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거상 김만덕' 드라마와 기록의 차이점들

드라마 '거상 김만덕'은 존재하는 기록들과는 차이가 많은 허구(虛構, fiction)로 이루어진 것 같고 앞으로도 그렇게 전개될 것 같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고 하니까 김만덕의 삶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는게 다행이긴 하지만 김만덕의 일대기가 올바르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랬던 나로서는 약간은 실망스럽다.

드라마에서 김만덕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사건에 연루돼 제주도로 유배 온 김응렬과 제주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만덕은 태어나자마자 제주에서 의녀 생활을 했던 할매에게 맡겨졌으며 할매가 한양으로 데리고 와서 키워낸다.

그러나 김만덕의 유년기는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유복했던 것 같고, 한양에서 성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러 기록들을 보면 김만덕은 아버지 김응열(金應悅)과 어머니 고씨 사이에서 태어난 김해 김씨의 후손이다. 12살에 풍랑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같은 해에 제주도를 덮친 전염병의 여파로 어머니마저 잃고 고아가 된 만덕은 바로 퇴기(退妓)의 수양딸이 되었다.

김만덕의 아버지 김응열은 육지로 장사를 다니다 풍랑으로 사망했다는 것으로 보면 김만덕은 양인(良人)집안 출신이었던 것 같다. 양인(良人)은 양반과는 다르며 신분적으로 양반층의 하위계급이었고 상업이나 수공업 또는 농업에 종사하는 계층이었다. 그러므로 드라마속 김응렬과 기록상의 김응열과는 신분상의 차이가 있다. 드라마에서 김응'렬'로 표기한 것은 오기(誤記)인 것인지 의도적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김만덕은 12세에 아버지를 잃었다고 하는데 드라마에서 김만덕이 한양에 있을 때의 나이는 13세로 나온다. 이 때에는 김만덕은 이미 고아여야 함에도 드라마에서는 아버지인 김응렬과 조우하게 된다. 향후에도 김응렬은 계속 드라마에 등장할 것 같은데 아마도 드라마의 대부분은 허구적 요소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김만덕은 어머니 고씨마저 세상을 떠나자 친척집에 맡겨졌다가 어느 퇴기(退妓)의 집으로 보내졌으며 그 퇴기에 의해서 관기(官妓)가 되어 관기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가 15세 정도였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김만덕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퇴기의 수양딸이 되고 관기가 될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행수기녀 묘향은 김만덕을 자신의 수양딸로 삼으려고 음모를 꾸미는데 굳이 수양딸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당시의 기생 제도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기생은 관청에 소속된 관기였는데 대개 15세부터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리고 50세가 되어야 기적에서 빠지게 되는데 이 때도 딸이나 조카 등을 대신 기적에 올려야 했다고 한다.


(김만덕의 초상화)

드라마에서 할매가 묘향에게 '자식에게조차 대물림하지 않는 게 기녀'라고 말하는데 이는 정확한 내용은 아니라고 하겠다. 당시에는 종모법(從母法)이 시행되고 있던 때였으므로 딸은 기생의 신분을 세습해야 했다. 부(父)가 양반이더라도 모(母)가 기생이면 딸은 기생이 되어야 했던 때였다. 그런데 이 종모법이라는 것도 양인의 숫자를 증가시키기 위한 고육책이었고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인 양천제(良賤制)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이었다고 하겠다.

드라마 '거상 김만덕'은 현재까지 대부분이 허구적 요소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렇게 전개될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유년기를 한양에서 보내는 것으로 설정했을까?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제주출신인 주인공 김만덕(이미연)이 드라마에서 제주말씨가 아닌 서울말씨를 쓰는데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닐까? 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항상 서울말씨를 쓰는지 가끔은 의문이 생길때가 있기에 가져 본 생각이다.

향후 또 어떤 내용으로 드라마가 전개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를 계기로 김만덕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그의 삶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