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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막장논란 이유없다

KBS 2TV 새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막장논란에 휩싸인 모양이다. 남아선호사상, 낙태, 재벌, 불륜 등의 자극적인 소재들이 등장한다는게 그 이유인 것 같은데 이 드라마에 대한 막장논란은 별로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드라마에서 김탁구는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고뿌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데 이는 1960년대 코미디언 서영춘 씨가 유행시킨 것이다. 즉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 전후라는 얘기다. 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막장논란에 휩싸인다는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도입부에 서인숙(전인화)이 아이를 출산하자 또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의 구박과 남편 구일중(전광렬)의 냉랭함이 그려졌다. 그 후에 서인숙이 아들인 구마준을 낳게 되는데 누나들인 구자경 그리고 구자림과는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 구일중은 굳이 가기 싫다는 구마준을 억지로 빵공장에 데려가지만 구자경은 가고 싶어도 딸이라는 이유로 못 가게 한 것이다.



이것은 남아선호사상이 뿌리깊게 박힌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 오죽하면 '딸 낳은 죄인'이라고까지 했을까? 딸을 낳으면 요즘같은 축하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산고(産苦)에 대한 위로는 커녕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산으로 들로 일하러 나가야 했던 시절이었다. 입 하나 덜기 위해서 딸은 식모살이로 보내면서도 아들은 끼고 키워냈던 때였다.

구일중은 서인숙이 딸을 낳자 병원에 가지 않고 집안의 잡다한 일을 하는 간호원이라 불리는 김미순(전미선)과 통정해서 임신을 시킨다. 시어머니는 집안의 대를 이을 손자가 필요하므로 아들 구일준의 불륜을 알면서 방조하고 이를 당연시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인숙은 미순에게 낙태를 종용하고 병원으로 향하던 미순은 도망쳐서 김탁구를 낳게 되는데 이 때 찾아와 두 번 다시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한승재(정성모)의 협박대로 홀로 김탁구를 키우게 된다.

한편 서인숙은 미순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남의 씨라면 모를까 아들은 없다. 그 이전에 남편은 다른 여자와 아들을 낳는다"고 말했던 용하다는 노인의 말을 떠올린다. 서인숙은 구일중이 낳아서 들어 온 아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과거 연인이었던 한승재에게 '당신과 내가 만든 아들에게 거성식품을 물려주겠다'며 유혹해 둘 사이의 아들인 구마준을 낳게 된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당연히 불륜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일이 많다 못해 오히려 정당화되기도 했던 때였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를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첩을 집안에 들이는 경우도 많았고 딴살림을 차리고서는 본부인한테 오히려 딸을 못낳는다고 큰소리치던 그런 시절이었다. 이 첩은 호적에도 올릴 수 있었는데 오늘날에도 호적엔 첩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당시에는 단순히 씨받이로 삼기 위해서 여자를 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보면 시어머니의 경우에는 미순을 씨받이 정도로 생각했을수도 있겠는데 구일중의 경우는 사람을 시켜 미순을 찾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욕정만으로 미순을 건드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주인공인 김탁구가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결국은 성공한다는 내용이 너무도 뻔한 드라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한다면 내용이 심하지 않고 오히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기엔 너무 약한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초반에 등장한 설정들은 오늘날의 시청자들이 시청하기엔 다소 불편한 내용인 것은 맞다. 하지만 시청하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막장이라는 카테고리로 몰아서 비난하려는 것은 고려할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 이 드라마의 시대적 상황을 외면한 채 막장이라 비난하는 것은 조선시대 사극을 시청하면서 임금을 왜 선거를 통해서 선출하지 않고 세습하는가 비난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초반에 등장한 내용들은 드라마에서 추정할 수 있는 그 시대에 충분히 있을 수도 있었던 내용이 아니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내용인데 드라마는 오히려 순화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가 막장 코드로 갈 생각이었다면 훨씬 더 자극적인 설정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인데 당시에 만연해 있었던 남아선호사상이나 불륜을 배제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것이고 그게 바로 막장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나 '동이'와 같이 드라마의 재미와 시청률을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통째로 바꿔버려도 된다는 사고방식, 그게 바로 막장 코드의 시발점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의 모순을 그려내는 것을 현대적 관점에서 시청하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막장이라 비난함은 고려할만한 가치를 별로 찾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