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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파스타' 서유경이 꿈꾸는 식당, 망할까?

"나는요. 나중에 식당을 차리면요. 홀에 테이블 하나만 놓고 하루에 손님 한 명만 받을 거예요. 그 시간 동안 그 손님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손님이 좀 달게 먹고 싶으면 달게 해주고, 좀 짜게 먹고 싶으면 짜게 해줄거예요."

"그 식당, 망한다."

'파스타' 극중에서 서유경(공효진)과 셰프 최현욱(이선균)이 주고 받은 대사이다.


공효진(MBC 파스타 홈페이지 캡쳐 사진)

서유경이 꿈꾸는 이 식당, 이성적으로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식당이다. 내가 셰프 최현욱이라면 '너 바보냐?'라고 핀잔을 줬을 것이다. 든든한 자선사업가가 아니라면 현실속에 이런 식당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사엔 남녀간의 사고와 어법의 차이가 있는 것 같고 이 오묘한 차이는 서유경과 셰프 최현욱을 통해 '파스타'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남자들은 보통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말한다. 산술적으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좋아하기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단순하다. 반면에 여자들은 감성적으로 사고하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남자가 보기엔 꽤나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 이성과 감성이라는 이 오묘한 차이로 인해서 남자와 여자는 곧잘 싸우는데 그 싸움의 원인이 객관적으로 보면 별 것 아니고 우습기까지 하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다름을 확인해가는 과정이라 생각되는데 제3자에겐 두 남녀간의 사랑싸움으로 받아들여지고 연애박사들은 이를 '밀고 당기기' 기술이라 칭하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의 이성과 감성의 차이가 곧 성격차이이고 그 강도의 차이가 클수록 그들은 화합하기 어려워진다.

서유경에게 요리와 사랑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똑같이 중요하지만 그 둘을 애써 구분시켜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현욱에게 요리와 사랑은 별개이고 완전히 구분되어 있다. 그렇다고 사랑보다 요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요리와 사랑을 엄격하게 분리해 놓는 것일 뿐이다.


부엌(네이버 백과사전 이미지 사용)

서유경이 꿈꾸는 식당은 이런 것이 아닐까? 테이블은 하나만 있으며 한 사람만을 위해서 요리하고 그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 그 사람만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서유경만의 식당. 서유경이 꿈꾸는 식당은 요리와 사랑이 공존하는 곳이다. 서유경이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할 수 있기만 하다면 서유경이 꿈꾸는 식당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 파스타, 참 오랜만에 보는 신선하고 맛깔나는 드라마다. 일요일 재방송을 3회 정도 보다가 일요일까지 기다리기 힘들어서 이번주부터 본방 사수에 들어갔는데 1회부터 모두 보지 못한게 아쉽다. 드라마 파스타는 "얼굴도 못 생기고 손도 못 생기고 잘 생긴데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끌리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드라마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자극적이고 독한 설정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이 특별하지 않은 것들을 등장 인물들의 산뜻하고 감각적인 대사로 잘 조화시켜 놓은 참 '잘 만들어진' 드라마다.

드라마 파스타는 시청자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막장드라마들과는 확연하게 차별된다. 막장드라마들과는 달리 시청자들이 숨기고 있는 가시를 무서워하고 조심한다. 오히려 드라마 파스타 작가가 시청자들의 도마 위에 올라가서 시청자들의 칼질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뾰족한 가시를 숨기고서 말이다.

"너, 내 도마 위에서 내려가면 죽는다."

셰프 최현욱이 서유경의 눈에 키스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은 마치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애교 섞인 귀여운 협박 같다. 하지만 나는 그 도마 위에서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 드라마 파스타가 칼질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완성된 요리를 맛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