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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동이' 초반부는 트리핀의 딜레마

드라마 '동이' 1, 2회는 너무 빨리 진행시켜 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빠른 전개라기보다는 듬성듬성 잘라 내고 방송하는 주말 재방송을 보는 것처럼 중간중간 맥이 끊기는 것 같았고 전체적으로 허둥지둥하며 서두르는 모양새로 보였다. 드라마는 초반 시청률이 전체 시청률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는 공식에 대한 제작진들의 강박이 좀 지나치지 않았나 생각된다.

상대적으로 3, 4회는 느슨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 방송분량을 조절하든가 2회 정도 더 할애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천호진, 배수빈 등 연기력이 검증된 성인연기자들의 연기에 아역배우들의 연기도 충분히 호응했다고 볼 때 오히려 분량을 더 늘렸다면 굳이 1, 2회를 허둥대지 않았어도 충분히 시청률을 담보할 수 있었을거란 생각이다. 물론 드라마 '동이'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으니 이를 가지고 드라마 '동이'의 선악을 논할수는 없다고 본다.

드라마 '동이' 극중에서 오윤은 서용기의 부탁을 받고 임금을 만나러 숭릉으로 떠나는 서용기의 부친인 부제학을 살해한다. 그리고 검계의 일원을 매수해 검계 수장 최효원에게 '누군가 부제학을 노린다'는 편지를 보내 최효원을 비롯한 검계 일행을 살해현장으로 유인해서 부제학 살해 혐의를 검계에게 뒤집어 씌운다. 최효원, 서용기, 오윤 세 사람이 처한 상황은 도저히 답이 없는 '트리핀의 딜레마' 상황이라 할 수 있다.


(imbc 드라마 '동이' 홈페이지 캡쳐)

최효원으로서는 검계가 남인의 양반들이나 부제학 살해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 줄 유일한 끈이 서용기다. 살해를 부인해봐야 소용도 없을테지만 자칫하면 서용기가 다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살해 사실을 인정할 수도 없다. 서용기로서는 최효원을 '자기 자신만큼 믿는 자'라고 부친의 질문에 답했던 것처럼 최효원을 신뢰하고 있으므로 최효원이 범인이라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살해 사실을 인정하면 검계의 소행임을 인정해야 하지만 부친의 살해에 대한 진범은 추적할 수가 없게 될 수도 있으며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기엔 모든 정황이 불분명하다. 오윤은 '서용기의 부친 부제학이 임금의 신임을 받기에 섣불리 건드릴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최대한 서용기를 자극하지 않고 남인 양반들을 살해한 것은 검계의 소행이라고 뒤집어 씌우고 빨리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한다.

이 셋은 결국 이렇게 할 수도 없고 저렇게 할 수도 없는 도저히 답이 없는 트리핀의 딜레마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오윤은 최효원에 대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트리핀의 딜레마와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극중에서 오태석이 '양반들은 건드리면 문제가 생기지만 천것들은 건드려봐야 신경쓰는 사람도 없다'고 한데서 볼 수 있듯이 당시의 신분제도가 안고 있는 모순에 기인한 태생적인 이점이었다고 하겠다.

결국 이 상황에서 체포된 최효원은 죽겠지만 서용기나 살아 남은 검계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내야 할 것이다. 서용기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어떤 새로운 것을 준비할 것인지, 검계는 어떻게 세력을 재건하고 최효원의 누명을 벗기고 진실을 밝히는데 어떤 방법으로 일조를 하게 될 지, 이 과정에서 동이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동이는 최 환이란 도인과 같은 귀인의 도움을 받아 위기상황을 벗어나는 식으로 우연을 가장한 신비주의적인 상황을 통해 성장하게 될 것인지 등 드라마 '동이'의 관전 포인트는 이런 정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imbc 드라마 '동이' 홈페이지 캡쳐)

