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각시탈'의 결말은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만든 듯하다

 
 
 
허영만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드라마 '각시탈', 허영만 만화를 본 적은 있지만 만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각시탈이 죽었던 것 같다는 정도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해서 허영만 만화와 드라마 각시탈의 내용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게 없다.
 
한데 드라마 각시탈의 결말을 보고나니 '김구는 테러리스트'라고 정의 내리는 듯해서 썩 개운치가 않다. 드라마의 결말은 등장 인물들 간에 얽힌 애증관계를 해소하는 데에 비중을 둔 듯한데 그렇다면 드라마에 양백을 등장시킨 것이 무리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드라마상의 시대적 상황에서 김구가 과연 국내에 잠입할 수 있었겠느냐의 개연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결말로 인해 김구가 마치 테러리스트였던 것처럼 비춰질 오해의 소지가 충분한 장면이 만들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각시탈은 기무라 타로를 죽이고 키쇼카이 회장 우에노마저 죽인다. 우에노 회장 죽이는 장면은 미안한 얘기지만 가소롭다. 우에노의 수양딸인 리에의 호위무사인 가츠야마가 리에를 사랑하게 된 사적인 감정으로 우에노 회장의 명령을 불복하고 리에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긴페이와 싸운다. 그때 등장한 각시탈이 우에노의 심복 긴페이를 멋지게 죽이고 우에노를 한방에 간단히 지옥으로 보내버린다.
 
조선총독부 와다 총독을 떡주무르듯하며 일본군마저 좌지우지하던 그 무시무시했던 키쇼카이가 이처럼 황당한 해프닝으로 인해 회장마저 죽어버렸다면 이거야말로 웃기는 일 아니겠나. 회장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인 조직이었던 키쇼카이가 전직 조선 기생이었던 여인을 사랑한 호위무사가 반기를 들고 회장이 죽어나가도 방관하고 있더니 리에와 헤어지면서 채홍주란 이름을 평생 기억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엉성한 조직인 키쇼카이가 동척과 식산을 통해 조선 양민들의 고혈을 빨고 독립투사들을 무수히 죽여버렸던 무시무시한 조직이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특히 우에노 회장을 각시탈이 처단한다는 장면은 아무리 극적인 재미를 위한 장면이라고는 하나 어처구니 없다. 회장이 죽고 조선 여인을 사랑한 조직원이 다 떠남으로써 조직이 와해됐어도 또 다른 키쇼카이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이 오늘날 바다 건너에서 현대판 우에노들로 되살아나 망언을 쏟아내며 설쳐대고 있다는 얘기로 전환시키기엔 드라마에 등장했었던 제반 상황들은 너무나도 엉성하지 않은가.
 
한편 기무라 슌지는 이강토가 목단과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환하게 웃는 목단을 보고 허탈하지만 이내 질투심에 눈이 뒤집혀 이강토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다. 기무라 슌지가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먼저 발견한 목단이 몸을 날려 이강토를 보호하려다가 기무라 슌지가 쏜 총을 맞고 쓰러진다. 목단이 끝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무라 슌지는 패닉에 빠진다.
 


 
그리고 기무라 슌지는 이강토가 찾아올 것을 예상하고 방안에 앉아 장전한 권총과 차(茶)를 준비해놓고 기다린다. 기무라 슌지의 예상대로 우에노 회장을 죽인 이강토는 기무라 슌지를 찾아가는데 기무라 슌지는 차를 권하며 이강토와 목단의 결혼식 사진을 현상해서 이강토에게 전해준다. 이강토는 끝을 내자고 하고 기무라 슌지는 먼저 나가 있으라 하고는 준비해 둔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

 
사실 드라마 각시탈의 내용은 이 장면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인 이강토와 일본인 기무라 슌지 사이의 우정 그리고 그들이 각각의 처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조선인 목단을 사랑하는 방식, 목단의 추억 속 도련님에 대한 일편단심과 고맙지만 왜놈일 뿐인 기무라 슌지에 대한 감정, 이처럼 주인공들의 사랑과 우정을 둘러싼 인간적인 갈등과 고뇌 등이 키쇼카이와 조선총독부로 상징되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유린되고 피폐해져 가는 불가피한 시대적 상황, 드라마의 시작점과 끝점을 여기에 두었다면 불필요하게 양백과 동진을 등장시켜서 주제를 무겁게 하면서 쓸데없는 장면들을 끼워넣을 필요는 없었다.
 
기무라 슌지는 소학교에서 조선 아이들을 가르치며 목단을 짝사랑하게 된다. 한데 그의 형 기무라 켄지가 각시탈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제국 경찰이 되어 각시탈을 잡는다는 명분하에 키쇼카이 회원으로도 가입해 수많은 조선인들을 괴롭히는 악마로 변신한다. 그랬던 기무라 슌지가 목단을 죽이는 돌발상황이 벌어지자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기무라 슌지는 그의 형 기무라 켄지가 이강토의 어머니와 형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로 인한 연민이나 죄책감 같은 것도 없었고 오히려 이강토의 각시탈을 벗기기 위해 비열한 수작을 한다. 게다가 이번엔 그의 아버지 기무라 타로마저 이강토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단지 사랑하는 조선 여인 하나 때문에 자기의 삶을 마감하고 이강토를 살려준다면 도대체 이 드라마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리아리하기만 하다.
 
