식이 지워버렸던 기억 속에서 길익선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으로라도 지워버려야 했을 정도로 지독했던 그 트라우마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가 남아 있는 관건이 아닐까 생각된다. 길라임으로부터 받는 사랑과 길라임을 향한 사랑이 그것을 극복하게 해줄 것인지 또 다른 계기로 극복하게 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극 초반에 김주원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읽는 장면이 나왔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책을 읽는 부류는 대략 두 부류라 할 수 있다. 절반을 굶주리게 만드는 위치에 서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든가 또는 절반을 굶주리게 만드는 불합리함에 저항하거나 고쳐나가기 위해서. 김주원의 경우는 '학벌 허접하고 집안 후진 것도 모자라 자존심까지 꾀죄죄한' 길라임에게 사회지도층인 자기가 들뜨게 되는 이상한 현상을 합리화하고 길라임을 이해해보기 위함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따뜻한 온정과 관심을 베푸는 것은 선행차원에서 주는 선물일 뿐이라는 오만과 허세를 부리던 김주원이 위의 책을 읽는 것은 놀라운 변화라 하겠다. 그러한 데는 아마도 길익선과의 약속을 무의식에서 지워버렸으나 무의식적으로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반응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길익선이 이미 약속 이상의 것을 해줬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면 김주원은 무의식 중에서도 위의 책과 같은 고민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던 것 같다.



길익선이 말하는 '그저 처음 만난 사람들의 악수같은 거'는 바로 이러한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이제부터 김주원과 길라임이 부려 볼 진짜 마법은 김주원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선행차원이나 무의식적으로가 아닌 진심에서 의식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따뜻한 온정과 관심을 베풀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물론 대한민국 1%의 부자들 중에 1% 정도나 될까 말까할 정도로 현실성은 전혀 없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길라임이 영화 첫 촬영을 하던 날 임아영은 꿈 얘기를 들려준다. '하늘에서 새빨간 장미꽃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완전 황홀'했었던 대박꿈이었단다. 그리고 김주원과 길라임이 신비가든에서 묵던 날 그림 두 장 - 처음에는 불이 꺼져 있었는데 곧 다시 불이 환하게 켜지는 그림 - 이 스쳐지나갔다. 이러한 장면들은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작품 제목이 '검은 집'이라는 위의 그림(아래에서 두번째 이미지)은 후에 김주원이 직접 보게 되는데 김주원은 길라임을 상상하며 건성으로 그림을 보게 된다. 그 때 길라임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고 얼굴에 화색이 돈다. 전화를 끊은 김주원은 밝은 표정으로 '방금 저 집에 불이 켜져 있지 않았었냐'고 물어보며 그림을 설명하던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런데 김주원이 밖으로 나가자 그 그림에 불이 켜진다.

김주원이 보던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내용은 '검은 손'들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기아에 주목하고 있다. 김주원이 보았던 '검은 집'이란 제목의 그림은 이 책과도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그 그림은 원래 불이 켜져 있지 않았으나 길라임의 전화를 받고 기분을 전환하게 된 김주원이 불이 켜져 있었다고 착오하고 그 후에 실제로 그림에 불이 켜지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진짜 마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선행차원에서 베풀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김주원이 변화하게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