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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각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

'세계 96개국이 미국 쇠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하고 있다.'

이건 요즘 조선일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 중에 하나다.

세계 96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한다는 요즘 조선일보가 써대는 글들은 과연 옳은가?

일단 아래의 사진을 먼저 살펴보자.



이것은 2007년 농림부가 발표한 자료인데 이를 살펴보면 아무런 조건없이 수입하는 국가는 고작 40개국에 불과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EU 27개국은 광우병 관련 제한이 아니라 성장 호르몬 처치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제한이 특이한데 이것도 조건 없는 것으로 분류한다면 67개국이다.

이 자료는 당시 조선일보에서도 보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조선일보는 왜 세계 96개국이 제한 없이 미국 쇠고기를 수입한다고 독자들을 현혹할까? 일 년여 정도만에 모든 나라들이 제한을 없애버린 것일까?

각국의 미국 쇠고기 수입조건과 관련한 근래 조선일보의 보도태도에는 여러가지 함정을 숨기고 있다.

세계 96개국이 미국 쇠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한다고만 쓰고 제한을 두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이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게 된다면 미국으로서는 세번째로 큰 쇠고기 판매시장을 갖게 된다. 이것은 한국이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쇠고기를 수입하던 당시에 미국에서 내놓은 통계 수치를 인용한 것이므로 지금의 조건으로 쇠고기 협정을 체결한다면 미국으로서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쇠고기 시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 살코기만 먹는 서구의 국가들과는 달리 뼈, 내장, 골수까지 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당연히 서구의 국가들과는 다른 제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특히나 뼈와 같은 SRM 관련 부위들이 섞이지 않게 엄격한 검역 기준을 적용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 내용을 세계 96개국이 제한 없이 미국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기사와 연관시키지 않는다.

근래에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세계 96개국이 제한 없이 미국 쇠고기를 수입한다 하더라도 미국 쇠고기를 세번째로 많이 수입하게 될 한국이 소량을 수입하고 살코기만을 먹는 이런 서구 국가들의 기준에 맞추어서 따라가야 한다는 식의 보도는 넌센스다.
 
우리가 수입 조건을 비교해야 한다면 그것은 일본이다. 인근 국가와의 형평성 문제만을 고려해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건 미국측에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에 정당한 주장을 하는 것조차 반미라 몰아세우고 미국의 고압적인 자세에 무조건 순종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대한민국의 국익에 큰 손실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에서도 극렬하게 반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기존에 수입해오던 조건대로 30개월 미만의 등뼈와 같은 SRM을 제외시키는 검역기준이 유력하다. 이것은 곧 한미 쇠고기 협정 원문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고 추가협상만으로 그 실효성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아무런 논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물을 쏟아버리고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담을 수 없다는 것은 무책임하다. '기름값을 올리고 기름값이 부담되면 차 안 타면 되고 미국산 쇠고기 먹기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된다' 물론.

"미국이 자기네 쇠고기를 수출하려면 한국 수출용 라인을 따로 만들어 수입기준에 맞춰 포장해 보내는 것이 당연하고 물건을 사 오는 입장에서는 더 좋은 물건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 교수의 말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2008.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