물론 키쇼카이와 일본군대 그리고 조선총독부 등으로 상징되는 일본 제국주의와 일본인은 구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기무라 슌지는 그렇게 구별해야 할 일본인으로 봐주기는 어렵다. 기무라 슌지는 제국 경찰이었고 키쇼카이 회원이었다. 무슨 짓을 해서든 각시탈만 처단하면 다시 예전처럼 소학교로 돌아가 조선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 수 있다고 보는 몽상적 싸이코라는 캐릭터라면 모를까 드라마의 결말은 작가가 어느 지점에선가 지향점을 잃어버렸다는 것으로서 슌지의 최후는 매우 허접스럽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무장한 동진 결사대가 앞장서고 각시탈과 각시탈을 쓴 조선 민중들이 뒤따르며 종로경찰서로 쳐들어가 폭발물을 터뜨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양백이 이러한 계획을 갖고 국내에 잠임해 동진을 만나서 협의하고 동진이 그에 동의함으로써 실행하게 되었다는 설정인데 이 장면이 마치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만들어버린 듯한 쓸데없는 장면이었다고 본다. 특히 이 장면은 드라마에서 양백이 언급했던 국내진공작전을 연상시키기에 헛발질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물론 드라마상의 시대적 상황보다 훨씬 이전에(드라마에서 담사리의 입을 통해 잠깐 소개됐던 동척과 식산 폭탄 투척 사건보다 이전) 홀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열사가 있기는 했었으나 그 사건을 극화하려고 한 거였다면 이것은 배열을 잘못한 것이다. 주인공들의 우정과 사랑 얘기를 하면서 여러가지 사건을 나열하려다 보니 이 장면에 이르러서 중구난방이 된 듯하다. 이러한 작가의 욕심이 양백과 동진을 등장시킴으로써 개연성 떨어지는 장면들도 많아지게 되었다고 하겠다.

 
임정이 계획했으나 갑작스런 해방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국내진공작전은 대규모 전면전이 아니라 미군이 한반도를 점령할 때를 대비한 광복군과 미국 OSS의 소규모 비밀작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국내진공작전이 실행되었더라도 드라마에서와 같은 장면이 나올 여지는 없었다는 얘기다.
 
한편 그 즈음에 조선에서는 여운형이 일본의 패망이 임박했음을 예상하고 해방되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건국동맹을 조직해 세력을 확장하며 해외의 독립운동 단체들과 연대해나간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로 발전하게 되는 건국동맹에는 후방교란을 위한 목적으로 군사훈련을 받는 조직들도 있었다. 임정이 건국동맹과 연대를 시도했던 것 같으나 건국동맹이 김구의 지시를 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 임정 법통론을 부정하면 고집스럽게 적으로 간주하고 적대시했던 김구가 그 시점에 여운형과 만나 드라마와 같은 작전을 지시하다시피하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한 OSS 훈련을 받은 김구의 경호실장이 국내에 잠입했다가 일경에 검거되었던 그 시기에 김구가 국내에 잠입해 계획대로 일을 마치고 상해로 유유히 빠져나가는 상황은 아무리 드라마라도 불가능이다. 드라마에서 양백을 등장시켜 동진과 만나 국내진공작전을 논의한다는 설정은 역사상으로도 드라마 전개상으로도 불필요했고 무의미했으며 동진에게 무장 테러를 지시했다는 설정에 이르러서는 김구를 온전한 테러리스트로 만들어버린 듯한 쓸데없는 것이었다.
 
물론 테러리즘의 정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볼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의견도 없지는 않으나 그렇게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테러리즘은 주로 국제적 차원에서 대응하는 국제법의 대상으로 보아 개념을 정의하는 측면이 강하다. 즉 테러리즘을 국제법상 범죄행위로 보고 국제적 차원에서 테러행위를 처벌 및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테러리즘을 정의하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 국제연맹에서 개최된 '테러리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회의'에서도 테러리즘을 '한 국가에 대하여 직접적인 범죄행위를 가하거나, 일반인이나 군중들의 마음속에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규정했었다. 이렇게 봤을 경우 강제로 국권을 침탈 당한 후 국권회복을 위해 투쟁했던 독립군의 역사는 모두 테러리스트 단체의 역사로 국제법상 제재를 받아야 하는 불법단체가 된다. 테러리즘의 정의를 전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적으로 김구를 테러리스트라고 무분별하게 언급해서는 안 된다.
 

