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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6.25 전쟁(6.25사변, 한국전쟁)은 북침이란 말을 하는 사람들

"6.25가 북침이야, 남침이야?"

요즘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칭 '보수'라하는 인사들의 입에서 종종 듣게 된다.

'웰컴 투 동막골'

보수언론과 극우단체에서 이 영화를 놓고 반미주의를 선동하는 '빨갱이' 영화라는 비판이 거셌었다. 인민군의 악랄한 면을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것과 마지막 미군의 폭격 장면을 문제삼고 나서는듯한데 반미주의를 선동하는 빨갱이 영화로 단정지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6.25 전쟁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그 전쟁을 발발한 주체가 나온다. 문상상(서재경 분)과 서택기(류덕환 분)가 6.25가 북침이냐 남침이냐를 놓고 서로 싸우다가 인민군 장교인 리수화(정재영 분)에게 묻는다. 리수화는 '남침이 맞어'라고 대단치않게 대답한다.

빨갱이 영화라는데 6.25는 남침이었다는 것을 각인시킨다.

사실 6.25가 북침이냐 남침이냐 주동자가 스탈린이냐 김일성이냐 이승만과 미국의 공모냐를 놓고 설이 분분했었다. 먼저 북침설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 정권은 선제 기습공격이 성공했음을 확신하자 "남조선이 북침했기 때문에 자위조치로서 반격을 가해 전쟁을 시작했다"는 내용으로 남한에 대한 선전포고를 평양방송을 통해 발표했다.

그러나 이 북침설은  1994년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러시아 옐친 대통령이 소련의 붕괴 이후 베일에 싸여 있던 6.25 전쟁 관련 비밀문서를 제공했는데 여기에는 한국 전쟁의 원인은 남조선 로동당 박헌영의 설득을 받은 북한의 김일성이 대규모의 남한 침입을 계획하고 스탈린이 이를 승인함으로써 전쟁이 개시되었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어 힘을 잃어버렸다.

6.25 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지원을 약속 받고 일으킨 남침이라는게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련 공산당의 제1서기 및 소비에트 정부의 총리를 지냈던 흐루시초프(흐루쇼프)는 한국 전쟁은 김일성의 계획과 스탈린의 승인으로 시작되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으며, 중국도 90년대말 역사 교과서에서 6.25는 남침이라 수정했다. 북한도 94년 이후에는 북침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사실 80년대만 해도 6.25가 북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섞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었다. 하나 그것은 사상이 불순해서 그랬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한쪽으로 편향되고 왜곡된 사실만을 알리고 객관적이고 제대로 된 실상을 알리지 않았던 탓이라고 본다.

나는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매년 6.25만 되면 소금과 물을 챙겨서 행군을 다녀야했고 산에 다니면서 '삐라'를 주워 경찰서에 신고하면서 자란 세대이다. '6.25 사변'이라 했고 '북한괴뢰도당'이라 했었다. 북한군을 상징하는 늑대를 그리고 그 앞에 탱크를 배치한 포스터를 그려서 교내 반공포스터 전시회에서 입상도 했다.

북한군은 전부 늑대처럼 흉칙하게 생긴줄 알았다, 정말로. 그런데 북한의 실상들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동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혹시 우리가 배워왔던 남침설은 잘못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이승만이 여러 차례 무력 북진 통일을 부르짖었으며, 미국의 군사 원조를 공공연히 요청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편향된 교육은 오히려 사실을 왜곡시키게 되고 올바른 판단을 저해하게 될 요소가 다분하다는 사실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실을 교육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편향된 내용을 알리려고 한다면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

청소년 57%가 6.25 발발연도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근거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 대북인식 왜곡이 얼마나 심각하게 일어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는 것은 너무 앞서나가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나도 6.25의 발발연도를 물어보면 대답 못한다. 6.10, 5.18, 10.26이 몇 년도인가 물어도 대답 못한다.

한국에서 아직도 6.25가 북침이냐 남침이냐를 질문하는 자칭 보수라고 칭하는 '극우'진영 인사들의 자녀들은 6.25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우리처럼 역사를 배우고 안배우고를 떠나 실생활에서 6.25를 깨달았던 세대들과 요즘 세대를 단순비교할 수 없다.

6.25는 남침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앞에 놓고 6.25는 북침이냐 남침이냐란 논란을 하는 것은 오히려 6.25의 실상을 외면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유독 6.25와 관련해서 던지는게 아니라 그 질문과 관계없는 엉뚱한데서 던지고 있다는게 문제다. 말다툼을 하다가 더이상 내세울 논리가 없어 궁지에 몰리면 '야, 너 몇 살이야? 넌 아래 위도 없냐?'하는 식밖에 안된다.

6.25 전쟁 당시에 한국군과 미군의 고위 장교들이 참전했었고 그들은 자녀들도 참전시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했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이런 고위인사들은 몇이나 될까? 6.25 전쟁에서 자유대한을 지키기 위해 숨져간 많은 분들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매사에 '반공' 논리를 들이대서 국민들을 분열시키려는 짓은 그만해야 된다.

꽃노래도 한두번이다. 어려운 정치적 국면돌파의 수단으로 매번 '반공'논리를 들이댄다면 오히려 6.25 전쟁의 의미가 퇴색되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북한을 경계하고 6.25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이젠 그만했으면 좋겠다.

아래는 매년 6.25 때마다 불렀던 노래다. 1절은 후렴은 아직도 기억하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2, 3절은 당시에도 잘 부르지 않았기에 검색을 해서 보완해 놓은 것이다.



6.25 노래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

1.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2.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량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어리

3.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을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2008.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