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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김환의 예언, 드라마의 운명 되나?

'사극명장'이라 불리는 이병훈표 사극 '동이'가 위기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이병훈표 사극은 그동안 큰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어디선가 본듯한 캐릭터의 등장인물과 스토리 전개 방식은 어느새 식상하게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다. 게다가 '동이'의 경우는 스토리 구성마저 여전히 모호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답답해하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다.

시청률 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3일 방송된 '동이'의 시청률은 20%로 여전히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고 있으나 상당히 불안해보이는 상황이다. 드라마 '동이'는 위와 같은 내적인 한계도 극복해야하는 상황인데 다음주부터 시작하는 SBS와 KBS의 새로운 월화드라마도 만만한 상대는 아닌 것 같다. SBS는 이미 실패한 사극이라 평가받는 '제중원'을 종영하고 '자이언트'를, KBS도 '부자의 탄생' 후속으로 '국가가 부른다'를 방송할 예정이다. 월화드라마의 경우 현재 '동이'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향후에도 계속 이어가리라 예상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드라마 '동이' 초반에 김환이라는 도인이 출연해서 동이와 장옥정의 운명을 예언했었다. 그런데 김환의 예언은 동이와 장옥정의 운명이 아니라 드라마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김환은 오태석의 부탁으로 장옥정의 관상을 봐주고 나오다가 장옥정을 지나쳐가면서 이런 말을 한다.

"한사람이 더 있습니다, 항아님. 항아님처럼 빛나고 항아님처럼 귀한 이가 말입니다. 아마도 항아님께선 운명에 정당하게 맞서려 하실 것입니다. 하나 할 수 있다면 그리 하지 마십시오. 광영상수 양인영(光影相隨 陽引影). 빛과 그림자는 항상 붙어 다니니 빛이 그림자를 불러들인다. 숙명처럼 같은 운명을 불러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항아님입니다. 항아님은 전부를 가졌지만 다른 이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항아님은 모든 걸 손에 쥐었지만 다른 이는 모든 것을 빼앗긴채 시작하게 되겠지요. 그림자는 항아님입니다. 만약 그 아이가 살아 온다면 항아님은 그 빛을 넘지 못하십니다. 허니 하실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그 아일 마주치지 마십시오."

위 예언은 대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 또한 달라질수도 있겠는데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대장금'이 빛이라면 '동이'는 그림자란 것이다. 드라마 '동이'는 '대장금'의 영광을 재현하고 더 나아가 이를 넘어서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동이'의 경우는 드라마 곳곳에서 '대장금'의 흔적을 떨쳐낼 수가 없는데 이는 '대장금'의 후광을 업고 가겠다는 제작진들의 안이함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대장금'과 '동이' 모두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혈혈단신으로 세파에 부딪히며 꿋꿋하게 일어섰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두 드라마에서 등장한 설정은 상당히 유사하다. 궁으로 들어와서 좌충우돌하면서 극한적인 상황에 내몰렸다가 기사회생하는 것도 그렇고 괴롭히든가 도움을 주는 누군가도 비슷비슷하다. '대장금'은 중국 사신단에 가서 공을 세웠는데 '동이'도 역시 중국 사신단과 관련해서 공을 세우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대장금'은 제주로 귀양가면서 출궁당했는데 '동이'도 제주는 아니더라도 출궁당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장옥정의 출궁 정도로만 대체할 계획일수도 있겠다. 이처럼 상황설정이나 스토리의 전개방식은 '대장금'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거나 둘 이상의 드라마를 조합해보면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대장금'에서 장금이의 엄마였던 김혜선은 '동이'에서는 조력자로 나오는데 마치 '대장금'에서 김혜선의 친구이자 장금이를 살뜰하게 보살폈던 양미경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대장금에서 고비마다 장금이를 도왔던 민정호는 '동이'에서는 서용기가 떠오르나 서용기가 담당할 수 없는 애정관계는 숙종이 우연을 빙자해 동이와 만나는 것으로 보완해주고 있다. 숙종은 민정호와 중종, 장악원 직장인 황주식은 허준의 임오근과 대장금의 강덕구(임현식), 장악원 악공 영달은 대장금의 강동이와 조치복, 감찰부 봉상궁은 허준의 홍춘과 대장금의 나주댁, 등등 모두 다 열거할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대장금에 등장했던 것과 유사하거나 복수의 드라마에서 혼합해놓은 캐릭터로 무장하고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처음 경험해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에도 똑같은 경험을 했던 것처럼 느낄 때가 있는데 이를 데자뷰라고 한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로 여러 드라마를 보다가 보면 어디선가 봤던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드라마 '동이'의 경우에는 데자뷰 현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전 드라마들과 유사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고 스토리 전개마저도 모호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드라마 '동이'는 애초에 최선을 다해 '대장금'에서 벗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대장금'을 살려놓았기에 앞으로는 아무리 정당하게 맞서려고 애를 써도 대장금을 넘지 못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대장금'을 넘어서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타방송사들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그램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병훈표 사극은 한계상황에 도달해 있는 것 같은데도 변화를 수용하지 않은채 예전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이병훈표 사극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더 발전하지 못한다면 이병훈표 사극은 시나브로 도태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지금 도태되는 과정에 들어서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