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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선덕여왕, 이요원의 남장(男裝)을 벗겨야 하는 이유

어출쌍생(御出雙生) 성골남진(聖骨男盡)이란 예언이 저주에 해당하지도 않을뿐더러 이 예언이 현실화된다고 하더라도 모반(謀反)의 구실이 된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을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도피시키고 거기에서 유년을 보내게 하고 있다. 덕만은 아직 생사는 불분명하지만 자신이 어머니라 믿고 있는 소화를 잃고 남장을 한 채 신라로 돌아오게 된다. 그 후에도 덕만의 남장(男裝)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이 설정은 굉장히 거슬린다.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은 덕만이 더 성장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이요원에게 씌워진 남장을 벗겨내야만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는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다.

삼국유사에 지귀설화(志鬼說話)가 전해지고 있는데 지귀라는 사람이 선덕여왕의 아름다움을 사모해 화귀(火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상사병 정도가 아닐까한다). 이로 미루어보면 선덕여왕은 미모도 출중했었던 모양이다.


부인사 숭모전에 소장되어 있는 선덕여왕 영정, 1990년대에 전각을 다시 지으면서 제작한 영정.

보통은 선덕여왕을 지혜로운 여왕이었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선덕여왕의 지혜는 선덕여왕 지기삼사 설화(善德女王知機三事說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설화에서 보면 선덕여왕은 불경이나 주역에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김별아의 <미실>에는 '덕만 공주는 별자리와 천체의 운행을 알아보는데 능하다'고 하고 있다. 선덕여왕 즉위 후 당시의 천문학적 지식을 집대성한 첨성대를 건립한 것으로 보아 선덕여왕은 천문학에 대해 관심과 조예가 깊었던 것 같다.

또한 '선덕여왕이 여근곡(女根谷)이란 산 모양을 보고 백제의 군사가 매복하였음을 알아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덕여왕은 풍수지리에도 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도를 종합해보면 '선덕여왕은 관대하고 명민하며 예지력이 탁월했다'고 한 기존의 역사서들이나 <화랑세기> 필사본의 '용과 봉황의 자태와 태양의 위용이 있었다(龍鳳之姿 天日之表)'고 하는 것들이 이해가 된다. 물론 여기에서 샤머니즘(shamanism)적 요소와 불교적 요소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데 어쩌면 선덕여왕이 여신으로 떠받들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도 한다.

한국 역사에서 선덕여왕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최초의 '여왕'이라는 것에 있다. 여자로서 왕위에 올랐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남장한 여자로서 전공을 세워나가다가 어느 순간 여자임이 알려진 후에 왕의 자리에 올랐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이 덕만에게 계속 남장을 고집하는 것은 선덕여왕에 대한 모욕이고 한국 역사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본다. 단지 이 하나의 이유 때문에라도 빨리 이요원에게서 남장을 벗겨내야 한다.

선덕여왕 제작진은 이미 정답을 던져 놓았다. 미실에게서 나오는 힘의 원천은 '사다함의 매화'라는 것이지만 미실 스스로 자신은 성골 출신이 아니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이 사다함의 매화라는 것은 수나라 사신단과 상단을 통해 들여오는 책력(冊曆)인 것으로 보인다. 수나라의 책력을 이용한다해서 신라의 기후에 얼마나 맞고 신통력을 발휘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실은 선진 역법을 이용했다고 하려는 모양이다. 책력이란 1년의 절기와 그 날짜를 기록한 문서를 말하는데 사다함이 죽은 후에 오랜만에 들어오는 책력이니 미실로서는 상당히 고마울법도 하겠다.

그러나 덕만은 이미 별자리만 보고도 길을 찾고 일기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사막에서 길러 왔다. 덕만이 설지 마을에서 비를 내리게 하고 수맥을 찾겠다고 땅을 파는게 이미 방송되었다. 미실이 수나라에서 가져온 책력을 몰래 숨겨놓고 보지만 그것은 수나라의 실정에 맞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덕만은 수나라에서 가져온 책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오히려 신라의 실정을 고려해서 신라에 더 정확하게 맞는 책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태양을 얻는 자가 왕위를 얻는게 아닐까?

