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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선덕여왕, 인력구(人力口)는 똥 같은 것

드라마 선덕여왕에 미실이 위천제를 주도한 후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며 나정에서 必逐人力口(필축인력구)란 문구가 적힌 불상을 솟아오르게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솔직히 우스웠다. 그 장면이 너무 조악하기도 했고 인력구(人力口)가 정구죽천(丁口竹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장면에서 '똥'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八十八十口二十八
이것이 무슨 말인가하면 바로 내가 떠올렸다는 '똥'이다.

인력구(人力口)는 선덕여왕 작가들이 파자(破字)놀이를 한 것이다. '파자놀이'란 한자(漢字)의 자획을 나누거나 합치거나 하여 맞추는 놀이를 말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하나의 글자를 여럿으로 나누거나 합치거나 하여 '말 장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파자놀이가 유행했던 시대는 조선시대였다. 주로 선비들이 음(音)이나 의미의 차이 또는 은유법 등으로 그들의 재치와 지혜를 겨루던 놀이로 선비들의 풍자와 해학을 엿볼 수 있는데 '파자'를 언급하면서 '파자의 대가'인 김삿갓을 빼고 말할수는 없다. 삿갓 쓰고 죽장 짚고 미투리 신고 한평생을 방랑하며 숱한 전설과 일화를 남긴 방랑 시인 김삿갓, 위의 정구죽천(丁口竹天)도 그의 욕시(辱詩) 가운데 나온다.

당시에 '파자'는 양반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봉산탈춤 제6과장인 양반춤에서 말뚝이는 양반 3형제와 재담을 하면서 파자놀이 등으로 양반들을 신랄하게 욕보인다.

또 재미있는 얘기를 해보자면 '시장의 역사'(박은숙)를 보면 '여리꾼' 얘기가 나온다. 여리꾼이란 손님에게 무슨 물건을 사러 왔는지를 묻고 해당 점포에 데리고 가 흥정을 붙이는 사람을 말하는데 여리꾼들은 상인과 손님 사이에서 자기들 몫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상인들과 암호를 주고 받았었단다. 당시에 사용된 암호로는 천불대(天不大), 인불인(仁不人) 등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자의 획을 나누거나 합치는 파자(破字)라고 할 수 있겠다. 천불대(天不大)는 天에서 大를 빼면 一이요, 인불인(仁不人)은 仁에서 人을 빼면 二가 되는데 이런 원리를 이용한 암호다.

그러고보면 예나 지금이나 소비자는 봉이다.

신라 진평왕대에도 파자놀이가 있었는지는 정확치 않다. 신라 진평왕 때의 서동요(薯童謠)가 전해지는데 이것은 한자(漢字)의 음(音)과 훈(訓)을 빌린 향찰(鄕札) 및 이두(吏讀)로 표기된 향가(鄕歌)의 일종이다. 이두(吏讀)로 표기된 서동요의 원문을 보면 한자의 음과 훈을 빌린데다 은유 등을 사용했기 때문에 읽기도 힘들고 이해하기도 참 난감하다.

당시에 도참사상(圖讖思想)이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도참사상이 한국에서도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은 진평왕대보다는 한참 뒤의 일이다. 비결(秘訣), 비기(秘記) 등으로 불리는 도참은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며 은어(隱語)를 많이 사용하기에 뜻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왕건을 왕위에 올려 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도선비기(道詵秘記)와 같이 참언(讖言)을 담고 있는 글들은 글자대로 풀어서는 안되고 은어를 찾거나 파자 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선비들의 놀이였던 파자놀이와 서동요나 도선비기처럼 도참적 성격을 갖는 참언구절의 경우에 보이는 은유나 파자 등은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해학이 담겨있다면 후자의 경우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었다.

진평왕대에 승려들은 서민들 속으로 들어가 대중들에게까지 불교를 전파했던 혜공이란 승려도 있었지만 대개의 승려들은 왕궁이나 성내의 대사원에서 귀족생활을 하며 지배계층을 위해 부역하던 시대였다. 지배층을 중심으로 한 귀족불교를 지향한 사람들이 모두 유학파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에도 도참사상이 있었을거라고 추정할수도 있고 그러한 승려들이 지배계층의 혹세무민에 동조하고 앞장섰을수도 있다.

이런 잡다한 추정들을 늘어 놓는 이유는 그 당시에 혹세무민하거나 정적(政敵)을 축출하기 위한 음모나 술수는 '인력구'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난해했을거라는 얘기가 하고 싶어서다. 한자를 알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두(吏讀)나 향찰(鄕札), 거기에 도참설까지 더해진다면 그 당시로서는 백성들을 속이고 정적을 축출하기는 굉장히 쉬웠을수도 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인력구'란 가장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도 단순히 '必逐人力口'라니. 마땅한 아이디어를 찾지 못해서인지 시청자들을 배려해서인지 차후를 위해 더 난해한 비책을 남겨두기 위해서인지 더 지켜보면 알게 될 일이다. 물론 상상을 빌려서 쓸수밖에 없는 것이 드라마 대본일테니 그것이 그리 윤리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상상력을 지켜보는 일이 될 것이다.

다시 '똥'으로 돌아가보자. '人力口'를 보면서 내가 똥을 떠올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때인가 어떤 선생님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당시 많이 쓰던 욕 중에서 "십쭈구리하다"는게 있었는데 이 선생님은 늘 "열쭈구리하다"로 바꾸어서 욕을 하라고 했었다. 그리고 "미전공(米田共) 같은 놈"이라는 말을 하고는 했었는데 이 미전공을 세로로 놓고 보면 분(糞)자가 된다. 즉 "糞 같은 놈"이라는 말이 된다. 욕도 좀 근사하게 하라고 늘 강조하시던 선생님이셨다.

반말, 욕지거리나 쏟아내며 다대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온라인의 米田共같은
者禾重들이 새겨들었으면하는 말이기도 하다.


서두에 '米田共'이라 쓰지 않고 '八十八十口二十八'이라고 쓴 이유는 '米田共'을 더 '파자'해서 응용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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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자의 음은 '견'이고 훈은 '큰 개'다. 블로그에서 표기되는 글자가 지원되지 않는 관계로 이미지로 대체했다. 부수로 쓰일 때는 '개사슴록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