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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스캔들' 김윤희의 자존심과 사랑

   
   
   
대물 김윤희는 성균관에서 나오는 두둑한 용채를 받아서 집으로 간다는 설레임에 들떠서 성균관을 나선다. 매달 8일과 23일 성균관에서 거관수학하는 성균관 유생들은 성균관을 떠나 집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데 바로 그 날이기 때문이다. 이 날이 정확히 8일인지 23일인지는 알 수 없는데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 날 유생들은 유생의 품위를 떨어뜨려서는 안되며 성균관에 복귀할 때는 반입금지된 각종 물품들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아야 하며 용채는 백성의 고혈이니 함부로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김윤희는 병약한 동생 김윤식의 병구완과 집안 살림을 책임지기 위해 동생 김윤식의 호패를 들고 남장을 하고 세책방에서 필사일을 하는 억척 소녀가장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이선준과 얽히게 되면서 성균관에서 거관수학하라는 어명을 받게 된 김윤희는 금남의 집인 성균관에서 하루하루가 난중일기를 써야 할 정도로 전쟁인 위험천만한 성균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실제로는 남장한 여자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치명적인 결과가 생길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지만 김윤희는 난생 처음 누려보는 성균관에서의 생활이 그저 신기하고 기쁘기만 하다. 성균관에 입교하게 되면 동생의 병을 치료할 약재는 물론 두둑한 용채까지 나오고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는 김윤희의 소원은 남장한 여자라는 사실이 들통나지만 않는다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집에 가는게 좋은거냐 돈이 좋은거냐'는 성균관 동기생들의 질문에 '이 돈을 들고 집에 가는게 너무너무 좋다'고 대답하는 김윤희는 사내대장부 못지않은 물건이다. 구용하가 김윤희에게 대물이라는 별호를 붙여준 의도는 달랐으나 여러모로 김윤희에게 잘 어울리는 별호가 바로 대물이다. 이선준은 김윤희에게 아픈 동생에게 쓰라며 약첩을 건네주고 김윤희는 기분좋게 받아든다.

이 때 성균관 장의 하인수가 나타나서 성균관 식당의 반찬을 싼 보따리와 약첩을 던져준다. 그리고는 유생들이 성균관을 비우고 나면 식당반찬은 쉬어터지게 되고 반촌에 내다버릴텐데 남은 반찬을 처리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으로 김윤희를 선택했다는 모욕을 한다. 이선준과 문재신이 김윤희가 상처받을까봐 나서지만 김윤희는 큰 보탬이 될 것이고 고맙다고 당당하게 말하고는 하인수가 던져 준 물건들을 챙겨들고 자리를 뜬다.

성균관을 나선 김윤희는 저잣거리에서 과자를 사고 비녀를 사고는 일거리를 받기 위해 세책방에 들른다. 세책방 주인 황가는 부용화에게서 받은 연서 대필을 하라고 하나 김윤희는 연서 말고 다른 일거리를 달라고 한다. 김윤희는 이선준이 처음에는 재수없는 치였으나 어느 새 자기 자신보다도 더 믿는 존재가 되버렸고 연모의 감정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렇기에 부용화의 연서가 이선준에게 간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연서 대필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 것이다.

김윤희가 연서 대필을 안하겠다고 하자 세책방 황가는 돈이면 뭐든지 하는 양반 아니었냐며 김윤희를 설득하려다가 그만 김윤희가 성균관 입학할 때 주었던 선금 50냥이 실은 이선준이 빌려 준 돈이었다는 비밀을 발설하고 만다. 이 사실을 알고 난 김윤희는 그 길로 이선준을 찾아가나 뜻밖에도 부용화와 함께 나오는 이선준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돌리고 이선준이 쫓아와 김윤희를 잡는다.



김윤희는 이선준에게 세책방 황가에게 다 듣고 오는 길인데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성균관 유생입네 신나서 다니는 꼴을 보고 재밌었냐며 다시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선준은 김윤희에게 '넌 그 때 돈이 필요했고 나한텐 있었으며 지금부터 차곡차곡 갚으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고 한다. 김윤희는 만약에 그 사실을 알았으면 또 다시 고리채를 쓰더라도 안 받았을 것이고 그것을 자존심이라고 부른다며 날 동정한거냐고 하고는 자기가 나쁜 놈인줄은 아는 성균관 장의 하인수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이선준을 몰아세운다.

