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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성균관 스캔들' 금등지사, 통공, 채제공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전개가 김윤희와 이선준의 러브라인이 본격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또 다시 정체된 듯한 느낌이 든다. 드라마가 이상하게도 스토리의 얼개를 너무 가볍게 취급하는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허술하게 느껴지는데 시청자가 커다란 얼개를 꼭 잡고 가지 않으면 꽤 산만하고 지루한 드라마로 받아들여지기 딱 좋다. 단순히 등장인물들의 러브라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감각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런대로 봐줄만은 한데 가끔씩 등장하는 전체적인 스토리 얼개는 오히려 드라마를 영 생뚱스럽고 뜬금없이 느껴지게 만들고 드라마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받아들여질 개연성이 크다.

정조를 다루는 드라마나 소설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영조의 금등지사(金縢之詞)'와 통공발매정책인데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도 이 모두가 등장하고 있다. 정조의 치적을 언급할 때 생략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드라마는 정조에게만 촛점을 맞추고 채제공은 거의 주변인물에만 머물러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물론 극적인 전개를 위해서겠지만 채제공의 업적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는 것 같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역시도 채제공은 그저 온화하고 친근한 외할아버지 같은 존재로 거의 병풍 노릇을 하는 정도로만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금등지사와 통공발매정책은 채제공을 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모두에 채제공은 깊이 관여되어 있다. 정조시대에 이루어졌던 개혁정책의 대부분은 채제공이 지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정확한 연대가 언제인지를 알려주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는데 바로 신해통공이다. 성균관 도난사건을 계기로 정조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도난사건의 진범을 잡으라는 과제를 내주는 순두전강을 실시한다. 범인으로 오인받는 김윤희를 주축으로 하는 소위 잘금 4인방은 진범을 추적하다가 금난전권의 폐해를 목격하게 된다. 김윤희가 시전행수의 비자금 장부를 수중에 넣는 것을 계기로 일이 커지게 되고 그것이 정조의 신해통공 조치로 이어진다.

신해통공이라 함은 각 시전의 국역은 존속시키면서 도가상업에 대해 공식적으로 금난전권을 금지시킨 조치를 말한다. 이 때가 1791년 신해년이었고 자유판매를 허용한다는 통공발매정책이기에 신해통공이라 한다. 정조 시대에 통공 정책은 총 세차례 이루어졌었는데 드라마에 등장한 신해통공보다 4년 전에도 있었다. 1787년에 이루어진 정미통공이 그것인데 이 때에는 일부 시전의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자유판매를 허용한 통공정책이었다. 그리고 신해통공보다 3년 뒤인 1794년에는 육의전 이외의 다른 시전이 가졌던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자유상인과 수공업자들도 도성 안에서 자유로이 상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갑인통공 조치가 이루어졌다.

정조 시대에 이루어졌던 신해통공발매정책의 주동자는 당시 좌의정이었던 채제공이었다. 채제공은 도가(都價)상업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육의전(六矣廛) 이외의 모든 시전에게 금난전 전매권(禁亂廛專賣權), 즉 도가권(都價權)을 허용하지 말며, 설립 30년 미만의 시전은 이를 폐지할 것을 건의하였고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신해통공정책을 실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채제공은 금등지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채제공은 영의정에 임명되었을 때 죄인으로 죽은 사도세자를 신원(伸寃)하기 위한 단호한 토역(討逆)을 함으로써 새로운 의리(壬午義理)를 세울 것을 주장했다. 당시에는 노론이 우세를 점하고 있던 때였기에 금기시되었던 것으로 노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정조는 채제공을 두둔하기 위해 금등지사를 공개한다. 여기서 임오의리란 사도세자 죽음을 둘러싼 시비를 밝혀 도리를 세우니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말라는 뜻으로서 영조가 정리한 것이다. 그러나 임오의리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이 됨으로써 문제가 되는데 이를 둘러싸고 노론은 벽파(僻派)와 시파(時派)가 갈라지게 된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신해통공이 등장한 것은 드라마의 정확한 시대적 배경이 1791년 정조 15년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드라마에서 채제공은 영의정으로 나오나 실제로는 그 때에 채제공은 좌의정이었다. 그 후 1793년에 가서야 채제공은 잠깐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노론계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정조의 숙원인 수원성역(水原城役)에 매진하다가 1798년에 사직했다. 드라마에서 신해통공이 등장했고 금등지사는 가끔 운만 떼고 있는데 채제공이 임오의리를 거론한 것이 1793년 영의정에 임명되었을 때였으니 약 2년 후면 금등지사가 빛을 보게 된다. 그러나 금등지사는 문서자체가 공개된 것은 아니니 만약 드라마에 등장한다면 허구라고 보면 되겠다.



마지막으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12강에는 잘못된 장면이 나온다. 성균관에서 장치기 대회가 열리기 전날 입청재(入淸齋) 행사가 열리는데 세책방 황가는 입청재 행사에 맞추어 성균관으로 나들이 나온 규수들을 상대로 일등 신랑감 명부를 한냥에 판매한다. 이 명부엔 성균관 유생들의 당색은 물론 집안과 청재 배정표와 성적표까지 다 실려 있다고 하는데 여인네들은 이 명부를 사서 들고는 명문가 고관대작 아들들을 찾아 다닌다. 여기서 잘못된 장면이 나오는데 세책방 황가를 비롯해서 여인네들의 손에 들려 있는 명부에 씌어 있는 人名'部'다. 이는 人名'簿'라 써야 맞다. 설마 세책방 황가가 잘못 썼을 것 같지는 않고 드라마의 소품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