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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스캔들' 윤희, 선준 마침내 CC 되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곰처럼 둔한 사내 이선준이 드디어 김윤희가 여성임을 알게 되었는데 둘은 성균관으로 돌아와 성균관의 은밀한 캠퍼스 커플(CC) 생활을 이어갈 것 같다. "사내는 곰이다 곰. 이런 머저리 같은 놈. 지 눈앞에서 기집이 알짱대는대도 그걸 모르네. 눈은 가죽이 모자라서 찢어 놓은 줄 아나, 이런. 쯔쯔쯔" 수다박수의 말대로 이선준은 둔해도 참 둔하다. 성균관 동방생으로 24시간을 같이 지내면서도 김윤희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런 김윤희를 마음에 담기 시작한 자신을 스스로 남색이란 자책하다가 그 자괴감을 숨기기 위해 예와 법도를 들먹이며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도 모자라 김윤희에게서 도망치듯 성균관을 떠난다.

김윤희와 문재신의 남색 추문에 대한 유벌을 결정하려는 재회에서 목격자로 나선 이선준은 향관청에 김윤희 문재신과 함께 있었으니 자기 또한 남색이라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한다. 맹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선비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덕목들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차례로 언급하며 남색은 추문이 아니라는 이유를 댄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계율이나 비뚤어진 잣대를 들어 추문이라 손가락질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으며 그것이 성리학을 하는 유생의 길이라면 저는 차라리 남색이 되는 길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이선준이 성균관 재회에서 한 말은 일견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자기합리화를 위한 궤변이라 할 수 있다. 강상의 윤리가 곧 하늘이고 법이었던 조선시대에 만약 이선준 같은 자가 있었다면 아마도 유림에서 생매장을 당했을 것이다. 또한 이선준의 말을 들여다보면 이선준은 그 자리를 빌어 동성인 김윤희를 마음에 담고 있는 성정체성에 대한 자기 고민을 토로한 것이고 그러한 고민에 빠져 있던 이선준은 스스로가 그런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장의가 재회를 연 본래의 목적이 부상을 입고 성균관으로 들어왔던 홍벽서를 잡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된 이선준은 향관청에서 김윤희와 문재신이 같이 있었던 것을 보고는 자기의 비정상적인 기준으로 가당치도 않은 오해를 했던 자신을 책망하고는 동방생인 김윤희와 문재신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성균관을 떠나버린다. 뒤늦게 이선준이 성균관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 김윤희는 부용화의 집에서 서성거리다가 부용화와 정혼을 하기 위해 찾아온 이선준을 만나게 된다.

이선준은 김윤희를 마음에 담은 자기 때문에 김윤희가 손가락질을 받을까봐 부용화와 서둘러 혼인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자기의 감정을 숨긴 채 거짓말을 하면서 살 자신이 없고 그것이 행복한가에 대한 구용하의 물음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망설이지만 부용화와의 약조를 지키기 위해서 정혼을 결심하려고 부용화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김윤희가 그 자리에 나타나자 결국 부용화와의 정혼 약조를 취소하고 파혼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는 김윤희를 뒤쫓아가 마침내 사랑 고백을 한다. 그거 참, 김윤희가 여성인 걸 알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나의 관점에서는 꽤나 이상했을 것 같다. "니가 좋다, 김윤식. 길이 아니면 가지 않던 내가, 원칙이 아니면 행하지 않던 내가, 예와 법도가 세상의 전부인줄 알던 내가, 사내 녀석인 니가 좋아졌단 말이다. 내가 널 벗으로도 동방생으로도 곁에 둘 수 없는 이유다. 김윤식, 니 곁에서 더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속이며 살 자신이 없으니까. 걱정 마라 김윤식, 널 다치게 하지는 않아. 내 마음 때문에 니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게 하진 않을거다. 니 앞에 나타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지금으로선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전부니까."



이 정도만 보면 김윤희와 이선준이 인연은 인연인 것만은 확실한데 김윤희가 여성이라는걸 모르는 상태라면 김윤희와 이선준의 이야기만 써도 왠만한 패설은 저리가라할 정도다. 예와 법도가 세상의 전부인줄 알던 진성 이문의 장손 이선준이 규중 아녀자들의 한가한 넋두리에나 어울릴 법한 낯간지러운 말을 그것도 아비앞에서 꺼내고 그 이유가 남색 때문이라니 이거 이 정도면 진성 이씨 가문에서 드라마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김윤희는 이선준의 마음을 확실히 알고는 성균관으로 돌아와 '세상을 멋대로 속이고 산 죄에 대한 벌을 받는 모양'이라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에 빠진다. 자기의 거짓말 때문에 이선준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기회를 포기할만큼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느끼고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이선준이 영영 등을 돌려버릴까봐 겁나고 두렵다. 그 때 걸오가 김윤희를 찾아오고 김윤희는 걸오에게 상담을 한다. 걸오는 고민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고 미안하게 됐으니 용서해달라고 하라고 대답해준다. 옆에서 지켜봐야만 되는 걸오는 무슨 죄가 있다고 늘 걸오에게 이런 짐을 지우는거냐.

