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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각시탈' 거꾸로 걸린 태극기, 예상해보는 결말

 
 
 
'각시탈'의 극중 현재 연도는 1945년 봄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그해 8월 15일에 해방이 되었으니 아마 드라마의 결말도 그 역사적 사건에 맞춰져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드라마에 양백과 동진을 등장시킨 것 또한 이러한 결말로 가기 위한 수순이 아닐까 생각된다.
 
양백은 '총알체'란 한 단어로 설명이 되는 백범 김구 선생이고 동진은 몇가지 설정을 종합해보면 몽양 여운형 선생이다. 양백과 동진은 가공의 이름으로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내용 또한 허구다.
 
백범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구성되자 상해로 건너가 해방 후 돌아올 때까지 한반도에 발을 들였다는 기록이 없다. 그리고 여운형은 임정 초기에 일시적으로 가담했으나 임정 요인들간의 파벌싸움에 실망하여 얼마 후 떠났고 김구가 총알체를 쓰던 당시에는 한국에 있었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 김구의 충칭 임시정부는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국내에 있던 지하 비밀 독립단체였던 건국동맹과 비밀연락망을 두고 연락을 시도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건국동맹이 바로 여운형이 조직한 것이었다. 그러니 드라마의 내용은 허구라고 보면 되나 그 안에 숨어있는 역사적 사실을 잘 가려서 봐야 한다.
 
드라마 '각시탈'은 양백이 죽음을 무릅쓰고 국내로 잠입했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백범에게 걸린 현상금이 많아서 국내에 잠입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요행히 잠입했다 하더라도 활동해보지도 못하고 얼마 안가 체포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감시망보다는 오히려 조선인들의 눈을 피하기가 더 어려웠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본놈들보다 더 악랄했다는 조선인 순사들이 있었고 일본군 위안부로 자식을 팔아넘긴 패륜 부모들이 있었고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협조해 한국 여성들을 마구잡이로 팔아넘겼던 매국적인 조선인들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지 않은가.
 


 
하여튼 양백은 국내로 잠입해 정자옥 지하에 마련된 근거지에서 은거햔다. 한데 양백의 뒤에 걸린 태극기가 현재와는 달리 거꾸로 걸려있다. 그러나 실은 거꾸로 걸린 것은 아니다. 이 장면은 태극기의 변천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듯한데 어딘가 좀 부족해보인다. 이 태극기는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그린 것인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태극기는 1948년 정부수립 때 도안과 규격이 통일될 때까지는 통일된 규격이 없어 현재의 태극기와는 사괘와 태극의 위치가 각각 다르게 혼동돼 사용해 왔다.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혼동돼 사용된 태극기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보면 마치 세로쓰기 책과 가로쓰기 책을 번갈아가면서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혹여 이와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도 해보지만 다른 경우도 있어서 의미는 없겠다.
 
드라마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태극기가 어떤 자료를 인용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이왕 태극기를 소품으로 쓸 거라면 드라마와 관련있는 태극기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양백이 국내로 잠입해서 '총알체' 글씨를 썼다면 드라마상의 연대는 최소한 1938년 이후라는 얘기가 된다. 이 해에 백범은 이운한의 총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가슴에 박힌 총알 때문에 거동의 불편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글씨를 쓸 때에도 나타났으며 그것을 총알체라고 했다니 말이다.
 

 
그런데 '김구 서명문 태극기'라는 유명한 태극기가 존재한다. "김구(1876~1949년)선생이 1941년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던 벨기에 출신 미오스 오그 신부를 통하여 미국에 있는 한인 교포들에게 보낸 태극기다. 미오스 신부가 뉴욕에서 1년간 활동한 뒤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안창호(1878~1939년)선생의 부인 이해련씨에게 이 태극기를 전달하였다." 백범은 태극기에 아래와 같은 문구를 적어넣었다.
 
梅雨絲 神父의게 付托하오. 당신은 우리의 光復운동을 誠心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行次에 어느 곳에서나 우리 韓人을 맛나는 대로 以下敎句의 말을 傳하여 주시요. 亡國의 설움을 免하려거든 自由와 幸福을 누리려거든 精力人力物力을 光復軍에 밫이어 强弩末勢인 원수 日本을 打倒하고 祖國의 獨立을 完成하자.
一九四一年 三月 十六日 重慶에서 金九 謹贈
 
신기하게도 드라마 '각시탈'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태극기는 김구 서명문 태극기를 세로로 늘어서 걸었을 때와 대단히 유사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태극의 모양이 다르다. 태극 문양만 달리 한 것은 다른 자료에서 인용한 것인지 양백이라는 가공의 이름과 조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꾼 것인지 궁금하다.
 
