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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성균관'과' 스캔들" 발칙한 드라마

   
   
   
KBS 새 월화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은 한마디로 '발칙한 드라마'다. 강상(綱常)의 도가 곧 법이자 하늘이었던 조선시대에 당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스캔들이라는 제목이 발칙하고, 금남의 집이었던 성균관에 남장한 여자가 기숙사로 들어간다는 발상이 발칙하다. 이 발칙한 드라마가 한국사회에 또 어떤 파문을 일으키게 될 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은 소설가 정은궐의 베스트셀러 '성균관 유생의 나날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서 조선 정조 시대 성균관 유생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얘기를 다루고 있다. 원작을 보지는 못했으나 역사적 사실을 바꾸지 않는 거라면 남장한 여자가 성균관에 입교한다는 발상은 꽤나 발칙하지만 현대적 감각으로 본다면 드라마적 재미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전통과 예를 중시하는 성균관과의 의견조율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관련해 검색을 해보니 이미 한차례 홍역이 있었다. 성균관 측이 "우리 전통사회 인재들을 양성한 곳인데 '스캔들'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성균관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명예훼손"이라며 강경하게 제목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문의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균관'과 '스캔들'사이에 '과'를 추가하는 것으로 성균관 측과 합의가 되었다는 기사가 보이는데 성균관 측의 많은 양보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제작진들은 "꼭 드라마 이름을 바꾸기 보다는 성균관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성균관 측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율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주인공은 김윤희(박민영)인데 어릴 때 아비인 김승헌이 금등지사 사건에 연루되어 노론 일파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는 바람에 몰락한 가문의 여식이다. 몰락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양반가의 여식답게 시문에 능통하고 아비로부터 물려받은 남다른 문장력을 지녔다. 허나 김윤희는 병약한 남동생 김윤식의 약값을 벌기 위해 남장을 한 채 동생인 김윤식의 호패를 들고 세책방(貰冊房 ; 요즈음의 책 대여점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에서 필사(筆寫)하는 일을 한다.

세책방 주인 황가로부터 거액의 거벽(巨擘)을 제의받고 폼나게 거절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결국은 성균관 유생을 선발하는 과장에 발을 들이게 된다. 여기서 돈을 받고 대리시험을 쳐주기로 했던 자가 이선준(박유천)임으로 착오하는 바람에 일이 꼬이고 마는데 이선준의 도포자락에 글 한자락 써넣은게 계기가 되어 마침내 성균관 기숙사에서 생활하라는 어명을 받게 된다.

정조를 다루는 사극이나 소설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금등지사(金縢之詞)인데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역시도 김윤희의 아비가 연루된 사건이란 배경이 등장한다. 금등지사란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일을 후회하며 애통함을 표현한 글을 넣어 단단히 봉한 비밀문서라 해서 흔히 '영조의 금등지사'라고 한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도 금등지사가 등장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금등지사는 정조 실록에 이와 관련된 대목이 몇 번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 문서자체가 존재하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바 없다. 만약 드라마 속에 '영조의 금등지사'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허구라고 보면 되겠다.



조선시대는 남녀유별이라는 강상의 도가 금과옥조와 같았던 때였기에 시문을 아는 계집은 곧 기녀를 이르던 시대였다. 김윤희의 어미인 조씨 부인(김미경)은 김윤희가 남장을 하고 거벽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병판댁에서 빌린 돈 백냥을 갚는 대신 김윤희를 넘긴다. 여인인 김윤희에게 글재주는 독이니 사내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계집으로 살라는 충고다. 김윤희는 병판을 찾아 가 병판의 양심에 호소해보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생긴다. 병판은 김윤희의 당찬 배포가 맘에 들어서라도 자기 사람으로 삼겠다고 한다.

이 장면을 보다 보니 문득 자매명문(自賣明文)이 떠오른다. 자매명문은 일전에 'TV 쇼 진품명품'에도 나왔던 적이 있는데 조선후기에 생계를 잇기 위해 본인 또는 가족의 몸을 파는 문서를 말한다. 조선전기에는 자매(自賣)행위를 금지했었으나 흉년이 심했던 조선후기에는 허용하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자매하여 노비가 된 사람들을 '구활노비(口活奴婢)'라 불렀다. 구활노비제는 상생의 의미가 더 컸었으나 드라마에서와 같이 고리채를 놓고 어린 계집을 돈으로 사는 악덕 양반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성균관 유생(儒生)들이 행하던 일종의 동맹휴학인 권당(捲堂)을 통해 성균관 유생들의 결기와 기개(氣槪)를 다룬 드라마들은 더러 있었지만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처럼 성균관 유생들의 스캔들을 그것도 남장한 여자가 성균관 기숙사에 들어감으로써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삼는 발칙한 드라마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성균관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에서 그칠 게 아니라 제대로 알리는 드라마였으면 좋을 것 같은데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라 어떨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일천(一天)에 대해서 언급해 본다. 이선준이 과장에서의 불법행위를 바로잡고 답안을 일착(一着)으로 제출했는데 이를 받은 박사가 답안에 일천(一天)이라 써넣는 장면이 나왔다. 여기서 일천이란 과거나 백일장 따위에서 또는 여럿이 모여 한시 따위를 지을 때 첫 번째로 글을 지어서 바치던 일 또는 그 글을 뜻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