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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장옥정 vs '동이'는?

드라마 '동이'가 조금씩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사극을 만들다보면 현실에 맞게 바꾸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고, 변한 세월만큼 제작자의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드라마에 재미를 불어 넣어 대중문화를 풍요롭게 만들수도 있고, 그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이것이 요즘 사극의 트렌드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그렇다해도 기존에 존재하는 역사적 기록들을 별다른 근거나 설명도 없이 지나치게 윤색(潤色)해 버리는 것은 동의해주기 힘든 부분이다.

혁명가 장옥정

드라마 '동이'가 장옥정에 대해서 시도하는 새로운 해석은 선악을 떠나서 일단은 신선하다. 당시 장옥정은 남인 세력이었고 인현왕후는 서인 세력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정치적 대립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현왕후가 죽자 인현왕후의 사인(死因)을 장희빈이 취선당(就善堂) 서쪽에 신당을 차려 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한 것에서 찾아 장희빈을 사사(賜死)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면 그동안 장옥정을 변덕스럽고 표독스러운 성격에만 포커스를 맞추어 왔던 것은 좀 지나친 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동이'는 여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옥정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나름대로는 충분히 시도할만하다고 본다.

드라마 '동이' 속에서 숙종이 '저 아이가 남자였다면 내 자릴 내놓으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드라마 속의 장옥정은 대단한 배포와 기개를 지닌 지략가이자 혁명가라고 할 수 있겠다. 신분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 남인 세력과 손 잡을 정도로 정치적 야심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장옥정은 대단히 영특하고 총명하며 가슴에는 원대한 사랑과 아랫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심도 품고 있다. 하여튼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장희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파격적인 설정이다.



그런데 '동이'와 대비되는 딱 한가지가 드라마에 등장했던 것 같다. '동이'와는 달리 장옥정은 신분에서 오는 차별과 한계를 스스로 극복해내지는 못하는 것 같고 이에 대한 컴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장옥정은 중인 집안 출신이었으나 어머니가 여종이었기 때문에 종모법(從母法)에 따르면 천인의 신분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장옥정은 남인 세력과 손을 잡고 장희재를 끌어 들여서 신분차별을 극복하려는 정치적 시도를 할 것 같은데 결국엔 장옥정 스스로가 신분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자멸의 길을 걷는 것으로 그려질거라는 예상을 해 볼 수 있겠다.

'동이'는?

이러한 장옥정과는 달리 '동이'는 여전히 어중간하다. 물론 드라마 속의 '동이'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바보스럽다고 할만큼 무모하다. 글쎄 장악원 여비가 저렇게 무모했다면 숙종을 만나기도 전에 벌써 시구문(屍軀門)을 통해 북망산천(北邙山川)으로 떠났을 것인데 어떻게 왕자를 생산하고 훗날 임금(영조)으로 키워낼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물론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동이'가 장옥정을 통해서 신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될 거라는 점이다. '동이'는 장옥정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며 장옥정의 누명을 벗기려고 위험 속으로 몸을 던지기도 한다.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가 폐출되고 장희빈이 왕비가 되자 인현왕후를 위해 기도를 드리는데 이 때에 숙종의 눈에 띄어 은총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드라마 속의 '동이'는 어떤 연유로 왕비가 된 장옥정 대신에 인현왕후를 위해 기도를 드리게 되는지 드라마 '동이'의 해법이 궁금하다. 현재는 인현왕후도 '동이'에 대해서 알고 있고 내명부 감찰부 나인으로 들이는데 동의한 상태다.



장옥정과 '동이'가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장옥정은 '동이'와 첫대면하는 자리에서 황백국이라는 시를 통해서 '동이'를 떠보는데 이것은 장옥정이 '동이'를 수하로 삼기에 적정한가를 시험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신분의 한계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없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봐야 효용가치가 없을거라고 판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이'는 장옥정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고 자신의 롤모델로 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신뢰에 대한 둘 사이의 이 미묘한 차이가 어쩌면 앞으로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수도 있다.

'동이'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동이'가 추격을 피해 입궁한 뒤 한 일이라고는 장악원 악공들의 시중을 들고 청소하느라 잠을 설친 것 밖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동이'는 모르는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총명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한데 가히 '동이느님'의 경지라 할 만하다. 그동안 '동이'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드라마에서 '동이'는 검시를 통해 장옥정의 억울함을 밝혀내는데 서용기와 숙종을 만나는 우연으로 설정해서 비켜가려고 했지만 그 장면은 꽤 허술하다. '동이'가 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신통방통한 일이지만 그 때까지 아무도 검시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 검시실에 함부로 출입이 가능했던 것인지 천비의 말을 누가 믿어줄 수 있었을 것인지 납득할 수는 없겠다. 오히려 이것은 증거인멸로 오인받기에 딱 좋은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 봉상궁이 감찰부 나인들에게 '무원록이나 보라'고 면박을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숙종대라면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무원록은 중국 원나라 왕여(王與)가 송나라의 형사사건 지침서들을 바탕으로 편찬한 법의학서로 조선 전기부터 법의학 지침서로 널리 활용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사회 구조가 중국과는 달라 세종대에 이르러 신주무원록을 발행하게 된다.

신주무원록에 의하면 은비녀, 지게미(糟), 초(醋), 파, 소금, 매실과육, 창출(蒼朮), 조각(皂角) 등의 약재가 검시 보조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검시에 직접 관련되어 있는 행인(行人)과 이인(吏人) 등에게는 잠시라도 검시관의 곁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다짐받고 또 이를 검시관이 감독하였다고 할 정도로 검시의 엄격함과 정확성을 기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드라마 '동이'에서처럼 어설픈 에피소드는 쉽게 발생할 수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영조대에 이르러서는 신주무원록을 증수한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이 간행되었고 정조대에는 한글로 번역한 [증수무원록언해(增修無寃錄諺解)]를 간행하게 되었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조선 시대의 검시는 허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시체를 해부하지 않고 검시한다는 한계는 있었지만 대단히 정교했고 그 관리가 엄격했던 것 같다. 드라마 속에서 무원록이 언급된 것은 영조대의 치적과 관련이 있으며 '동이'가 감찰부 나인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과 이것을 서로 연관지어 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파락호 장희재의 등장

드라마 '동이'에는 장옥정의 오빠인 난봉꾼 장희재가 등장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데 장희재도 역시 장옥정과 '동이'의 운명을 가르는 열쇠를 쥘 것으로 보인다. 장희재는 '동이'를 보고 난 후 장옥정과 만나서 영특하고 총명한게 장옥정과 닮았다고 둘러대며 '동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려 하지 말고 아예 멀리하라고 충고한다. 장희재의 이 말은 그 전에 등장했던 도인 김환의 말과 궤를 같이 한다.

장희재는 장옥정의 세를 업고 정계에 입문했지만 천하의 파락호라고까지 단정하기에는 지나친 면이 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처럼 모사(謀士)에 가까울 정도의 재능을 가졌던 인물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드라마 속의 장희재에 대한 설정은 아마도 천하의 난봉꾼이라 불리웠던 만큼 상당한 논란을 가져 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