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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성균관 스캔들' 남색은 구용하, 초선의 첫정?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는 남색(男色) 즉 성정체성과 관련한 얘기가 등장하는 것 같은데 꽤나 한가한 진행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김윤희를 바라보는 이선준의 시선은 이성인 여성을 향한 연애감정이라기보다는 동성을 연애감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므로 드라마에 남색 얘기가 생략될 수는 없고 어떤 식으로든 다루어져야 하는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미세한 감정변화로 해결하면 충분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성균관 유생들 중에는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유생들도 있었다'는 식의 요약을 하는듯한 드라마의 전개방식은 가십란에 오르는 몇줄 짜리 연애기사 정도로 드라마의 격을 낮추어버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성장과정에서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경우가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모르지만 드라마에서 이 문제를 크게 부각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성적소수자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드라마가 전개되는 시점에서 남색 에피소드의 등장은 참으로 한가롭고 전개자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예고편을 보면 김윤희와 걸오는 남색이라는 스캔들이 터졌는데 아마도 이선준이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스로 남색임을 자처하고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이선준의 경우는 김윤희가 실제로는 여성이어서 그렇지 사실은 남자로 오인한 상태에서 연애감정을 갖게 된 것이므로 남색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개된 드라마의 내용을 보면 남색은 이선준이 아니라 구용하인 것으로 보인다. 걸음마를 떼자마자 기방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는 여림 구용하는 여색을 밝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색이 아니라 남색의 취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범주를 벗어나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되고 현실에 절망하는 정도인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면 구용하는 기방에 들락거리고 기생들과 잘 어울려 다니지만 기생들과는 이성이라기보다는 동성의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콧대 높은 초선이마저도 구용하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보이지 않고 구용하도 여타의 사내처럼 초선을 꺾어보려는 마음 자체가 없다. 초선은 화장을 하고 구용하는 옆에 있는데 그 둘은 별로 개의치 않고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구용하는 대사례나 장치기 같은 사내들의 놀이엔 별로 취미가 없고 입청재와 같이 여인네들과 어울리는 것에 더 취미가 있다. 입청재 때 구용하는 여인들을 떼로 몰고 다니면서 의기양양해 하지만 이것은 여색을 밝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남색임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허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구용하가 맘에 둔 사내는 바로 걸오였던 것 같다. 늘 걸오가 가는 곳엔 구용하가 있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윤희에 대한 감정이 혼란스러운 이선준이 구용하를 찾아가서 고민상담을 할 때에 구용하는 자기도 걸오에게 그런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남색은 아닌가 마음의 번뇌가 깊었는데 그 때 마음의 평안을 준 책이었다며 세책방에서 빌린 음란서적을 이선준에게 건네준다. 그러면서 누가 됐든 사람을 미워하는게 죄지 좋아하는 맘이 죄는 아니니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덧붙인다.

이 장면은 매사에 장난치기 좋아하는 구용하의 캐릭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고 생각했었는데 13강을 보면 아마도 이것은 구용하의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던 것 같다. 병판은 가짜 홍벽서를 내세워 살인과 도둑질을 일삼는 만행을 저지르게 한 후 진짜 홍벽서인 걸오를 유인해내려고 하고 성균관 조보에서 이 사건을 확인한 걸오는 함정인줄 알면서도 그 자리에 나가려고 한다. 걸오의 형이 목숨 바쳐 밝혀내고 싶어했던 진실이 도둑질이나 살인처럼 똑같이 손가락질 받고 잊혀져 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걸오가 몰래 성균관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구용하가 앞을 막아서며 홍벽서는 미끼고 저들이 원하는건 걸오라며 가지 말라고 한다. 구용하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걸오는 놀라는데 구용하는 세상에 하나뿐인 십년지기 문채(文彩) 정도도 몰라 볼 멍청이는 아니라며 죽을수도 있으니 가지 말라고 한다. 걸오는 사는게 더 재밌는 것도 아니니 가겠다고 대답하는데 구용하는 걸오에게 주먹을 날리며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하면 그럼 니 옆에 있는 난 뭐냐?'고 한다.

이 장면에서 보면 구용하는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고민하는 범주를 벗어나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되고 현실에 절망하고 있지만 걸오의 옆에서 맴돌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걸오가 구용하에게 '걱정마라. 털끝 하나 안 다치고 곱게 돌아와 줄테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걸오도 이를 알고 있다는 것으로 봐야 될 것 같다. 그런데 걸오의 구용하에 대한 감정이 이해심인지 동정심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걸오가 남색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구용하가 눈물까지 흘리는 이 장면은 구용하가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걸오와 쌓은 오랜 우정으로 봐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위와 같은 해석이 맞는 것인지 드라마만 봐서는 명확히 정리되지 않는다. 다만 드라마에서 남색 에피소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에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남색의 성적 취향을 가진 것은 이선준이 아니라 구용하인 것으로 보이기에 정리해 본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는 성적취향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은 인물이 또 하나 있다. 그는 바로 초선이다. 초선은 저잣거리에서 김윤희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낙담하고 입청재 때 성균관에 들어와 김윤희를 찾아헤매다가 이선준과 하효은이 있는 자리에 동석하게 된다. 초선은 김윤희의 마음이 이선준을 향해 있음을 눈치채고는 이선준의 볼에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는 기절한 척하는 하효은에게 '제가 연모하는 도련님께서 제겐 단 한번도 안 주신 눈빛으로 애기씨를 바라보시기에 저도 도련님 애 좀 태우느라 장난 한 번 쳐본 것 뿐이고 이렇게 반듯하기만한 사내에겐 어떤 설레임도 느낄 수 없다'며 결례를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자리를 뜬다.

김윤희가 뒤쫓아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는데 초선은 김윤희에게 '저는 도련님이 걱정입니다. 내 사람이 될 수 없는 이를 원하다 상처 입고 상처 입히고 그래도 쉬 그 마음이 접어지질 않아 날마다 무간지옥을 헤매지요. 첫 정이란 그런 것이니까요'라고 말한다.



초선은 김윤희가 하효은을 연모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는 거짓말을 함으로써 이선준과 김윤희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것이다. 김윤희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는 시청자들에겐 초선이가 마치 이선준과 김윤희의 사랑에 훼방을 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초선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라면 김윤희의 위험하고 불가능한 사랑을 멈추게 함으로써 초선의 사랑을 지키려는 최선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초선의 말을 보면 초선이 첫 정을 주었던 상대 또한 남색과 같이 성정체성이 다른 사람이었다는 얘기로 보인다. 드라마가 13강 정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초선의 첫사랑은 반듯하기만한 사내와는 좀 거리가 멀기도 한 구용하였던 것으로 보는 게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초선은 구용하를 마음에 품고 연모하게 되지만 구용하가 바라보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상처를 받는다. 그러다가 김윤희를 연모하게 되었는데 그런 김윤희에게서 자기 사람이 될 수 없는 이를 원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 원작에서는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이상의 내용은 이것 저것 뒤섞여 뒤죽박죽인 내용들 중에서 몇 가지를 끄집어 내 추정해 본 것이다,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