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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동이' 제작진의 무신경함, 도가 지나치다

드라마 '동이'가 진행될수록 '옥에 티'나 역사적 고증에 소홀한 장면이 많아지고 있는데 13일 화요일 방송분에서는 다소 황당한 장면이 있었다. 옥에 티 정도로 인정해주고 넘어가기엔 제작진들의 무신경함이 도가 지나치고 이런 게 반복되다보니 드라마 '동이' 제작진들이 시청자들은 그냥 드라마 시청률이나 올려주는 대상 정도로만 여기고 있는게 아닌가해서 좀 불쾌하기도 하다.

요즘의 드라마나 기타 오락 방송 제작자들은 다소의 터무니없는 장면이 있어도 '드라마(방송)는 드라마(방송)일 뿐이라'는 일단의 무리들이 대신 나서서 제작진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방어해 줄 거라는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어서인지 왠만한 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는 '방귀 자라 똥 된다'는 만고로부터 전해오는 옛 속담을 더 의식하는게 좋을 것이다.

이 날 방송분에서는 숙종이 장옥정과 바둑을 두는 장면이 나왔다. 장옥정이 한 수를 두자 숙종은 '당했다'며 당혹해 한다. 그러자 장옥정이 숙종에게 환격수를 두라고 훈수한다.

그런데 화면에 비친 바둑판에 놓인 돌의 모양을 보니 상당히 어이가 없다. 처음 장면에서는 그냥 놔둬도 죽어버린 오궁도화를 놓고 숙종은 당했다 하고 장옥정은 환격수를 두라고 훈수하는 것으로 보여서 이 사람들이 뭐하고 있는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이어지는 다음 장면을 다시 자세히 보니 장옥정이 둔 수는 한 눈을 낸 것이었고 그 장면이라면 환격수를 두라는 장옥정의 훈수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한데 장옥정이 둔 수는 살아 있는 돌을 죽여버린 악수다. 흑이 둘 차례라면 환격도 아니라 그냥 사는 수가 있다. 아래 그림의 '가' 자리에 착수를 한다면 흑은 살게 되는데 굳이 환격으로 잡히는 '가'의 오른쪽 자리에 두고서는 환격수를 두라고 훈수한 것이다. 상대가 악수를 둔 덕에 산 돌을 통째로 잡게 되었음에도 당했다고 난감해하는 숙종이나 멀쩡하게 산 돌을 죽여놓고는 환격수를 두라고 의기양양해하며 훈수하는 장옥정이나 이런 걸 환격이라고 드라마를 제작해서 방송하는 제작진이나 마치 '바보들의 대행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바둑에서 환격이란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흑이 다음 한 수로 백 한 점을 잡을 수는 있지만  백이 그 다음에 바로 흑이 따낸 백 자리에 다시 놓아서 흑의 돌을 모두 잡는 수를 말한다. 즉 돌 하나를 상대방에게 미끼로 던져주고 더 많은 상대의 돌을 잡는 수가 바로 환격이다.


(드라마에 나왔던 바둑판을 옮겨 본 것이다)

장옥정이 둔 수는 '가' 오른쪽이었는데 흑이 이 수를 둠으로 인해서 백이 '가'에 두어 환격으로 흑 모두가 잡힌다. 흑이 다음 수로 장옥정이 둔 위의 백 한 점을 따 낼 수는 있지만 바로 그 자리에 백이 두어 왼쪽 흑 여섯점을 따 내게 되고 변의 흑은 모두 잡히게 된다.
그러나 장옥정이 '가'에 두었다면 이 흑은 모두 살게 된다.
즉 장옥정은 멀쩡하게 산 돌을 환격으로 죽는 자리에 착수하고는 훈수까지 한 것이다.

드라마상에서 장옥정이 숙종에게 환격수를 두라고 훈수한 것은 음변 사건의 처리를 놓고 고심하는 숙종에게 바둑을 두면서 근사한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들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디테일에 무신경했기에 장옥정이 훈수한 그 장면이 갖는 의미는 반감되어 버렸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한 수는 인터넷 바둑 10급 정도만 되면 알 수 있는 간단한 수인데 그 많은 제작진들 중에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인가.

이거 또 이 정도 써 놓으면 장옥정이나 숙종은 모든 수를 다 알고 호상간에 선문답을 한 것이었다는 식의 댓글이 달릴지도 모르겠는데 아마 방송을 다시 봐도 그렇게 해석할만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환격수만 적당히 만들어놓으면 그만이라는 제작진들의 무신경함이 만들어 낸 어설픈 결과물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갈 것은 드라마 '동이'에 등장하는 장면에서 보면 숙종과 장옥정은 한국 고유의 순장바둑이 아닌 일본식 현대바둑을 두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성행했던 한국 고유의 순장 바둑은 돌들을 미리 배치하고 두기 때문에 당연히 화점에 돌이 놓여 있어야 하는데 이미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점에 돌이 놓여 있지 않았으며 이것은 순장바둑이 아니라 현대바둑을 두었다는 방증이다.



