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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겹사돈' 아니면 드라마가 안돼(유형 정리)

요즘 드라마를 보면 작가들의 상상력이 빈곤해서인지 아니면 시청률을 담보해주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겹사돈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알기 쉬운 겹사돈만 다루면 효과가 없을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작가들은 특이하고 희귀한 유형을 찾아내느라 애쓰는 것 같다.

겹사돈은 90년 민법 개정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며 현재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물론 겹사돈에 대해서 아직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고 나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마치 겹사돈이 불가능한 것처럼 얘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시청자들을 현혹한다. 그래서 이 기회에 드라마속에서 결혼이 가능함에도 불가능한 것처럼 현혹하는 유형들을 모아 보았다.

◇ 보석비빔밥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보석비빔밥'이 겹사돈을 맺을 태세다. 이 드라마는 내용도 굉장히 좋은데 겹사돈과 관련해서도 가장 모범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겹사돈이 불가능하다는 뉘앙스는 전혀 없이 '겹사돈을 맺을수는 없다'며 겹사돈을 꺼리지만 결국은 서영국과 궁비취의 결혼이 성사될 상황이다. 물론 아직 궁비취 부모들은 서영국의 엄마인 이태리가 치매라는 사실을 모르기에 한바탕 소란은 일겠지만 말이다.

일단 이 둘이 결혼한 후에 궁호박과 서끝순의 결혼은 아직 미지수이나 서영국의 아버지인 서로마는 궁호박에 호감을 갖고 있고 궁호박의 부모들 역시 서끝순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으므로 결국엔 겹사돈은 성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궁호박과 서끝순은 현재 18세로서 혼인이 가능한 연령이기는 하지만 부모들의 동의를 얻어야 결혼할 수 있다. 서끝순이 아무리 궁비취에게 독사과를 먹여도 서영국 왕자님이 키스로 살려낼 것이고 서영국과 궁비취는 부모의 동의 없이도 결혼할 수 있으므로 서끝순의 귀여운 방해공작은 전혀 얄밉지 않다.

◇ 살맛납니다


지난주인가 주말에 재방송을 잠깐 보았던 드라마인데 이 드라마도 내용은 꽤나 막장코드다. 장유진의 아버지이고 홍민수의 시아버지인 장인식의 언행은 몰상식함이 도를 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이 드라마보다는 차라리 KBS 드라마 '다함께 차차차'가 더 낫다. 나예주와 홍진수가 결혼하는데 아무런 문제는 없지만 장인식의 몰지각한 언동을 보면 홍진수의 결혼을 뜯어말리고 싶다. 이 드라마를 잠깐 보았지만 살맛나는게 아니라 짜증만 나더라.

◇ 다함께 차차차


이 경우는 굉장히 희귀한 경우인데 이 드라마 작가는 이런 특이한 관계를 찾아내느라고 꽤나 고생했을 것 같다. 한진우와 강나윤의 결혼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얘기를 계속 비꼬면서 시청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한태수가 하윤정과의 전혼을 부활시키고 나은혜와의 후혼을 취소하든, 그냥 강신욱으로 나은혜와의 혼인관계를 유지하든, 하윤정이 재혼을 해서 한진우와 인척관계를 종료시키든, 어떤 경우이든 한진우와 강나윤의 관계는 전혀 바뀌지 않으며 둘의 결혼에 걸림돌은 없다.

드라마 작가가 이 요상한 관계설정에 상상력을 다 쏟아부었기 때문인지 최근의 진행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막장드라마라는 것을 커밍아웃하기 위해서 멀쩡한 어린 강나정을 교통사고를 내지 않나, 하윤정의 시어머니가 하윤정에게 한태수와 결합하지 말라고 종용하지 않나, 등등. 요샌 아예 대놓고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건드리려고 하지만 너무 고루하고 식상하다.

◇ 집으로 가는 길


'다함께 차차차' 이전에 방송되었던 드라마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은데 이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여기에서도 좀 이상한 관계를 설정해서 결혼불가능으로 시청자들을 현혹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한수인은 한대훈의 친딸이나 오선영과는 혈연관계가 없으며 오선영이 재혼해서 키운 딸이다. 한수인과 유현수는 결혼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오선영은 유현수의 숙부인 유용환과 결혼을 했으므로 유현수에겐 숙모로서 인척관계에 해당한다. 그러나 유용환이 사망하고 오선영이 재혼함으로 인해서 유현수와의 인척관계는 종료했다. 인척관계는 혼인의 취소 또는 이혼으로 인하여 종료하고, 부부의 일방이 사망한 경우 생존 배우자가 재혼한 때에도 종료한다.

◇ 보고 또 보고


98년도인가 오래전에 방송되었던 드라마다. 민법 개정 후 10여년이 지났음에도 이 당시에는 겹사돈이 일반화되지 않았거나 여전히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었던 모양이다. 드라마의 내용이 꽤나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먼저 은주와 기정을 결혼시키는듯하다가 갑자기 금주와 기풍을 결혼시키며 은주와 기정을 생이별시키고, 은주와 금주 자매간에 결혼을 먼저 하기 위해서 할머니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등 드라마의 전반적인 내용이 썩 좋았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시청률은 높았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였다.

개인적으로 겹사돈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형제자매가 성인이 되어서도 동일한 장인 장모 또는 시부모를 맞는다는 것은 썩 좋은 그림은 아닌 것 같다. 가족행사가 있을때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게 아니라 맨날 보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면 별로 재미도 없지 않을까.

드라마에서 겹사돈을 소재로 삼는 것은 좋지만 그들의 심리적인 갈등을 중심으로 다루는게 좋다고 본다. 불가능한 상황이 아님에도 그런 식으로 시청자들을 현혹하며 시청률 낚시를 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젠 겹사돈이란 소재는 식상한데 터무니없는 희귀한 관계설정을 찾아내느라 골머리 썩이지 말고 창의적인 드라마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시청자로서 좀 신선하고 좋은 드라마들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