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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추적자' 세상을 바꾸는 두가지, 전화 한통 그리고

 
 
 
드라마 '추적자'에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한통의 전화다. 이처럼 빈번하게 등장하는 전화 한통은 사건의 시발과 전개 및 해결에 연관되는 단초를 제공하고 중요한 고비마다 드라마 전개의 물줄기를 바꾸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딱 한통의 전화를 제외한 모든 전화는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배신과 음모 등 불의 또는 부정적인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백수정이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인데 이 사건도 알고 보면 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딸 백수정의 친구를 불러 생일잔치를 해준 백홍석은 대선 경호팀에 차출되었다는 전화 한통을 받고 흥분해서 경찰서로 갔고 황반장에게 사직서를 던진다. 그 후 백홍석은 세번째 결혼을 선언한 조형사와 술자리를 갖게 되는데 백수정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백홍석은 백수정의 전화를 받고 데리러 갈 테니 기다리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한다. 그러나 이때 황반장이 찾아오는 바람에 백수정에게 먼저 집으로 가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고 술자리를 이어간다.
 
백수정이 백홍석에게 걸어온 행복한 전화 한통, 백수정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이 전화 한통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러 전화 중에서 음모나 배신 등을 예고하지 않는 유일한 마지막 전화 한통이었다. 백홍석이 전화를 끊고 술자리를 이어가는 그 순간에 백수정이 서지수가 운전하는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고 끝내 사망에 이르게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과실치상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백수정의 사고가 끝내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는 비극이 되고 만 것은 여러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이 뒤엉키면서 벌어진 것이다. 서지수와 불륜관계인 PK준이 살려달라고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는 백수정을 잔혹하게 살해하게 된 것은 백수정의의 손에 들린 'PK준 콘서트 티켓'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건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난잡했던 과거가 밝혀지고 그로 인해 이미지에 타격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기적인 욕망으로 PK준은 자신의 콘서트에 와준 팬을 살해한 것이다.
 
백수정을 애써 살려낸 윤창민이 결국 절친한 친구의 딸을 살해하기로 결심한 것은 도박빚과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강동윤이 윤창민을 교사해서 백수정을 살해하기로 결정한 것은 대권을 거머쥐고 한오그룹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였다. 장병호나 검찰 등의 자들이 강동윤의 지시에 따라 백수정 살인 사건의 진실을 축소 은폐하려고 나서는 것은 강동윤 정권 하에서 보장되는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서회장과 서지수, 서영욱이 백수정 살인사건 은폐를 조종하는 것은 '흘레질에 미친 암컷' 서지수의 불륜 행각과 사고의 공범임을 숨기기 위해서이다.
 
백수정 살인 사건에 의문을 갖고 사실을 취재하는 기자는 한명도 없고 백수정을 마약중독자로 매도하고 욕하는 데 앞장서며 송미연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기자 나부랭이들만 있었던 것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취재하려는 귀찮은 일보다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노닥거리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에만 열올림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이 더 크고 쉽기 때문이다.
 

 

 
기사를 유통시키는 포탈은 기자 나부랭이들보다 한술 더 뜬다. 클릭을 유발하는 글만 뽑아 제목으로 포장하는 신묘한 능력이 있는 포탈들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허위의 사실만 족집게처럼 뽑아내 클릭 장사에 혈안이 되어서 백수정 살인사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글 따위는 철저하게 유통을 막아버린다. 스타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맹신에 빠진 팬덤을 이용해서 어떻게 하면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포장할까만 궁리하며 클릭장사에만 눈 먼 기자 나부랭이들이나 포탈들은 과연 진실이란 게 궁금하기는 할까?

 
백수정을 차로 친 것은 '흘레질에 미친 암컷' 서지수였으나 살릴 여지를 포기하고 살해한 것은 PK준을 포함한 다양한 군상들의 욕망과 이기심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백수정을 마약중독자에 원조교제나 하는 불량소녀로 매도해서 재차 살해하고 급기야 송미연까지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방송과 언론 그리고 맹목에 빠져 진실을 왜곡하는 데에 들러리 서준 관전자들이었다.
 