바둑의 유래는 고대 중국의 요(堯), 순(舜) 임금이 창시했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바둑을 두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는데 상당히 오래전에 한반도에 전파되었던 것 같다. 한반도에 전파된 바둑은 백제에 의해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일본은 막부(幕府)의 적극 지원을 받으면서 크게 발전되었고, 그들에 의해서 근대경기로서의 토대가 만들어졌고, 20세기에 프로제도가 탄생하면서 오늘날 현대바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두고 있는 바둑은 일본식 현대바둑인데 해방 후 일본에 바둑유학을 다녀온 조남철 九단에 의해서 한국에 도입되었다. 현재는 한국이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현대바둑의 역사는 일본에 비하면 상당히 초라하다고 할 수 있다. 바둑 세계 최강은 한국이지만 세계인들에게 바둑은 여전히 일본식 발음은 'go'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보(棋譜/碁譜)는 김옥균이 일본 망명시절인 1886년 일본의 본인방 슈에이(秀榮)와 6점 접바둑을 두었던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 바둑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단지 기록해두지 않았기에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마 '동이'에서 숙종대에 고유의 순장바둑이 아닌 일본식 바둑을 두었다고 해도 크게 틀렸다고 증명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왕 바둑을 두었다면 바둑 수(手)는 좀 더 정확하게 나열했어야 했다.


첨(添) ; 2010년 4월 15일 15 : 50

이 정도로까지 중언부언하면서 설명을 해야 되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자꾸 드라마의 배경이나 소품 정도라 생각하고 옥에 티 정도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답합니다.

방송에서 바둑판은 상당한 시간동안 단독 샷으로 2회나 반복되었습니다. 그 바둑판의 상황을 시청자가 알 수 있는 정도의 시간동안 2회나 반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의 분량이면 바둑판은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드라마에 등장한 바둑판은 드라마의 설정이 아닙니다.
스쳐지나가는 배경도 아니고 단순하게 보아 넘길 소품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바둑판은 드라마의 옥에 티 수준으로 보아 넘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제작진들이 간단하게 인지할 수 있는 것임에도 간과한 것으로 제작진들의 명백한 실수이고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제작진들의 무신경함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밖에는 없으며 이 바둑판에 이르면 그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것입니다.

여타 방송들에서 보면 연예인들은 단독 샷을 욕심내고 그것을 위해서 때로는 망가지는 것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에 한정해 본다면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연들의 대부분은 바둑판의 시간동안 단독으로 2회나 반복해서 단독 샷으로 화면에 잡힐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한 바둑판의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자명합니다.

그런데 이 바둑판의 모양과 주연들의 대사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면 드라마의 그 장면이 갖는 의미는 사라져버리게 되고 드라마는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되며 품격이 낮아지게 됩니다.


첨(添) ; 2010년 4월 14일 19 : 10

1. '무신경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활용 예를 들자면 '이런 초보적인 수를 눈치도 채지 못하고 제작해서 방송하다니, 드라마 '동이' 제작진들은 보통 무신경한 사람들이 아니다'가 되겠습니다.

2. 본문에 언급한 내용은 바둑 실력과는 무관합니다. 초보적인 실력만 되어도 모두 알 수 있는 간단한 수입니다. 그 많은 제작진들이 모두 다 바둑에 문외한들이라면 이 글은 존재할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근사한 환격의 모양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면 제작진들은 간단한 것조차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청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사람에 따라서는 시청자를 무시하는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3. 이 글은 제작진들이 비난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나 그들은 이 내용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향후 일본이나 중국 등 바둑애호가들이 많은 국가로 수출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화면을 그대로 수출한다면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수출할 때에는 해당 장면은 반드시 변경해야 될 것입니다.

4. 생각보다 악성이라 할 수 있는 댓글이 적었군요. 그런 부류의 댓글에 답글을 써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이 글을 쓴다고 내가 어떤 댓가를 받지는 않습니다. 이 글의 클릭수가 높아진다고 해서 내가 별도로 이득을 취하는 것도 없습니다. 물론 내가 쓴 글이 외면되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이 읽어주고 그에 대해 공감해주는 게 더 좋기는 합니다만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서 애쓰지는 않습니다.

그냥 시간 쪼개서 여러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싶어서 쓰는 글이고 이런 듣보잡 블로그의 글까지 읽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의견을 공유하고자 함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나친 언어들을 사용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어떤 글을 읽고 그에 공감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공감하지 못한다고 꼭 지나친 언어들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어떤 글에 반대의 의견을 내놓는 댓글이 신경은 쓰이지만 더 반갑습니다. 그런데 글 내용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무작정 반대만 하는 댓글은 솔직히 좀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