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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박변호사, 팔봉의 귀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25부는 전체적으로 팬 서비스 차원에서 제작된 방송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동안 늘 당하기만 하던 김탁구가 드디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생전 처음 겪는 낯선 것들이기에 어설프지만 그 안에서 좌충우돌하며 적응해 가는 에피소드들이 그려졌다. 그래도 상당수의 팬들은 김탁구의 당당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 주에 구일중이 뇌출혈로 입원을 했었는데 이 사건은 구일중이 치밀한 계획하에 벌인 자작극이었다. 구일중은 한승재가 꾸민 교통사고를 당한 후 김탁구를 서둘러 거성의 경영에 끌어들이려고 김탁구를 찾아 가 권유하지만 김탁구는 이를 거절했다. 그래서 구일중이 김탁구를 거성의 경영에 끌어들이기 위해 뇌출혈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구일중은 박변호사를 통해 지분을 포함한 거성의 경영권을 김탁구에게 위임한다는 위임장(委任狀)을 전달했다. 위임(委任)을 통해 김탁구에게 상행위(商行爲)의 대리권(代理權)을 준다는 것에 담긴 의미를 미리 어느 한 쪽으로 추정해보는 것은 무리가 있었으나 결국은 자작극을 염두에 둔 위임장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전개가 법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별 문제는 없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현실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스토리라고 하겠다.



ordinary profit(경상이익, 經常利益)이 뭔지도 모르는 김탁구가 이사회가 열리기 전의 단 며칠만에 거성의 전체적인 경영상태를 숙지하고 이사회를 개최한다는 설정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비현실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긴 단 며칠만에 오감을 일깨워서 팔봉이 7년 여의 노력 끝에 찾아 낸 봉빵의 발효점을 찾아내 봉빵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는 설정도 있었으니 사실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런 설정들이 다소 억지스럽기는 하나 이런 게 바로 통속극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김탁구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팔봉을 떠나보낸 회한을 떠올리며 구일중마저 그렇게 잃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아는 건 없지만 구일중이 원하는대로 일을 해보겠다고 결심을 하고 거성가로 발을 들였다. 또한 구일중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이유도 궁금하기에 구일중이 깨어날 때 까지만이라도 구일중의 곁에 있으려는 것이고 팔봉제빵집이 억울하게 문을 닫게 된 것을 밝혀낼 때까지 거성가에서 일을 해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렇지만 김탁구가 회장인 구일중을 대리해 거성이라는 대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다. 그래서 구일중의 부탁을 받은 박변호사는 '일단 저 안에 한 번 들어가면 그 때부터는 전면전이고 돌이킬 수 없으니 자신이 없으면 지금 얘기하라'며 처음부터 잔뜩 겁을 준다. 김탁구는 지금까지 자신이 없다고 포기한 적이 없다며 자신은 없지만 부딪쳐 보겠다며 거성 회장실로 입성한다. 그러나 직원들끼리 국졸인지도 불분명하고 머리도 나쁜 김탁구가 대표로 왔다며 수근거리고, 전혀 생소하고 어려운 많은 일들이 김탁구를 기다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탁구는 좌충우돌하지만 박변호사의 도움과 양미순의 격려에 힘입어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가며 헤쳐나가게 된다. 주위에 믿어야 할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다던 구일중이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지면서 그 어려운 중책을 맡길 정도로 신뢰할만한 사람인 박변호사는 구일중의 부탁에 의해 김탁구가 일을 배우도록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이지만 무언의 격려와 채근을 병행하기도 하는데 마치 김탁구의 감시자로 보이기도 한다. 구일중의 부탁을 받기는 했지만 박변호사는 처음에는 김탁구의 능력에 반신반의하는 상태였다가 점차 김탁구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진심 어린 조력자로 변해 간다.



팔봉의 죽음에 맞춰 등장한 박변호사, 아마도 팔봉의 죽음 이후의 빈 자리를 메우려는 의도라고 생각될 정도로 박변호사에게서는 팔봉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구일중이 신뢰하고 일을 맡긴 사람답게 박변호사는 구일중의 무뚝뚝하고 단호한 모습과 구일중이 가장 신뢰하고 존경하는 스승인 팔봉의 인자하고 자상한 모습이 골고루 섞인 그런 캐릭터로 보인다. 그런데 김탁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김탁구의 잠재력과 에너지를 발견하게 된 박변호사는 구일중보다는 오히려 팔봉의 인자하고 자상함으로 김탁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데 마치 팔봉이 박변호사로 귀환한 것 같다.

한편 양미순은 김탁구가 구일중의 장남이고 팔봉제빵집을 떠나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김탁구에게 속마음을 조심스럽게 고백하지만 김탁구는 이를 장난으로 받아 넘겨버리고 만다. 이에 기분이 상한 양미순은 김탁구의 뒷통수를 후려치고 토라져 방으로 들어가고 말지만, 김탁구의 짐을 가지러 온 비서를 따라 김탁구가 좋아하는 음식을 싸들고 거성으로 온다. 거기서 직원들이 김탁구를 흉보며 수군거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 양미순은 회사 복도에 자리를 펴고 앉아 가져간 도시락을 김탁구에게 억지로 먹인다. 복도에서 도시락을 먹는다는 설정은 좀 우스꽝스럽지만 역시 통속극의 한 특징으로 보면 되겠다. 그리고 양미순은 김탁구에게 '기죽지 말고, 밥 굶지 말고, 어깨 쫙 펴고, 김탁구답게 하라'고 마치 김탁구의 엄마 김미순과 같은 따뜻한 격려를 해 준다.



그리고 구자경은 '아무도 널 환영하지 않을 뿐더러 불편해 하는데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건 예의가 아니라'고 김탁구에게 따져 묻는다. 이에 김탁구가 '회장님 깨어나실 때 까지만 좀 있을텐데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다닐 것이나 좀 뭣하면 아랫채에서 따로 묵어도 되니 아침 저녁으로 회장님께 문안만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대답한다. 김탁구의 진심이 담긴 말을 들은 구자경은 김탁구를 향한 시선을 바꾸게 된다. 구자경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합리적이었으나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조금은 비합리적일지라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깨지지 않는 쪽을 선택해 왔다. 그런 구자경이기에 김탁구를 향한 시선이 바뀌기는 했으나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양미순과 김탁구의 조합은 상승효과를 내는게 분명해졌는데 구자경이 김탁구에게 상승효과를 내는 쪽을 선택할지 아니면 그 반대를 선택할지 구자경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구자경의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면은 아쉬우나 마지막은 구자경의 똑똑하고 합리적인 면을 도드라지게 하는 선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