이처럼 백수정이 살해당하고 송미연까지 죽게 만든 것은 다양한 군상들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맹목적인 아둔함이 복합되어 있다. 한데 여기에 앞장섰던 자들일수록 백수정의 진실이 밝혀지고 나면 권력자들 욕하고 검찰이나 경찰 욕하고 네티즌 싸잡아서 욕한다. 그리고 무슨 '백수정법'이니 뭐니 만든다고 게거품 물고 앞장서서 흥분하며 이번에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마치 자기들만이 정의의 사도인 양 개소리 주절거리며 자기 이득은 칼같이 챙겨가는 짓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 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을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백수정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 백홍석에게 걸었던 전화 한통 외에 다양하게 등장하는 전화 한통은 절망, 분노, 음모, 배신, 욕망 등과 연관된다. 백홍석은 술자리 도중 백수정이 집에 잘 들어갔나 확인하기 위해서 전화를 걸지만 백수정이 끝내 의식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받지 못했고 타인이 백수정의 전화로 알려온 사고소식을 듣게 됨으로써 절망하게 한다.
 
서회장이나 강동윤 등 권력자들은 전화 한 통으로 정계와 검찰 그리고 언론 등 권력자들을 조종하며 자기네들의 추악한 치부를 감추고 더러운 탐욕을 채우기 위해 온갖 배신과 음모를 꾸민다. 권력자들의 음흉하고 비열한 전화 한통으로 백수정은 끝내 살해당하고 마약중독자에 원조교제하는 불량소녀로 매도되어 손가락질 당하고 송미연을 죽음이라는 막다른 곳으로 내몬다. 도주 중인 백홍석의 위치와 신병을 신혜라에게 노출시킨 것도 전화 한통이었고, PK준 휴대폰을 입수하고 검찰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던 백홍석을 저지시킨 것도 신혜라의 전화 한통이었다.
 
강동윤도 전화 한통을 이용해 막후에서 재벌, 정치인, 법조인, 언론 등의 권력을 조종해왔지만 백홍석의 함정에 걸려 든다. 그 장소가 공교롭게도 강동윤이 힘들 때나 좋을 때나 찾아가서 의지하던 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발소였다. 강동윤은 자신의 안식처와도 같은 아지트에 숨어든 백홍석에게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았던 것인지 모든 악행을 순수히 털어놓는다. 드라마의 원제가 '아버지의 전쟁'이었다고 하는데 딸을 잃은 아버지 백홍석은 강동윤이 의지하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발소에서 강동윤을 무너뜨린다.
 
 

 

 
신혜라는 강동윤의 대권이 물건너가고 난 후에도 마지막까지 전화 한통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 진실을 왜곡하려고 한다. 하지만 치밀하게 준비한 최정우에게 막혀 꼼짝없이 PK준 연인으로 몰려 백수정 살인 미수의 범인으로 낙인찍힐 위기에 처한다. 신혜라가 이처럼 빼도박도 못하는 외통수에 몰려버린 덜컥수의 서막은 백홍석의 기자회견을 희석시키기 위해 서지수에게 자복을 권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혜라는 살아남는 방법이라 판단해서 전화 한통으로 흥정했던 것이었으나 외통수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서지수 차의 CCTV를 공개한다.

 
온갖 배신과 음모의 도구로 이용되며 은밀하게 세상을 움직이던 전화 한통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진실을 알고 분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조용히 권리를 행사한 유권자들의 투표였다. 탐욕에 물든 자들이 은밀하게 주고받는 전화 한통으로 움직이는 부당하고 불의한 세상은 진실을 알아내고 부당함에 분노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유권자들의 투표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설은 일부는 맞을지 몰라도 모두가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정치세력이나 그에 빌붙은 군상들은 늘 유권자들을 탓하며 자기네들의 책임은 회피하기에만 급급한다. 집권 철학이나 비전이 담긴 청사진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허위 또는 왜곡된 사실을 동원해 경쟁관계에 있는 정치세력 비난하며 흠집내기에만 열을 올리고 그로 인한 반사이득만을 노린다.
 