 
드라마의 결말은 이강토와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해하던 목단이 이강토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기무라 슌지를 발견했을 때의 복잡미묘한 감정의 변화 그 한장면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본다. 굳이 더 극적인 장면이 필요했다면 조선 민중이 각시탈을 쓰고 태극기를 흔들며 그 사이에 각시탈이 끼어 있는 그 장면에서 끝을 내는 게 좋았다. 담사리가 자살하기 전에 기무라 슌지에게 "자네가 보기엔 양백과 동진, 각시탈만 잡으면 이 술래잡기가 끝날 것 같나? 조선 땅에는 수많은 양백이 있고 동진이 있고 모래사장의 모래알 같이 많은 각시탈이 있다네"라고 말을 보여주는 것,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이 말보다 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싶고 조선민중의 저항을 상징하는 각시탈의 최선의 결말이었을 것이다.

 
결말을 보면서 문득 "요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는 조선땅에 살던 열두살의 어린 일본인 소녀가 일본의 패망 후 일본으로 탈출하면서 겪었던 기억과 일본에 돌아가서 패망한 일본땅의 참상과 거기서 살아낸 끔찍한 기억을 서술한 책으로서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 여성이 쓴 자전적 수기다. 1986년 미국에서 발표된 이 책은 미국의 교과과정 필독서로 선정되기도 했었으나 중국과 일본에서는 출판되지 못했는데 중국에서는 강한 반일 감정을 이유로, 일본에서는 전쟁을 도발한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고 일본의 전쟁만행을 사실적으로 고발하고 있다는 이유로 출판을 금지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2005년 이 책이 출판되었고 호의적인 평이 이어졌다. 그러나 미국의 초등학교 교재로 채택된 이 책에 한국인이 요코 일행을 강간하려 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을 받으며 이 책은 한국에서 사라져버리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신상과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는 논란도 일긴 했으나 논란의 대부분은 사실로 증명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한국계 학부모들이 반발함으로써 교재 사용을 금지시키게 됨으로써 논란도 끝이 났다.
 
책에 한국인은 사악함과 친절함을 보여주는 이중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한국인들이 요코 일행이나 일본인 여성을 강간하려 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물론 일부의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보복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나 그게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해방 당시 한국인들은 해방이 되고서도 며칠이나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고 태극기를 흔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해방이 된 지도 모른 채 해방을 맞이했다. 게다가 일본군은 패전 후에도 미군에게 무장해제 당하기 전까지 한반도의 치안을 담당했었다고 한다.
 
이처럼 해방된 사실도 모르고 무장한 일본군들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일본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떠나면서 한국인에게 집을 잘 관리해달라고 부탁하고 떠나기까지 했다는 증언도 있다. 하나 극한의 상황 속에서 탈출해야 했던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참상은 두렵고 끔찍한 기억으로 크게 자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해서 이 책을 쓴 저자를 비난하는 것은 무리하지 않나 생각되고 역사에 대한 균형감각이나 피해국인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결여된 상태에서 공교육 교재로 채택한 미국의 관련 기관들은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사실 '요코 이야기'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모두에게 불편한 이야기다.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했던 한국이 해방 후 잠깐동안 일부의 범죄행위가 묘사됨으로써 피해국을 도리어 가해국으로 둔갑시킨 채 가해국의 국민이 피해국을 탈출함으로써 겪은 경험이 어린 소녀의 용기로 포장되었다. 가해국인 일본으로서는 자국 국민의 생생한 실화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이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미국으로서는 종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는 하나 원폭 투하라는 반인류적인 방법으로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했고 그로 인해 겪는 끔찍한 참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일본은 책 출판을 금지시켰고 미국은 공교육 교재로 활용했다. 역사와 한국에 대한 미국의 균형 감각이 부족한 것은 아쉽지만 이것은 미국과 일본의 중대한 차이점이다.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패전 후 보여주는 중대한 차이점과는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한데 이 책으로 인해 불편해 해야 할 이유가 없는 중국은 단지 강한 반일 감정을 이유로 이 책의 출판을 금지시켰다. 반대로 한국은 호평을 쏟아내며 출판했다가 뒤늦게 역사적 맥락을 생략한 채 한국인의 만행이 언급되었다는 것과 미국 공교육 교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수선을 떨며 책 출판 금지와 공교육 교재 퇴출을 관철시켰다.
 
이는 일본과 미국 내에서 불편함을 가진 세력이 하고 싶었을 일을 한국이 대신 나서서 해준 꼴이 된 듯한데 그 태도에 신중성과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면은 반성해봐야 한다. 드라마 각시탈의 경우도 쓸데없는 장면들을 삽입함으로써 일시적인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김구는 테러리스트가 되었고 '요코 이야기'에 나온 일본인에 실제 복수했던 한국인들이 상당히 많았었다고 미루어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기에 말이다.
 
여담을 첨언하자면 최근 독도 문제로 시끄러운데 이와 관련해서 일반 일본인들을 싸잡아 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본다. 특히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에게 독도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변을 강요하는 행위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본에 귀화한 추성훈에게 일본인들이 한일간의 민감한 현안이 생길 때마다 답변을 강요하고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야만적인 행위다. 이게 각시탈 같은 드라마 만들어 일시적 대리 만족에 그치는 것보다 일본을 정신적으로도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