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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사라진 추격자, 이유없는 양반살해 왜?

'추노' 10일 방송분에서는 앞으로의 극 전개에서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양반 둘을 사살한 업복이 '오늘 양반들은 왜 죽인거냐?'고 초복에게 묻자 '몰라요. 그건 안쓰여 있었어요. 아마도 나쁜 짓을 했겠죠.'라고 초복이 대답한다. 양반들을 다 쏴죽이고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며 뭉친 노비당은 누군가의 밀지를 받아 거기에 적힌 양반들을 사살해 나간다. 현재까지는 죽여야 할 양반의 악행을 적시함으로써 노비당도 살해할 양반을 죽이는게 당연하다고 공감할 수 있었지만 이 날 방송분에서는 왜 죽여야하는지 이유도 모른채 누군가의 지시를 받자 기계적으로 양반을 사살해버린 것이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모두 사라졌다. 지금까지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서로 얽혀서 누가 누굴 쫓는지 모호한 상태였다. 서로 쫓고 쫓기는 큰 줄기를 보면 도망노비인 송태하를 쫓는 이대길과 소현세자의 아들인 석견과 잔존 세력들을 살해하기 위해 쫓아가는 황철웅이다. 송태하는 석견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소현세자의 잔존 세력들을 찾아 달려가는데 이 동선이 황철웅과 겹치게 됨으로써 이대길과 송태하 그리고 황철웅 이 셋이 마치 서로 쫓고 쫓기는 형국이었다.

이 쫓고 쫓기는 관계는 그 외에도 복잡했다. 황철웅과 엮인 천지호가 황철웅의 동선을 따라가지만 천지호는 이대길도 쫓고 있었고, 백호와 명나라 자객 윤지가 언년을 쫓고 있었으나 백호는 중간에 목표를 바꿔 언년 대신에 이대길을 쫓게 되는 등 등장인물들간에 서로 쫓고 쫓기는 양상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런데 이 복잡하게 쫓고 쫓기던 관계가 일거에 정리되어 버렸다. 큰 줄기만 남기고 곁가지는 모두 잘라내버린 것이다. 이제 쫓는 자는 이대길 뿐이고 쫓기는 자는 송태하밖에 없다. 그리고 이대길이 송태하를 쫓는 이유가 약간은 모호해졌다. 물론 애초부터 거액을 받고 도망노비를 쫓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여기에 언년의 존재가 끼어들면서 대길의 심정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대길이 만약에 송태하를 추포한다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아무런 단서가 없다. '왜 하고 많은 놈들중에 하필이면 도망노비 송태하냐?'고 절규하던 이대길의 모습만 남아 있다.



왜 죽여야하는지 또는 왜 쫓아야하는지 이유를 모르면서 그들은 기계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죽이라는 밀지를 받았으니까 죽였던 것이고 쫓아야하니까 쫓고 있는 형국이 되버린 것이다. 이것은 이들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달리 그들의 뒤에 도사린 추악한 정치세력에게 휘둘리고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대길과 송태하 그리고 업복이 이 세사람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세상이란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대길은 반상의 신분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에서 언년과 행복하게 살아갈 소박한 꿈을 꾸는데 이것은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우나 구체성이 결여되어 이상적이기보다는 망상과 가깝다. 송태하는 비명횡사한 소현세자를 제 위치로 돌려놓고 그 적자인 석견을 왕위에 올려놓겠다는 꿈을 꾸는 것으로 새로운 질서를 꿈꾼다기보다는 기존 질서를 바로잡고자 함이다. 그리고 업복이 말하는 새로운 세상은 그야말로 천지개벽하는 혁명이다.

드라마 '추노'를 관통하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인조가 집권하던 시대다. 병자호란을 거치며 사회적 혼란은 극에 달했고 당대의 권력자들은 권모술수를 통해 사리사욕을 챙기며 피지배자들을 혹독하게 수탈하던 참담한 시대였다. 숙명적으로 누군가가 희생양이 되어 피를 볼 수밖에 없는 엄혹한 시대. 결국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실현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화면 전체에 피비린내를 풍기며 잔인하게 조연들을 숙청한 것은 이대길과 송태하 그리고 업복이가 추악한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다는 암시로 대체되었다. 지랄맞을만큼의 추잡한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세 사람. 양반이었으나 병자호란을 거치며 추노꾼으로 전락한 이대길, 훈련원 교관에서 관비로 전락한 송태하, 호랑이를 잡던 관동 포수였지만 집안의 빚 때문에 노비로 전락한 업복이.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이 셋의 운명은 다를 것 같지만 종내(終乃) 같은 운명이 되고 말 것이다. 역사란 그렇게 누군가의 피를 먹으며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