유권자들에게 객관적이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서 적절한 선택을 하도록 하지는 않고 오직 자기네만이 정의이고 상식이라 우기기만 한다. 어느 정치세력의 편인가에 따라서 정의나 상식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지 국민의 편에서의 일반적인 그것들을 말하는 정치세력은 본 적이 없다. 단지 자기네 정치세력을 편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유권자들을 욕하고 비난하는 그런 저질 정치세력이 자기네들만이 무조건 정의이고 상식이라며 편들어달라는 저급한 선동질에 놀아날 바보들은 맹종자들로 족하다.
 
똑같이 불법도청하고 불법사찰하고 기자실 폐쇄하고 농민직불금 불법수령하고 각종 이권 챙기고 다 했으면서 경쟁관계에 있는 정치세력만의 문제로 매도하며 자기네만이 절대선이라 우긴다. 같은 정책을 추진했으면서 어느 편의 정권인가에 따라서 태도가 정반대로 바뀌어 내내 어깃장만 부려놓고 오로지 권력만을 달라고 하는 무능력한 저질 정치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미친 짓을 왜 해야 하는가?
 
이런 드라마 하나를 놓고도 서로 내편 네편 갈라 이용하기 바쁜 게 정치세력이다. 정치가, 정치꾼들이 얼마나 형편없으면 국민들을 납득시킬 정견 하나 내놓지는 못한 채 고작 이런 드라마 하나에 그 수많은 의미를 애써 찾아내가면서 유권자들을 선동하고 오직 드라마에 의지하려고 하느냐 말이다. 지금이 무슨 419나 518이 필요한 상황인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언사를 동원해 대중들을 충동질하는 데는 정치세력들이 황색언론이나 막장드라마 뺨친다.
 

 
강동윤은 여러 정치인의 모습이 상당히 겹쳐져 있다. 특정 정치세력이나 그 나팔수나 앞잡이들은 견강부회하며 대중을 맹목적이 되도록 선동하는 지질한 짓은 그만두고 비전을 제시해서 정당하게 선택받으라.

 
드라마도 유권자의 투표가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슬쩍 유권자 탓을 하고 있다. 한데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일반 유권자가 실체진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언론과 방송은 각각의 이해득실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거나 허위의 사실을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는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직 유권자만을 탓하며 덜 나쁜 놈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가당찮은 소릴 하는 것은 직무유기이고 책임을 회피하는 비열한 짓이다.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더 나쁜 놈 또는 덜 나쁜 놈에 대한 상이한 평가나 판단을 내놓으면서 유권자를 혼란하게 만드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자들이 유권자 탓만 하는 것은 넌센스다.
 
억울한 피해를 당한 누군가가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치자. 그럼 과연 그 사건의 내막을 취재해서 기사화해주는 기자가 한명이라도 있을까?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그 억울함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치자. 가해자가 권력(재벌, 정치, 법조, 언론 등)에 가까운 자들이라면 해당 글은 포탈에 의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삭제되고 말 것이다.
 
올해 초 한 방송기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었다. 하지만 그 글은 신속하게 인터넷에서 모두 삭제되었고 그 피해자는 억울함을 풀었는지 가해자인 방송기자는 정당한 법적 처분과 회사차원의 징계를 받았는지 알 길은 없다. 여자 후배를 성추행했다는 그 기자가 소속된 방송사는 다름아닌 바로 드라마 '추적자'를 방송한 SBS였다. SBS는 과연 그 피해자의 억울함을 제대로 추적했고 가해자를 찾아내 정당한 처벌을 내렸을까?
 
드라마는 강동윤이 대권을 못 잡고 실형을 선고받는 판타지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시청자들이 실망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이 더 좋았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나 권력을 갖겠다는 자들이나 결국 그들 모두는 서로의 탐욕과 이기심 충족을 위해 위선자들이라는 것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 똑같은 놈들인 주제에 자기들만이 절대선이라는 가당찮은 소리로 대중을 맹목적인 추종자로 만드려는 자들을 몰아내야 한다. 하나 이미 다수의 맹목적인 추종자를 확보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을 몰아내기는 어렵겠지만 특정 정치세력의 선동질에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는 유권자가 늘어날수록 정치꾼들이 유권자를 무서워하게 되고 세상도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