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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촛불에게 아수라가 주는 교훈

1. 촛불집회자 스스로가 촛불 반대자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도로를 기습 점거하고 시위를 진행하던 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시민이 버스가 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집회 참가자들이 그 시민에게 시비를 걸고 욕을 합니다. 내가 그 시민을 등지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시비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라고 얘기를 하는데 수시로 그 시민에게 시비를 걸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정류장 모서리에서 물이 떨어져서 그 시민에게 튀었습니다.
'어떤 놈이 나한테 침 뱉었어?'
이런 상태인데도 계속 시비 걸고 욕을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저씨, 침 뱉은게 아니라 여기서 물이 떨어져 튀었습니다.'
그렇게 설명해줘야 했습니다만 개운치는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 하자는 것입니까? 도로를 기습 점거한 상태이고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으로서는 버스가 오지 않으니 화를 내는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 시위는 정당한 것이니까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은 그로 인해 버스가 지연되는데 대해서 무조건 참고 아예 불평도 하지 말아야 됩니까? 그냥 지나쳐버리든가 '죄송합니다' 한마디 해주고 가면 안됩니까?

왜 촛불집회자가 하는 행동은 모두가 절대선이 되어야 하고 그에 불평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모두 절대악이 되어야 합니까? 왜 그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애써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습니까?

아마도 그 시민은 조중동 구독자일지도 모르나 우리의 적은 아닙니다. 그런데 촛불집회자들은 거기서 열렬한 촛불반대자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 시민이 조중동 구독자였다면 조중동이 지금까지 써댔던 모든 말들은 백프로 옳았다고 철썩같이 신봉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시민과 연고가 있는 모든 사람들도 촛불반대자가 될 겁니다.

촛불집회자 스스로가 이렇게 촛불 반대자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2. 촛불집회자 스스로가 촛불 참가자를 이탈시키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가 돌아서 염천교쪽인가에서 모였는데 옆으로 빠져나와서 건물 아래 앉아서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습니다. 왔던 쪽에서 남아 있는 촛불집회자보다 많아보이는 수의 전경이 따라 내려오고 있는 것을 직접 봤는데 현장에서는 갈 길을 놓고 서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기 때문에 담배 한대가 절실했습니다.

'아 XX 담배 냄새야. XX XXX XXX'

옆에서 다짜고짜 이런 욕설이 되돌아 왔습니다. 고개를 돌려서 쳐다봤는데 뒤로 돌아서 있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이 어려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대열 한가운데가 아니었다고는 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사실 불쾌할수는 있다고보고 이해는 합니다.

'담배 냄새를 싫어하니 조금 더 옆으로 가서 피워주시죠.'

이랬다면 나는 담배연기가 그들로 가지 않는 곳으로 갔을 겁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욕을 해대기에 그냥 담배 한대를 피웠습니다. 옆에서 두세분이 더 담배를 피우고 계셨습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저급한 원색적인 욕을 먹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었고 담배를 다 피우고 그 자리를 떴습니다. 입고 있었던 우의를 벗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고 전경이 배치되지 않은듯한 길로 가서 버스를 탔습니다. 내 눈으로 본 전경의 숫자가 아른거렸지만 와버렸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또 하나의 집회 참가자를 스스로 차버렸습니다.

3. 욕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까?

이런 저급한 욕설을 하고 시비를 건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이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촛불 집회자들의 행동들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힘들 것입니다.

4.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겐 동지애가 부족합니다.

담배 냄새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밤을 같이 새운 사람에게 그것도 연장자에게 다짜고짜 욕설부터 쏟아낼 수가 있습니까?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전대협에게서 배울 점은 하나입니다. 전대협의 시위방식이 아니라 전대협의 동지애입니다.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도  부 혀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  마주보았다
살을 에는 밤  고통 받는 밤  차디찬 새벽 서리 맞으며 우린 맞섰다
사랑 영원한 사랑  변치않을 동지여
사랑 영원한 사랑  너는 나의 동지

동지가의 가사를 옮겨 보았습니다.

같이 밤을 새우고 옆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여러분의 동지입니다. 그 동지가 피우는 담배 냄새가 싫다면 좋은 말로 하면 안됩니까?

자기들의 이기심만 앞세우고 동지애를 포기해 버린다면 어쨌든 전대협에게서 동지애를 배우지 못한다면 촛불집회 참가자들 스스로가 참가자를 이탈시키게 될 것입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 스스로가 조금씩 참가자들을 이탈시키고 열렬한 촛불 반대자들을 늘려나가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반대층이 늘어나는 이유는 조중동에게 화살을 돌리고 깨어나지 못한 수구꼴.통들이라고 손가락질 하시겠지요. 촛불집회에 찬성은 하지만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행동하지 못하는 양심들이라고 손가락질 하시겠지요.

5. 아수라가 촛불집회자들에게 주는 교훈

인도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신 아스라가 자기의 딸을 강제로 범하고 데려가서 부인으로 삼아버린 권력의 신 인드라에게 끝없이 싸움을 걸다가 결국엔 싸움을 좋아하는 魔神이 되버렸습니다.

분명 인드라는 못된 신이고 아스라는 좋은 신이었습니다만 분을 참지 못하고 계속 싸움만을 했었기에 정의의 신 아스라는 결국 시비를 걸며 싸움을 즐긴다는 악마인 아수라가 되버렸습니다.

지금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행위는 마치 아스라와 같습니다.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다고 시비걸고 욕설부터 하는 것은 반대자와 이탈자만 늘려나가게 될 것입니다.

밤새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는 분들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밤새 대열을 따라다니시는 연로한 분들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나처럼 혼자서 참가하시면서도 묵묵히 대열을 따라다니시는 여러분들의 힘겨운 표정과 발걸음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왜 이런 분들의 의연한 노력들을 촛불 스스로가 퇴색시킵니까? 왜 촛불 스스로가 촛불의 의미를 퇴색시켜가고 있습니까?

촛불집회를 지지하고 참가하는 분이라면 한번쯤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2008.07.20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