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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성균관스캔들' 걸오를 유인한건 초선이 아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16강은 김윤희와 이선준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가는 장면들이 주를 이루었고 이번 글은 이 둘의 달달한 연애담을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둘의 연애담은 주말쯤이나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에는 다른 글을 쓰려고한다. 그 이유는 16강에서 좀 특이한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고 여기서는 그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천하일색으로 당대 최고의 일패기생인 초선이. 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보면 이상하게도 초선이가 측은하고 염려되고 마음이 쓰인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성상납 스캔들로 자살한 유명 연예인이 떠오르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초선이의 소원대로 '더 늦기 전에 꼭 한 번쯤은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보길' 바랬는데 초선이는 계속해서 기생이라는 굴레를 쓰고 살아가게 될 모양이다.

성균관 유생들이 모꼬지를 갔다가 돌아오는 날 초선은 김윤희를 만나기 위해 길목에서 기다린다. 김윤희가 초선을 찾지 않으니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볼 수 있는 방도가 없어서다. 사내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천하일색 초선이가 김윤희를 만나 마음에 두기 시작하면서 일편단심 초선이가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초선에게 희망고문을 한 김윤희의 책임이 크다.



김윤희가 초선을 따라 모란각으로 가는데 걸오는 스쳐지나는 초선에게서 맡아본 적이 있는 향내를 맡게 된다. 여림에게 그 향은 기녀라면 누구나 다 쓰는거냐고 묻는데 여림은 그 향은 독해서 초선의 미모 정도는 되야 어울리는 향으로 오직 초선이만 쓰는 향이라고 알려준다. 걸오가 맡은 향은 가짜 홍벽서와 마주쳤을 때 맡았던 향이었기에 김윤희가 걱정된 걸오는 모란각으로 뒤따라가 밖에서 기다린다.

김윤희와 마주 앉은 초선은 '어린 날 화초를 올린 뒤로 오늘까지 제법 화려한 기녀로 살았으나 천한 몸을 사내들의 노리개감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아는 여인네의 몸이다 감싸주신 분은 도련님이 처음이었다'며 '천한 계집이니 도련님의 배필이 되고자하는 욕심은 부리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도련님 곁이면 정인이 됐든 첩실이 됐든 여인인 저를 아끼며 살 수 있을 것 같고 도련님께서 저를 돌아봐주실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아도 좋다 허락해 달라'고 말한다.

초선은 기적(妓籍)에서 이름을 빼고 마음에 품은 김윤희의 곁에서 김윤희를 바라보며 여인으로,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김윤희는 허락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의사를 밝힌다. "이렇게 곱고 심지 곧은 그대에게 난 참 부끄럽고 모자란 사람이오. 그러니 더는 내게 마음 주지 마시오. 난 자격이 없소." 미안하다고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한 것이지만 이렇게 고운 말로 퇴짜를 놓으면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또 다른 희망고문이 된다. 김윤희는 여자의 몸임을 밝힐 수 없는 처지이기는 하나 결과적으로는 몇 번씩이나 초선의 마음을 후벼파는 나쁜 남자(?)인 셈이다. 낙담한 초선의 슬픈 눈빛이 자꾸 마음이 쓰인다.



죽음을 무릅쓰고 가짜 홍벽서 행세를 했던 초선이 병판에게 원했던 것은 '더 늦기 전에 꼭 한번쯤은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기적에서 이름을 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사람인 김윤희의 곁에서 바라보고 살아가기 위함이었다니 김윤희가 정말 잔인한 짓을 하고 있었다. 기생인 초선이 일편단심 지키려던 신의는 김윤희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배반해버린 것이다.

초선은 입청재 때 김윤희의 마음이 이선준을 향하고 있음을 알고는 이선준의 뺨에 입을 맞추며 김윤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려고 했었다. "내 사람이 될 수 없는 이를 원하다 상처 입고 상처 입히고 그래도 쉬 그 마음이 접어지질 않아 날마다 무간지옥을 헤매지요. 첫 정이란 그런 것이니까요"라고 말하며 김윤희를 걱정했었다. 초선의 이 말은 남색 에피소드와 관련되었기에 초선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고 봤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면 초선이 처음으로 마음에 담은 사내는 김윤희였고 초선은 그렇게 김윤희에게 마음을 고백했던 것이었다.

이 때 초선은 물빛 저고리를 입고 있었는데 초선이 열 살의 어린 나이에 병판의 집으로 뛰어들었을 때에도 물빛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초선에게 물빛 저고리는 살아보고자하는 몸부림과 같은 의미였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병판의 집으로 뛰어들 때도 살아보고자 그랬고 김윤희를 찾아오면서는 여인으로,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어서였고 진짜 홍벽서와의 대결을 앞두고 죽을 수도 있는 가짜 홍벽서로 가기 전에 김윤희의 마음을 더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김윤희가 이선준에게 조선은 희망이 없는, 여인에겐 꿈꾸는 것이 허락 안되는 나라라고 투정부리는 것은 대단히 이율배반적인 것이다. 김윤희가 초선에게 했던 언행은 자기 삶의 무게만 생각하고 자기보다 더 천한 여인의 고단한 삶은 헤아리지 못한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것이다. 김윤희의 말이 배부른 투정이 되지 않으려면 초선이 기적에서 이름을 빼게 될까 염려할게 아니라 초선이가 기적에서 이름을 빼고 여인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게 맞다.