성균관을 떠나 월출산 자락 죽정서원에 들어간 이선준은 김윤희에 대한 마음이 깊어 상사병 증세를 보인다. 한편 성균관 유생들이 재회 뒤풀이격인 모꼬지를 이선준이 있는 월출산으로 정하고 구용하는 이선준과 김윤희를 만나게 하기 위해 계획을 준비한다. 이선준의 시종인 순돌이에게 이선준을 모종의 장소로 불러내라고 얘기하고 순돌이가 이선준을 데리고 나온다. 거기서 김윤희를 본 이선준은 더는 상관없는 사람이라 말하고 돌아서려 하지만 곧 김윤희에게로 달려간다.



마침내 김윤희를 발견한 이선준은 김윤희를 끌어 안고 "안되겠다 김윤식. 아무리 애를 써도 난 이렇게 널 찾아 헤맬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이제 니 차례다. 나한테서 도망가라 김윤식"이라 말하고 등을 돌린다. 마침내 사실을 고백할 결심을 굳힌 김윤희는 이선준에게 대답을 듣고 가라며 돌려세우고 이선준에게 다가가려다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고 만다. 이선준이 놀라 즉시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김윤희를 안고 나와 정신차리라 소리치며 웃옷을 벗기려다가 마침내 김윤희가 여인임을 알게 된다.

월출산의 수려한 경관 속에 서로 껴안고 있는 김윤희와 이선준의 그림은 참으로 그럴싸한데 그건 김윤희가 여성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라면 도포를 걸치고 갓을 쓴 두 선비가 그렇게 서로 얼싸안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꽤나 황당했을 것 같다. 이런 촬영은 미리미리 좀 해두지 아무리 연기자들이라지만 이 추운 날 물속에서 참 고생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유천은 박민영을 구하기 위해서 물 속으로 뛰어들 때 완전히 거꾸로 쳐박히다시피 한바퀴 돌아서 물 속으로 들어갔는데(아래의 이미지) 꽤나 물 많이 먹었을 것 같다. 대역이 아니었다면 그 장면만으로도 박유천의 연기 투혼은 박수를 받아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어쨌거나 이렇게 이선준은 드디어 남자인줄로만 알았던 김윤희가 여성임을 알게 되었는데 수다박수의 말을 빌자면 '그 둔한 이선준이 김윤희가 계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끝난 것'이다. 아마도 이선준은 김윤희를 따라 성균관으로 다시 돌아와 요즘말로 CC로 지내게 될 것 같다. 금녀의 집인 성균관에서 CC라니 발칙하기 그지 없는 상상이지만 그 안에서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사랑을 키워가려면 굉장히 치밀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시인인 안티파네스(Antiphanes)도 말했듯이 "술에 취한 것과 사랑에 빠진 것 두 가지 사실은 숨길 수 없는 법(A man can hide all things, excepting twain - That he is drunk, and that he is in love."이다.



아마도 김윤희와 이선준이 목하 연애중이라는 사실은 이내 들통이 나고 말 것이고 그리 된다면 성균관은 물론 전국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고 그 둘은 청금록에서 영원히 삭제되어 과거와 출사의 기회는 박탈되고 성균관에서 제명은 물론 유림계에서 파면되는 것까지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김윤희와 이선준이 CC로 발전한 것은 한편으로는 축하해야 할 일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굉장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에 염려스럽기도 하다.

물론 이 둘은 정조가 궐로 불러들여 금등지사를 찾으라는 어명을 내릴 것이고 그러다보면 김윤희의 정체가 성균관의 모든 유생들에게까지 탄로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조가 계획중인 수원 화성 축조에 이용하기 위해 정약용은 거중기(擧重機)를 고안해서 정조에게 보고를 하러 갔다가 정조가 양귀비를 흡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조가 잘금 4인방을 하루라도 빨리 궐로 들여서 금등지사를 찾으라는 밀명을 내리고 싶다고 하자 정약용은 언젠가 그들의 허물을 보게 된다면 그 죄는 반드시 자기에게만 물어달라는 약조를 받아내고는 날이 밝는대로 잘금 4인방과 함께 입궐하겠다고 한다. 이 장면을 보면 아무래도 김윤희가 여성임이 밝혀지는 것은 정조와 연관되고 그에 대한 처벌도 정조가 결정하게 되겠지만 해피엔딩이 될 거라 예상해볼 수 있겠다.

정약용 이 자는 임금 알기를 졸로 아는건지 정조에게 날이 밝는대로 입궐하겠다고 하고서는 다음날 날이 밝아도 입궐하려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남색 추문에 대한 유벌을 결정하려는 성균관 재회가 등장하면서 정조의 어명은 온데간데없어지더니 이번에는 이선준이 성균관을 떠나 서원으로 내려가버리면서 정조의 어명은 웃음거리가 되버리고 말았다. 정조가 아무리 열린 임금이었다고는 하나 정약용이 임금 말을 알기를 너무 우습게 알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허술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는지 의아하다. 이런 게 이 드라마의 특징이고 어쩌면 그게 매력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