더구나 덕만은 미실과는 달리 성골 출신이 아니던가. 빼어난 미모에 탁월한 예지력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는 인본주의적 리더십, 덕만에게 남장을 시키지 않아도 미실과 대적할 수 있는 여건은 이미 충분한 상황이다. 더 이상의 남장 설정은 무리하고 억지스런 전개만 만들어낼 뿐이다.

지난주 방송된 전투장면에서 유신이 화살을 쏘아 자신을 구해준 덕만을 끌어 안고 등에 업는게 나왔다. 갑옷까지 벗은 덕만을 안은 상태에서 등에 업는데도 유신은 덕만이 여자인지를 몰랐다.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도 모두가 덕만이 여자인지를 눈치채지 못한다. 용화향도의 낭도들과 같이 먹고 자고 뒹굴고 훈련하면서 아무도 덕만이 남자인지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어제는 칠숙이 등장했는데 또 어떤 우연과 억지로 덕만이 여자라는걸 숨길지 알 수 없겠지만 억지설정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곧 식상함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요원에게서 하루라도 빨리 남장을 벗겨내고 여성으로 돌아가게 해야 된다. 더 이상의 남장은 계속되는 억지와 우연을 만들어내 식상하게 할 뿐이다. 남장한 이요원이 왕위에 오르는게 아니라 여성인 덕만공주가 한국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에 즉위하는 것을 보고 싶고 그렇게해야 드라마 선덕여왕도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첨(添) : 7월 8일 0시 30분

당연히 수나라일거라고 짐작했더니 마게타국(摩揭陀國)이었네. 거기다가 대명력(大明曆)으로까지. 미실의 신통력 얘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면 작가들은 '선덕여왕의 예지력이 탁월했다'는 기록에 천착(穿鑿)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이것은 선덕여왕 재위시에 건조한 첨성대 뿐만아니라 황룡사 구층목탑(皇龍寺 九層木塔)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암시인가? 그렇다면 드라마속의 미실이 쌓아 놓은 아성을 완벽하게 무너뜨릴 수 있겠지만 이렇게하자면 얘기가 꽤 길어져야 한다는건데.

대명력은 중국 남조 송 효무제(宋 孝武帝) 대명 6년(462년)에 조충지가 제정한 역법이다. 명나라를 연상하는 분들이 있는데 명나라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대명력의 대명(大明)은 송 효무제의 연호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충지가 만든 대명력은 이전의 역법을 뒤집은 중대한 개혁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는데 현대과학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아주 정밀한 역법이었다고 한다. 책력과 역법은 개념의 차이가 있는데 드라마에서 가야의 책력과 함께 대명력을 등장시킨 것은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연호(年號)란 중국에서 비롯된 기년법(紀年法)를 말하는데 한자를 사용하는 아시아의 군주국가에서 사용되었다. 선덕여왕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는 신라에서도 연호를 사용했다. "신라에서는 536년(법흥왕 23)에 건원(建元)을 최초의 연호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한나라 무제가 사용한 것이었다. 그 후 진흥왕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 때까지는 신라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나 649년(진덕여왕 3) 당나라 태종이 신라에서 연호를 따로 사용함은 부당하다고 하여, 650년부터는 당나라의 연호 영휘(永徽)를 사용하였다."

칠숙이 소화와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알 수가 없다. 설마 칠숙이 미실과 척지게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잠깐동안 잠적시켰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으로 등장시키게 될지도 모르겠다. 칠숙과 소화가 문노보다 먼저 등장할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했었는데 좀 싱겁다. 칠숙과 소화의 관계는 또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암시는 칠숙의 눈에 이상이 있다는데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