하인수로부터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도 의연하게 대처했던 김윤희가 이선준에게 이렇듯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선준에 대한 김윤희의 자존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모하게 된 사람에게 지키고 싶은 자존심과 연모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값싼 동정을 받고 싶지는 않다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아니었을까.

집으로 돌아 온 김윤희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식구들과 식사를 한다. 성균관에서 받은 용채로 산 비녀를 어머니에게 주며 은비녀 하나도 사주지 않던 아버지가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외갓집하고도 등지셨는지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느냐고 묻는다. 김윤희의 어미 조씨부인은 '그 때 외가하고 등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못난 어미로 살지는 않았어도 될텐데 매일같이 후회한다'고 담담하게 답한다.

김윤희는 동생 김윤식을 위해 성균관에서 가져 온 약첩을 달이고 김윤식은 집에 온 누이가 내내 안쓰러워 '정말 지낼 만한 거냐'고 묻는다. 김윤희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윤식아, 누나 앞으로 더 열심히 살거다. 니 말대로 이름값 해야지. 김윤식'이라고 한다. 그렇게 김윤희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름값하라는 말은 김윤희가 성균관으로 들어가던 날 김윤식이 해주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 때 김윤희가 김윤식에게 이름값 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은 이선준에게 어설픈 자존심이나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다음 날 성균관으로 돌아 온 김윤희는 이선준과 맞닥뜨리자 애써 쾌활하게 웃으며 지난 날에 있었던 일은 좀 과했고 괜찮으니까 이젠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며 돈은 천천히 하지만 꼭 갚겠다고 한다. 이선준이 그런 말이 아니란걸 잘 알잖느냐고 하자 김윤희는 '내 정신 좀 봐 인사를 잊었네 지금껏 고마웠소'라며 억지로 화제를 바꾸고 돌아선다.

그러나 이 때 나타난 하인수가 이선준에게 '매제'라고 부르자 김윤희의 마음은 또 다시 흔들리고 혼란스러워진다. 김윤희는 전 날 이선준과 헤어지고 난 후 세책방에 들러 못하겠다고 했던 연서 대필 일을 맡게 되었는데 막상 명륜당에 혼자 앉아서 연서를 써보려고 애를 쓰지만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망설이게 되고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한편 이선준과 문재신의 김윤희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보게 된 구용하는 또 다시 김윤희의 웃통을 벗겨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한다. 부용화와 이선준 단 둘이 섬에서 보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급히 취소하고는 김윤희와 이선준 단 둘을 무인도로 보내버린다. 날씨 때문에 섬으로 배가 더 이상은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버렸고 섬에는 김윤희와 이선준 둘만 남게 되었다.

이선준과 놀러 간다는 사실에 달떠서 거울까지 보면서 단장하고 이선준을 따라나섰던 김윤희는 여인네를 소개시켜주려고 데려왔다는 이선준의 말이 황당하기만 하다. "이 꼴을 해가지고 대체 뭘 기대한 거야?"라는 김윤희의 말이 모든 정황을 대변해주고 있는데 김윤희는 떠나는 배를 잡으러 물 속으로 뛰어들고 이선준은 김윤희를 잡으려고 한다.



김윤희의 이선준을 향한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선준이다. "곰이다 곰. 이런 머저리 같은 놈. 지 눈앞에서 기집이 알짱대는대도 그걸 모르네. 눈은 가죽이 모자라서 찢어 놓은 줄 아나 이런 쯧쯧쯧." 이는 수다박수의 말을 빌린 것인데 시전행수의 수장고에 숨어 들어간 이선준이 위험에 처하자 기생복을 입고 나타난 김윤희는 다짜고짜 이선준을 끌어 안으며 사심(私心)을 드러내지만 이선준은 여전히 알아채지 못하는 둔한 사내다. 그러나 그 둔한 이선준한테 김윤희가 계집이라는 것을 알려주면 그냥 끝난다고 하는데 김윤희는 그것을 밝힐만한 처지가 아니기에 이 둘의 사랑은 예측불가능하다.

이 글은 김윤희의 사랑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관전포인트를 서술해 놓았다. 드라마에서는 김윤희의 감정변화가 약간 모호하게 표현되는 면이 있는데 몇 가지의 키워드를 갖고 본다면 의외로 감정선이 잘 잡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