그럼 초선이 기적에서 이름을 빼고 평범한 여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었을까? 정조대에는 물론 조선시대에 기생은 노비와 마찬가지로서 한 번 기적에 오르면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기생이 천민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양반이나 부유한 양인(良人)의 소실이 되어 속가(贖價)를 납부하고 속신(贖身)했을 때 뿐이었다.

지금까지 진행된 드라마로 본다면 초선에게 가장 괜찮은 경우는 문재신 또는 이선준의 위장 첩실이 되어서 기생의 신분을 벗는 것이다. 그러나 걸오에게 이것까지 떠안기는 것은 너무 잔인하고 이선준이 초선을 위장 첩실로 삼아 기적에서 초선의 이름을 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병판 이 자가 도대체 초선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초선이 그토록 증오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초선을 가짜 홍벽서로 이용하면서 초선에게 약조한 것은 기적에서 이름을 빼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을 것 같은데 거기에는 속가를 납부해주는 것까지 포함되었어야 한다. 물론 어떤 방법이든 초선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 선택했을 경우여야 한다.



모꼬지에서 돌아 온 성균관 유생들은 황감제 준비에 매달리고 걸오는 저잣거리에 나들이 나온 초선의 뒤를 밟는다. 누군가 뒤를 밟는다는 낌새를 눈치 챈 초선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도망을 치고 걸오가 뒤따라가지만 결국 놓쳐버리고 만다. 그런데 그 때 어디선가 홍벽서가 붙은 화살이 날아온다. 걸오가 홍벽서의 내용을 확인하는데 걸오의 아비 대사헌이 보낸 사헌부 군사들이 나타나 걸오를 데려간다.

대사헌은 걸오에게 걸오가 홍벽서라는 것과 가짜 홍벽서는 좌상과 병판이 놓은 덫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가짜 홍벽서가 잡히기 전까지 꼼짝없이 그 모든 죄를 뒤집어 쓸 수 밖에 없으니 제발 자중자애하라고 당부한다. 걸오는 자기 대신 임금께 금등지사를 호송하다 아들인 문영신이 노론들의 손에 죽었다는 상소를 올려주면 그 날로 깨끗이 접어주겠다고 대답한다. 자기 방으로 간 걸오는 홍벽서를 꺼내 들고 읽어보면서 "어이 이번엔 광통교냐?"라고 혼잣말을 한다.

걸오는 홍벽서에 적힌 시간에 광통교로 나가는데 군졸들이 쫘악 깔려 있어서 급히 달아난다. 군졸들을 피해 숨었다가 여림을 만나게 되는데 여림은 군졸들이 쫘악 깔렸으니 자기 집에서 묵고 가자고 한다. 여림을 따라가려던 걸오는 군졸들을 피해 달아나는 과정에서 형인 문영신의 유일한 유품인 팔찌를 떨어뜨렸다는 것을 알고는 찾으러 간다. 그 때 누군가가 걸오의 앞을 막아선다.



그 시각 잘금 4인방의 앞에 차례로 누군가가 나타나 그들을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정조가 보낸 사람들로서 정조가 잘금 4인방을 은밀하게 궐로 호출한 것이다. 반궁의 미친 말 걸오가 정체불명의 누군가와 맞닥뜨리고서도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따라나선 것으로 보면 아마도 임금의 명을 수행하는 사람임을 상징하는 것을 보여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걸오를 광통교로 유인한 것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걸오가 초선의 뒤를 밟다가 홍벽서를 받게 되었으므로 초선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초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가장 유력한 경우는 장의 하인수로 봐야 한다. 김윤희와 이선준이 황감제 결승 문제를 풀고 있을 때 걸오와 구용하는 사직 아이를 통해 결과를 알아낸다. 그 때 하인수가 나타나 황감제 시험보다 더 중요한 시험이 있다고 말하며 걸오의 팔목에 있는 팔찌를 유심히 살핀다. 그리고 광통교에서 걸오가 도망친 후 현장에 나타난 하인수는 걸오가 떨어뜨린 팔찌를 주워 들고는 나를 모욕하고 우리 가문을 우습게 여긴 그 놈들을 당장 잡아 오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난 것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걸오가 보던 홍벽서의 내용이다. 홍벽서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궁금해서 캡쳐를 했다가 깜짝 놀랐다. 홍벽서에 적힌 내용은 정조가 황감제 결승전 문제로 직접 출제한 문제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 나라 관원의 백성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그대들은 이 파자를 톻해 밝히라. 단 파자의 원전은 예기 42편의 주희 해석본을 따른다."



이 홍벽서의 내용을 부실한 소품관리의 문제로 봐야할지 정조가 홍벽서를 이용해 걸오를 유인해 낸 것으로 봐야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아무리 그래도 성균관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인데 이런 엉터리 내용으로 홍벽서를 채웠을까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 전에도 엉터리 한자가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 부실한 소품관리의 문제라고 봐야 될 것 같다. 사직 아이로부터 김윤희와 이선준의 답을 듣고는 장원이 결정났다고 말할 정도로 풍부한 지식을 보유한 걸오가 홍벽서의 내용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봐도 역시 부실한 소품관리의 문제가 맞을 것 같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을 주무대로 하고 수시로 공맹을 들먹이면서 이런 사소한 소품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제작진들의 무성의함이 지나치다. 아니면 시청자들의 수준을 너무 과소평가한 나머지 한자 정도는 적당히 흉내만 내도 시청자들이 알아내지는 못할 거라는 오만함에서 나온 발상일 수도 있겠다. 이 드라마를 한자권 국가에 수출할 때는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한자 표기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