제주일보에 1944년 김구 선생의 경호실장으로 임명됐으며 국내진공작전을 위해 미국 OSS에서 비밀 공작원 훈련을 받고 국내에 잠입했으나 체포된 문덕홍 지사가 김구 선생과 기념촬영한 사진이 올라 있다. 그런데 이 사진에도 태극의 위치는 여느것과 또 다르다. 이 당시에는 통일된 규격이 없고 손으로 제작하다보니 태극과 사괘의 위치가 각각 달랐던 듯한데 드라마 '각시탈'의 태극기는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전체적으로 유사하나 태극의 색깔 위치만 다르게 표시되어 있는 듯하다. 미주알고주알이긴 하나 드라마에 나오는 태극기의 연유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여튼 드라마에 나오는 태극기는 김구 선생의 태극기로 보인다. 하지만 요즘은 저런 식으로 태극기를 걸면 거꾸로 건 게 된다. 태극기를 세로로 늘어서 걸 때는 90도로 틀어서 걸면 된다. 2010년 G20정상회의에 걸렸던 태극기를 참조하면 뭐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중앙분리대 녹지공간이나 가로변의 가로등 기둥에 양쪽으로 두 개의 태극기를 달 때는 하나의 태극기를 저 상태로 오른쪽에 달고 저 모양에서 왼쪽으로 180도를 돌려서 다른 하나를 나란히 달면 된다.
 

 
또 한가지 언급할 것은 드라마는 양백이 상해 임시정부 '국무령'이라고 하고 있는데 양백이 총알체를 쓰고 있는 드라마의 연도상으로 보면 저 당시는 국무령 제도가 폐지되고 주석제를 채택하고 있었으므로 국무령이 아니라 '주석'이라고 해야 될 거라는 것이다.
 
동진은 몽양 여운형이라는 설정은 몇가지가 있다. 극화된 조선중앙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 기무라 타로에 의해 조작된 동진의 '일제 학도병 권유문', '미국의 소리 단파방송'을 청취, 젊은이들을 규합하여 비밀 지하 독립 운동 단체인 동진결사대 결성 등을 들 수 있겠다. 몽양은 조선중앙일보 사장을 지냈고 일장기 말소 사건 이후 자진 휴간했고 일제에 고문을 받다가 강제로 사상전향서를 쓰고 조작된 일제 학도병 권유문 등으로 인해 친일파로 매도되기도 했다. 동진결사대는 건국동맹인 것으로 보인다.
 
동진의 이러한 행적은 몽양의 1936년 이후부터 해방 전까지의 그것이다. 동진결사대는 1944년에 결성되었으니 지금 드라마는 해방이 바짝 다가와 있는 셈이다.
 
드라마상의 연대가 1944년 이후라는 사실은 일경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돈을 챙기던 계순이의 동생 민규가 학도병으로 끌려간다는 설정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1944년에 '조선인학도육군지원병제도'가 실시되면서 수많은 한국 청년이 강제로 끌려갔었다. 계순이의 경우 일경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화장품과 옷가지를 사기도 했었는데 느닷없이 여러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녀가장으로 둔갑시킨 것은 드라마의 사소한 옥에 티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1944년에는 '여자정신대근무령'을 공포해 12세에서 40세까지의 조선여성을 강제징집해서 일본군 성노예로 팔아넘겼다. 일제는 1937년도부터 일본군 위안부로 한국 여성들을 끌고 갔으나 거짓말이나 회유 등의 소극적인 방법을 벗어나 합법적으로 군위안부 징발을 본격화했다. 백범이 서명문 태극기에 써넣은 강노말세(强弩末勢)적 증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시기라고 하겠다.
 

 
이처럼 현재 드라마 '각시탈'은 모든 설정이 1944년 이후를 가리키고 있으며 양백과 동진이 본격적으로 계획을 준비하고 있으니 1945년 봄 정도는 됐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드라마상의 연도를 이렇게 봤을 때 드라마에 나오는 양백이 동진과 만나서 계획하는 모종의 운동은 백범의 광복군이 미국 OSS(미국전략정보국)에서 특수훈련을 받고 OSS의 지원으로 한반도에 습격하여 일본을 몰아내려는 소위 국내진공작전을 극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진공작전은 실행하기도 전에 일본이 패망함으로써 허탈하게도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무리 드라마라고는 하나 없는 역사적 사실을 극화할 수는 없을 테고 드라마의 결말도 대략 이런 정도 선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싶다. 양백이 국내에 들어와 동진을 만나 "난 제 2의 만세운동을 벌이려고 목숨을 걸고 들어왔네 하지만 3.1 운동처럼 총칼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비폭력 만세 운동이 아니라 전국 13도에서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펼쳐질 무장 투쟁을 벌이려고 하네"라고 계획을 설명했다. 그에 대해 동진도 화답하며 그러한 계획에 동의하고 실행에 옮길 준비를 시작한다.
 