그런데 검계는 자멸을 선택했고(드라마상에서 차천수와 최동주는 확실히 죽었다는 뉘앙스가 없는 것 같아서 '동이' 홈페이지의 등장인물을 살펴보니 차천수가 생존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늘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이렇게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살아 난다), 서용기는 '자기 자신만큼 믿는 자'라던 최효원을 부친의 살해범으로 단정하고 분노한다. 또한 오윤은 서용기를 부친 살해의 방조혐의로 조사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오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윤의 행동은 서용기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서용기가 의심을 갖고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하려는 의도로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서용기가 최효원을 불러 내 분노하는 것 보다는 서로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눈빛만으로 주고 받던 장면이 오히려 더 극적이었다.

극중에서 서용기는 검계 사건으로 인해 양반들이 동요하고 도성을 떠나는 등 도성전체가 혼란에 빠졌다며 검계 잔당들을 소탕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상당히 작위적인 설정인 것 같다. 최효원의 혐의대로라면 참형(斬刑)이나 거열형(車裂刑) 또는 효수(梟首)에 처해질 중죄인에 해당하며 이러한 처형을 백성들이 많이 모이는 저잣거리 등에서 함으로써 이를 통해 백성들을 경계시킴과 동시에 민심을 수습하려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동이'는 최 환이란 도인을 등장시켜서 동이를 도와주고 장옥정과 동이의 운명을 예견하면서 드라마의 전개 방향에 대한 힌트를 제시하고 있다는게 상당히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워낙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얘기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사주, 관상 같은 신비주의적인 요소를 등장시켜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최 환은 드라마에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 향후에도 계속 고비마다 동이를 도와주는 등 드라마에서 어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동이와 맞딱뜨린 장옥정은 '어서 도망가거라. 군관들은 너를 알아볼거야'라며 위기에 처한 동이를 구해주는 따뜻함을 품고 있는데 향후에 어떻게 악역으로 변해가는지 장옥정 역을 맡은 이소연이 만들어 낼 장희빈이 기대된다.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장희빈이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다.


(imbc 드라마 '동이' 홈페이지 캡쳐)

어린 동이는 참 지독하게도 말 안 듣고 무모해보인다. 꼭 이렇게 주인공을 무모한 행동을 하게 해서 위태위태한 상황을 설정해야 드라마의 시청률이 올라가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만약 현실에 내 주위에 이렇게 말 안 듣고 무모한 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다면 붙잡아서 아주 혼을 내주고 싶을 정도다. 드라마 '동이'에서 보여진 동이의 어린 시절은 널리 알려진 숙빈 최씨의 이미지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한효주는 앞으로 어떠한 연기를 보여줄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한복도 참 잘 어울리고 눈 부시게 아름답다. 드라마 '동이'는 선과 악이 분명하게 갈리는 내용이 될 것 같고 한효주는 이런 드라마에 강점을 보이는 것 같다. 한효주는 선해 보이는 얼굴만으로도 이미 이점을 안고 시작한다고 할 수 있기에 향후 좋은 연기로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할 것이라 기대한다.



*** 트리핀의 딜레마 [Triffin’s dilemma]

미국의 1950년대 수년간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자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또 미국이 경상흑자로 돌아서면 누가 국제 유동성을 공급할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당시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은 미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경상적자를 허용하지 않고 국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면 세계 경제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적자 상태가 지속돼 미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해 준비자산으로서 신뢰도가 저하되고 고정환율제도 붕괴될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는 한마디로 답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트리핀의 딜레마’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한편 트리핀은 또 다른 자리에서 “미국의 경상적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새로운 국제 유동성을 창출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남겨 또 한번 주목을 끌었다. - 출처 ; 네이버 용어사전

1942년 미국에 귀화했던 트리핀은 1977년 벨기에 시민권을 회복하며 1993년 2월23일 66세로 사망할 때까지 유럽통화기금과 유럽중앙은행 창설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