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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도망자 Plan.B' 정체성과 집중도가 관건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으면서 기대치를 높이던 드라마 '도망자 Plan.B'가 어느덧 4회 분량이 지나갔는데 기대치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속 빈 강정' 같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금 상태로라면 아이리스, 추노, 신데렐라 언니, 제빵왕 김탁구로 이어져 온 KBS 수목극 왕좌의 자리를 '도망자 Plan.B'가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드라마 '도망자 Plan.B'는 전체적으로 기존의 드라마들과는 차별되는 점들이 많은데 그러한 차별점들이 참신하다거나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꽤나 산만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캐스팅이나 촬영장면을 보면 꽤나 많은 제작비가 투자 된 듯한데 그 엄청난 스케일과 물량공세에 비하면 알맹이는 초라하기 그지없어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라 할 만하다.

현재까지 나타난 드라마 '도망자 Plan.B'의 문제점은 정체성이 모호한 데에 있는 것 같다. 현재까지 드라마 '도망자 Plan.B'를 끌고 가는 것은 액션과 코믹 그리고 로맨스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코믹도 아니고, 로맨스도 아니고, 액션도 아니고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점은 코믹이 지나치게 경박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러한 경박한 코믹이 로맨스와 액션 모두를 겉돌게 만들고 드라마의 긴장감이나 몰입도를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액션 역시 화려하기는 한데 어디선가 본 듯할 정도로 눈에 익은 장면들이 많아 전체적으로 지루하게 느껴진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정지훈과 이정진의 액션 외에 이나영의 액션 연기는 눈길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다음 장면들에서 경박한 코믹들이 이어지면서 대부분 상쇄해버렸다. 멜기덱을 추적한다는 것은 어느새 단조롭게 느껴지는데 그 외에 뭔가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만한 탄탄한 스토리가 없다면 지금까지처럼 지루한 액션과 경박한 코믹 위주로 드라마를 끌고 가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드라마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보니 드라마에 대한 집중도도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한국, 일본, 중국, 홍콩, 필리핀 등지를 수시로 넘나들면서도 그렇게 해야 하는 별다른 당위성이나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해줄 만한 짜임새가 부족한 것도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다 보니 드라마의 구성이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지루하며 허술하게 느껴진다.

그 외에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장면들이 종종 나오는데 이 때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들의 대부분이 비슷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없고 개연성마저 떨어지기에 더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은 연출과 편집 그리고 스토리 구성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드라마 '도망자 Plan.B'에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지나치게 경박한 코믹을 버려야 한다. 진지하게 접근해야 될 것으로 보이는 액션 장면에서는 물론 로맨스 장면에서까지 시도 때도 없이 경박한 코믹이 불쑥불쑥 튀어 나와서 긴장감과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이것이 스토리의 앞뒤 연결마저 어색해지게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경박한 코믹을 가져가더라도 연출이든 편집이든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완급 조절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드라마 '도망자 Plan.B'는 슬슬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가 어울리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현재까지는 막대한 투자에 비해 드라마의 완성도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 구성의 짜임새나 집중도를 지금보다 더 높이지 못한다면 이 드라마는 범작으로 그칠 가능성이 더 커 보이고 전체적으로 고비용 저효율 드라마라는 오명을 쓰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시청자들과 교감하고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되고 말 것이다. 가령 정지훈이 연기하는 지우의 캐릭터의 경우인데 약간은 독특한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개연성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장면이 많은 만큼 공감하기는 어렵다. 지우의 캐릭터는 4회를 보는 동안에 이미 그 패턴이 정형화되었음에도 도수(이정진)를 비롯한 여타의 캐릭터들이 계속 지우의 비슷비슷한 수법에 말린다는 것은 꽤나 황당하고 어이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지훈의 팬층이 얼마나 되고 공고한지 모르겠으나 드라마 '도망자 Plan.B'에 출연하는 모든 출연자들이 고현정 하나를 당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불행하게 드라마 외적인 문제까지 터져 나온 시점이라 조금은 더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제작진들이 'Plan. B'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면 지금은 기존의 패턴을 버리고 'Plan. B'를 가동해야 할 시점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