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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동이' 캐릭터 놀음에 날 샌다

드라마 '동이'가 점점 할 말을 잃게 하더니 지금은 거의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식상하기 그지없는 '동이'가 그나마 이 정도의 시청률이라도 확보할 수 있었던데는 여타 드라마에서 다루어졌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캐릭터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해왔던 드라마 '동이' 속의 캐릭터들이 갈팡질팡하는 '동이'를 살리기 위해 희생되거나 변질되면서 현재는 오히려 캐릭터가 '동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시점인 것 같다. 새롭게 심운택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제작진들이 캐릭터를 창조해내서 재미를 보았다는 학습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는 현재 드라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드라마 '동이'가 계속 캐릭터 놀음에 집착하려고 한다면 날 새고 말 것이다.

드라마 '동이'에 등장하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영조의 생모였음에도 장희빈과 인현왕후에 가려져 있었던 숙빈 최씨의 관점에서 드라마를 제작하겠다는 발상은 신선했고, 시간을 할애해서 시청할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그러나 드라마 시작부터 갈팡질팡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최초에 밝혔던 드라마의 취지마저 실종되었고 현재는 이 드라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를 시점에 다다른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된 원인이 제작진들의 캐릭터 놀음에 있다고 보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하기 위해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러한 캐릭터들이 유독 갈팡질팡했던 '동이'를 살리기 위해 희생되었는데 이것은 제작진들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린 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깨방정 '숙종'

14세에 왕이 되었고 가장 카리스마 넘치고 파워와 능력이 있었다고 평가받는 숙종을 촐싹대는 왕으로 만든 것은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데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이라고 하더라도 늘 근엄하고 무게감 있게 행동했을거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고 숙종이 그러한 성격이었을거라는 상상을 한다한들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런데 숙종이 그렇게 로맨티스트였고 유독 '동이'에게만 남다른 애정을 가졌을거라고 상상하기는 힘들겠다.

숙종은 깨방정을 떨고 다니지만 '동이'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조정신료들 앞에서는 근엄하고 현명한데 여성들이 꿈꾸는 완벽한 남성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존 드라마들에서 숙종은 장희빈의 치마 폭에 싸여 오직 분노로 인현왕후를 폐위시키는 것으로 그려졌는데 드라마 '동이'에서는 인현왕후를 폐비시키며 고뇌하는 숙종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는 숙종의 현명함과 인간미를 강조하려고 했음이겠으나 현명한 숙종이 증험의 신빙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없이 폐비를 단행했다는 상상은 작가의 자가당착이라 하겠다.



우스워진 '장희빈'

드라마 초반에 장희빈은 상당히 지혜롭고 신중하면서도 인간미가 있었고 대단한 배포를 지닌 인물이었는데 어느 순간 별다른 설명도 없이 우스워져버렸다. 인현왕후를 내치고 중전이 되었던 것은 장희빈의 의지라기보다는 오빠인 장희재의 충동질과 계략에 의해서였고 그것이 탄로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느닷없이 악역으로 변신해버린 것이다. 초반에 여유와 품위를 잃지 않았던 장희빈이 투기심에 눈이 멀고 있고 숙종의 관심이 멀어질까 전전긍긍하는 그저 그런 여인네로 변해버렸다.

초반에 보였던 정치적 수완은 전혀 발휘하지 못한 채 오로지 장희빈의 주변세력인 장희재와 남인 세력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고 혁명가와도 같았던 기개와 비범함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장희빈이 이렇게 변화된 데는 별다른 계기가 없이 고작 나인에 불과한 '동이' 때문이다. '동이' 살리기에 희생된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장희빈이다. 비록 드라마는 실패하더라도 장희빈에 대한 차별적인 해석은 높이 평가받을 수 있었으나 그 모든 것이 천방지축 '동이'에 의해서 물 건너 가버렸다.

여전히 갈팡질팡 '동이'

숙빈 최씨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동이느님'의 경지에 있지는 않았을텐데 드라마에서 '동이'는 완벽함 그 자체다. 궁 안팎에서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동이'가 개입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고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난다. 외로워도 울지 않고 슬퍼도 울지 않고 어디선가 '동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반장들은 즐비하다. 개연성이 없어도 좋고 설득력이 없어도 좋다. 터무니없는 우연이라도 '동이'가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되고 살아나기만 하면 그만이다.

숙종과 탐정놀이를 한 덕에 '풍산 동이'는 장희빈의 천거로 감찰부 나인이 되고 모화관에서 공을 세운다. 인현황후의 폐비가 장희빈 측의 음모라는 증험을 찾겠다며 무모하게 행동하더니 결국은 부상을 입고 의주까지 흘러가서 목숨을 연명하게 된다. 이는 이전 글에서 '동이'는 드라마 '대장금'에서와 마찬가지로 출궁되는 상황을 설정할 수도 있다는 내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글쎄, 인현왕후가 폐비된 시점에 숙빈 최씨도 궁에 없었다면 어떻게 숙종의 눈에 띄어 성은을 입을 수 있었을까. 역사적 기록상의 시점만 그럭저럭 맞추면 상관 없다는 발상일까. 또한 감찰부 나인에 불과한 궁녀가 그렇게 대책없이 무모했다면 그 목숨이나 보전할 수 있었을까.



도망가던 '동이'는 쫓아오던 자객들이 던진 표창을 왼쪽 가슴에 맞았음에도 용케도 피신하게 된다. 부상당하지 않은 '동이'는 잘도 찾아내 쫓아왔던 자객들이 표창을 맞은 '동이'는 어떻게 놓칠 수 있었을까? 도망가던 '동이'의 가슴에 있던 붕대는 어디서 구했을까? 표창을 맞은 부위는 거의 치명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동이'는 어떻게 살아서 숙종을 찾아갈 수 있었을까? '동이'는 두어달만에 간신히 의식을 회복했다는데 그동안에 '동이'를 치료했던 사람들은 '동이'가 가슴에 숨긴 증험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두어달동안 '동이'는 옷도 갈아입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동이'는 증험을 왼쪽 가슴에 숨겼는데 그 부위에 표창을 맞아 피를 철철 흘렸음에도 나중에 본 증험에는 왜 핏자국이 없을까? 그 정도라면 온통 핏빛이어야 정상이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당시의 종이는 특수재질이라 씻어내면 말끔해졌었던 모양이다. 이 한 장면에서도 온통 허술함 투성이이고 이러한 허술함이 드라마 '동이' 전체를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동이'는 감찰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시체검시라든가 범죄 수사에 대해서 상당히 허술하게 다루어 당시의 범죄수사 수준을 폄훼하기도 했다. '동이'가 직접 시체를 검시하는 장면은 웃기지도 않은 장면이었다. 이는 '신주무원록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만 있었다면 이런 황당한 장면을 등장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무원록이나 보라'는 대사로만 등장시킨다고 그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그 외에도 장악원을 무대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궁중 음악이 실종되어 버리는 등 여러가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드라마 '동이'도 이병훈의 이전 사극들과 마찬가지로 연장방송 얘기가 솔솔 흘러나오는듯한데 더 이상 평가할만한 가치가 보이지 않는 현재의 상태로라면 꿈도 꾸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