한번도 한반도에 들어온 적이 없던 백범이 다시 중경으로 돌아갈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국내진공작전처럼 갑작스럽게 독립을 맞게 되어 민초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는 것으로 끝날 듯하다. 비록 실행에 옮기지도 못했으나 광복군이 무력으로 일본을 습격하려고 계획했던 국내진공작전이 있었고 드라마적 허구를 동원한 것이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각각의 캐릭터의 경우는 작가가 대의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대체적으로는 해피엔딩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수없이 끌려간 위안부나 학도병, 징병 등의 불행한 희생 위에서 틔는 희망의 메시지여야 할 것이다. 이강토와 그 앞에 나타날 슌지의 필연적인 대결, 거기에 열쇠를 쥔 사람은 채홍주가 되지 않을까 싶고, 그렇게 그 둘의 희생으로 키쇼카이의 몸통은 일본으로 달아나 다시 일본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꿀 것이고 이강토는 이땅의 민초들과 함께 살아낼 것 같다.
 

 
지난 일요일 'TV쇼 진품명품'에 김구 선생이 친필로 '예의염치(禮義廉耻)'라 쓴 액자가 소개되었다. 耻는 恥의 약자다. 이것은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30년'에 쓴 것인데 대한민국 원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인 1911년 4월 11일로서 대한민국은 국호이자 연호로 쓰였다. 그러므로 1949년에 쓴 것으로서 김구 선생이 암살 당하기 1년여 전에 쓴 것이다.
 
김구 선생이 쓴 '대한민국'이란 연호는 드라마 '각시탈'과 관련해서도 꽤 의미가 크다. 김구 선생의 대한민국 연호는 '충칭 임시정부만이 정통성'이라는 소위 '임정법통론' 노선에 대한 고집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협력관계를 유지한다고 얘기가 전개되고 있는 여운형은 임정법통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해서 김구 선생은 여운형을 매우 싫어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여운형이 암살되었을 때에는 김구 선생이 배후로 지목될 정도였다. 이 '임정법통론'은 결국 좌익과 우익을 갈라놓는 빌미가 되었고 또다른 불행한 역사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드라마 '각시탈'을 단순히 항일 드라마로만 이해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상해 임정 내부에서의 파벌싸움도 있었고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 단체들이 해방 후 국내에 집결해서 혼탁한 싸움을 벌였고 신탁통치를 둘러싸고는 남북으로 갈리어 싸웠고 좌우합작을 추진하려던 여운형이 결국 희생되었고 좌우 모두에 의해 과소평가되어 왔다. 남한 북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여운형은 동의받지 못하는 남북분단의 실질적 피해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저 혼탁했던 시대에서 과연 어느 정도나 진보했을까?
 
분이도 이강토도 무명의 독립투사들도 드러내놓고 투정은 못해도 실은 일제와의 기약없는 싸움이 너무나도 두렵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며 두려움을 이겨낸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워야 할 禮, 義, 廉, 耻는 그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권력욕만으로 서로 물어 뜯고 싸우는 정치거물이나 그 선동꾼들이 아니라.
 
 
첨(添) ; 2012. 09. 02. 15 : 50
 
움마, TV를 켰더니 각시탈 재방송이 나오는데 하필이면 양백이 상해로 돌아간다는 것과 국내진공작전을 직접 언급하는 장면이다. 본방에선 뭘 봤던 거지? 작가가 이 시점에서 백범과 몽양을 직접 만나는 설정을 하는 이유가 뭘까에 골몰하다 보니 대사를 놓쳤던 모양이다.
 
뭐 하여튼 이리 되면 드라마의 결말이 본문에 언급했던 예상과 달라질 수 있겠다. 국내진공작전은 역사적 사실이니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할 것이나 몽양은 1944년부터 일제 패망 후 건국준비위원회를 계획했었으니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장면으로 대신할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이강토는 원작 대로 최후를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결말이라면 패닉에 빠지는 시청자들이 꽤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