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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성균관 스캔들' 조선시대에도 마일리지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강상의 법도가 추상같던 조선시대에 남장한 여자가 금녀의 집인 성균관 기숙사에 들어간다는 상상이 발칙하기에 가볍고 천박한 내용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으며 적절한 풍자와 꽤 심오한 내용도 섞여 있어 쉽게 볼만한 드라마는 아닌 것 같다. 아직 드라마의 초반이기는 하지만 드라마에 대한 평을 해보기에는 이른 시점이라 생각한다.

세책방에서 필사를 해서 돈을 벌어 병약한 남동생의 약값과 집안의 생활을 책임지는 김윤희는 마치 오늘날의 소녀 가장이 연상될 정도로 생활력이 강하고 총명하다. 김윤희는 동생의 약값으로 충당하기 위해 병판대감에게 고리채를 빌리게 되고 이를 갚기 위해 거액을 받고 대리시험(거벽)을 치러 성균관 유생을 선발하는 초시 과장에 발을 들인다. 그런데 거벽을 세운 유생이 이선준이라 오인하는 바람에 곤경에 처하나 어려운 사정을 읍소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난다.


(세책방 주인 황가에게 눈을 찡긋하는 박민영의 표정이 귀여워 캡쳐를 해봤는데 의도한대로 캡쳐되지는 않는다.
 이 장면은 움짤로 올려야 제대로 전달될 것 같다.)


그러나 김윤희는 이선준의 '개과천선하고 꼭 새사람 되라'는 충고와 과장에서 부정행위를 바로잡는 기개를 보고는 그의 도포자락에 글 한자락을 남긴다. "글 읽는 선비라 그 기개 드높으나 백성의 살림을 살피는데 어두워라. 글을 팔아 쌀을 사는 이가 도적이면 글을 팔아 권력을 사는 이는 충신인가. 이런 자에게 칼을 쥐어주면 그가 바로 사람잡는 선무당. 큰 도적이 될 자가 있다하면 그가 곧 나다."

이선준은 시권을 맨 처음으로 제출하나 박사 정약용이 이선준의 도포자락에 적힌 글을 발견하고 '그건 새로운 협서(挾書)냐'며 '그 사람잡는 선무당이 자네인가'라고 희롱한다. 도포자락에 쓰여진 글을 본 이선준은 창피함보다는 그 글을 쓴 김윤희의 필력에 감탄하고 김윤희를 찾아 나선다.

이선준은 김윤희가 거벽이나 하기엔 아까운 솜씨라는 것을 알아보고 김윤희를 찾아 내 과장에 세우려는 것이다. 글을 팔아 권력을 사는 이들이 불만이고 배 고픈 백성들에게 밥이 되는 정치를 원한다면 아직 초시도 통과하지 못한 이선준의 도포자락에나 글을 쓸 게 아니라 임금에게 올리는 시관에 그 뜻을 밝혀 정정당당하게 출사를 하라는 뜻이다. 김윤희가 도포자락에 남긴 현문(賢問)에 대한 현답(賢答)인 셈이다.



김윤희는 조선이 당색에 관계 없이 누구나 다 실력만 있다면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을 할 수 있는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거절한다. 이선준은 김윤희를 설득할 수 없게 되자 김윤희를 과장에 세우기 위해 의도적인 계획을 세운다. 김윤희에게 줄 책값을 미리 주지 않고 세책방 주인 황가를 통해 오십냥짜리 거벽을 제의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정조가 복시는 제대로 해보겠다며 친림시로 치른다고 선포함으로써 김윤희의 거벽 아르바이트는 걸리면 곧 죽음이다. 그런데 김윤희는 당장 병판의 빚을 갚지 못하면 병판의 후실로 들어가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기에 백냥을 조건으로 거벽을 수락함으로써 과장에 발을 들인다.

이선준은 김윤희가 받은 시권에 김윤식의 이름을 써넣게 하기 위해 일부러 붓을 떨어뜨려 시권을 더럽힌 다음 새 시권으로 교체하게 만든다. 시권을 교체하려면 호패를 제시해야 되고 그렇게 되면 새로 받은 시권엔 김윤식의 이름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 김윤희는 꼼짝없이 이선준의 계획대로 김윤식의 이름으로 복시를 치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조가 즉일방방(卽日放榜)으로 과시를 치른다고 함으로써 김윤희는 정조의 앞에서 직접 시권의 내용을 설명하게 된다. 백지답안을 내면 장 백 대라는 말에 김윤희는 당연히 낙제처리 될 거라는 답안을 제출했으나 이선준과 함께 엮임으로써 오히려 정조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정조는 김윤희와 이선준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을 내린다며 성균관에서 거관수학하라는 어명을 내린 것이다.

김윤희는 이선준에게서 이자를 포함 오십두냥을 받고 세책방 주인 황가로부터 오십냥(이 돈은 이선준이 김윤희가 모르게 빌려주는 돈이다)을 선금으로 받아 병판에게 찾아가 진 빚을 갚고 잡혀 있는 김윤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 와 성균관에 입교하기로 결심한다. 성균관 유생들에겐 약재가 무료이고 적지 않은 용채(용돈)도 나오기에 동생인 김윤식의 병구완을 하기 위해서라도 성균관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김윤희가 성균관에 들어가려는 본질적인 이유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다.



김윤희가 성균관으로 들어가기 위해 집을 떠나는 날 조씨 부인은 신방례 이바지에 쓰라며 머리를 잘라 마련한 음식을 들려 보낸다. 김윤희가 반촌(泮村)을 지날 때 酒茶區域(주차구역) 종업원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데 이 장면이 꽤 재밌는 한 장면이었다. 이 종업원이 나눠주는 유인물에는 "이 곳은 주차酒茶구역입니다. 술과 차가 읻는 공간. 성균관 유딩 여러분께는 마일리지馬日利紙 재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유딩"이란 표현이 참 재미난데 오늘날로 친다면 대딩이 되는 셈이다. 마일리지를 준다는 것도 재밌는데 종이 지(紙)를 쓰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쿠폰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쌓아준다는 표현 대신에 '재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재밌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는 의외로 이런 숨은 그림찾기가 많이 들어있을 것도 같은데 가끔씩 찾아진다면 드라마를 시청하는 또 다른 재미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