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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대물' 방송권력과 정치권력이 결탁한다면?

   
   
   
강태산은 김태봉이 뇌물죄로 의원직을 상실한 남송 해송 지역의 보궐선거 후보자로 서혜림을 영입하려고 한다. 강태산은 서혜림이 거부당한 간척지 모기떼와 관련한 보도특집 방송의 스폰서로 나서는데 그를 이용해 서혜림의 영입과 민우당의 신뢰성을 보강하려는 복선을 갖고 있다.

특집방송은 강태산의 요구대로 서혜림에게 포커스를 맞추어서 촬영되고 편집된다. 서혜림은 주민들 위한다고 나서 놓고 자기 자랑만 늘어 놓는 거 같아 낯뜨거운데 촬영과정에서 다르게 했던 클로징 멘트가 바뀌지 않고 편집되자 동의할 수가 없다며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게 된다.

서혜림이 고집하는 클로징 멘트는 '개발은 피할 수 없는 대셉니다만 산호그룹의 배째라식 환경 묵살도 문젭니다. 친환경 수변환경 조성과 개발의 조화가 절실할 때입니다'인데 이 클로징 멘트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천억이 넘는 돈이 왔다 갔다 한다. 강태산은 서혜림의 클로징 멘트를 내주는 댓가로 보궐선거에 출마하라고 권유하는데 '고작 천억 따위'에 이 나라의 미래를 버릴 수 없다고 한다.

고민하던 서혜림은 하도야가 피습되는 사건을 계기로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강태산에게 전화를 걸어 클로징 멘트를 바꿔달라고 한다. 남은 방송시간은 10분인데 강태산은 손국장에게 클로징 멘트로 바꾸라고 지시하고 부랴부랴 클로징 멘트가 바뀌어 방송된다.

드라마 '대물' 4회는 방송과 권력이 어떻게 밀접한 관계를 맺는지를 알 수는 없으나 방송권력과 정치권력이 결탁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 수 있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정치권력이 온갖 무리수를 둬서라도 집요하게 방송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이유일 것이다.



모기떼 박멸 뿐만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선 간척지의 글로벌 기업 산호그룹의 LCD 공장을 당장 유치해야 된다고 하지만 잘못 개발되면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암덩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의 회복력이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자연으로 돌려줘야 하며 이런 공사는 건설보다 철거가 몇배나 돈이 많이 드는데 거의 조단위의 돈이 든다.

개발이익을 독점해서 '고작 천억 따위'에 비할 바 아닌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게 될 기업은 '고작 천억 따위' 돈도 나가는게 싫어서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개발을 서두르려고 한다. 그러나 만약 그 개발이 잘못된다면 그 열배가 넘는 돈은 국민들의 혈세로 지불해야 된다. 방송권력이 정치권력과 결탁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결과는 이렇게 달라지게 된다.

방송과 권력의 관계는 히틀러와 괴벨스의 관계와 같다. 괴벨스는 나치 선전 및 미화를 위해 세계 최초로 정기적인 TV 방송을 이용했다. 괴벨스의 선전 방송을 들은 당시 독일 국민들은 패전의 상황에서도 승리를 확신했다고 하니 방송을 통한 선전의 효과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나치의 몰락과 함께 괴벨스는 자살했지만 방송과 권력이 결탁한다면 괴벨스의 입은 언제든 살아나서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그들끼리의 이득을 챙길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스포츠와 같이 다양하게 돌려 놓는다든가 정치부패나 환경문제 등을 방송하고 비판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눈을 가릴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방송사는 이득을 보면서도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게 되고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져 버리고 그런 작업을 통해 정치꾼들도 면죄부를 받게 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회의 부조리가 생겨나는 데는 그러한 정치꾼을 만들어내고 선전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의 책임도 크다. 위에 언급한 대리만족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방송이 도피처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꾼들은 정치선전을 통해 사람들을 길들이고 방송은 편집을 통해 시청자를 길들인다. 그렇게 잘 길들여진 사람들을 늘리게 되면 직접 나서지 않아도 길들여진 사람들끼리 알아서 치고 박고 싸우는 진흙탕 개싸움을 대신해 준다. 이것이 1%의 소수가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이다.



나는 수요일부터 '도망자'의 시청을 그만 두고 '대물'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드라마 '도망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도망자'가 재밌었다는 기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내가 드라마를 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나보다 생각했더니 '도망자'의 시청률은 오히려 더 낮아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망자' 곽정환 감독이 "시청률보다 드라마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것"이란 기사 제목이 대거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 수많은 기사들 중에 '대물'작가가 前 '여인천하' 작가로 전격 교체된다는 기사가 덜렁 끼어 있었다.

대체 왜 시청자들의 평가나 관심과는 정반대의 기사들이 나올까? 드라마에 대한 평가야 기자와 시청자들이 다를 수도 있다고 봐주더라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의 작가가 전격 교체된다는 뉴스보다 함량 미달이라 생각되는 드라마의 작가가 드라마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거라 변명하는 뉴스가 더 관심거리여야 하는건지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드라마 '대물'의 작가 교체는 정치계의 외압 때문이 아니라 방송 전에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라고는 하는데 '대물'이 정치드라마이고 그 드라마의 내용에 불편한 VIP들이 있기 때문일 거라는 의혹을 완전히 떨쳐내기는 어렵다. 동일한 원작을 토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표현 하나에 따라 편집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는 의미가 전혀 달라질 수도 있는게 바로 방송이다.

사유물이라고 할 수 없는 공중파 방송이 정치꾼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그들의 스폰서가 써준 결론대로만 방송하는 자신감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그 해답은 '방송 안 보면 된다'고 알아서 들쑤시고 다니며 여론을 왜곡하는데 앞장서는 잘 길들여진 많은 시청자들일 거다. 공중파 방송이 이러할진대 사주의 말 한마디에 의해서 움직이는 언론사들이야 불문가지일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키우고 변화를 가로막는 진짜 장애물은 부도덕한 지도층들이 아니다. 그들의 선전에 잘 길들여진 채 여론을 왜곡하는데 자발적으로 앞장서는 자들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