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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누이뎐' 루즈함속에 주목할 장면들

드라마 '여우누이뎐' 이번주 방송은 스토리 전개가 조금 느슨해진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느슨한 전개속에 간과해서는 안 될 장면들이 있다.

드라마 '여우누이뎐'의 가장 큰 시청 포인트는 과연 윤두수가 만신이 일러 준 비방을 초옥과 양부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발설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지난주에 너무나도 간단하게 이것을 터뜨려 버렸다. 절대로 발설하면 안 된다는 만신의 경고를 어긴 비방은 이미 소용이 없게 되었는데 작가는 향후 스토리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가 정말 궁금했다. 이 문제는 만신이 또 다른 비방을 해준다는 것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는데 연이가 연이의 수의를 짓게 한다는 것이다. 양부인은 연이에게 초옥의 수의를 지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결국 그 수의는 초옥이 아닌 연이가 입게 될 수의인 셈이다.

양부인의 사주를 받은 오서방은 연이를 왈패들에게 넘기고 자루에 담겨 물 속에 빠진 연이는 구미호로 변해 간신히 빠져 나오지만 그들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퇴마사가 끼어 들게 되고 퇴마사는 연이의 어미인 구미호에게 안내하라고 한다. 퇴마사에게서 자기가 뒤집어쓰고 괴물로 변했던 가루를 본 연이는 위험을 직감하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 추격전은 상당히 루즈하고 지루했는데 그 끝에 재미있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이를 쫓아 온 퇴마사는 마침내 연이에게 칼을 겨누는데 이 때 윤두수가 가로막아 선다. 뒤이어 천우도 합세해서 퇴마사와 필사적인 싸움을 시작한다. 퇴마사와 인간의 싸움이라, 그것도 요기(妖氣)가 있는 연이를 지키기 위해 인간이 대신 퇴마사와 싸움을 벌인다니 참 재미있는 상상이다.



윤두수와 천우는 연이를 구하기 위해 퇴마사와 싸움을 벌이지만 둘의 의도는 각각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윤두수는 딸 초옥이의 생명을 살릴 제물이 연이기에 구하려는 것이라면 천우는 구미호와 그 딸인 연이에 대한 사랑으로 연이를 지키려는 것이다. 윤두수의 경우는 자기의 딸을 살리기 위해 자기가 사랑하는 구미호의 딸인 연이의 생명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혼란스럽고 방황하지만 결국은 만신의 비방을 따르기로 했는데 조금씩 연이의 착하고 고운 심성을 확인하게 되면서 다른 방도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끝내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한다면 결국엔 연이를 희생시키고서라도 초옥의 생명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에게 내재된 음흉한 이중성이다.

양부인은 오서방에게 연이를 멀리 데리고 나가서 죽이라고 시키지만 만신이 보낸 비방을 발견하고 당장 찾아오라고 한다. 마침내 연이가 살아서 돌아오자 연이를 붙잡고 살갑게 대하는데 연이가 살아돌아와서가 아니라 초옥의 생명을 살릴 제물이 살아돌아와서다. 그리고는 이미 소용이 없게 된 만신의 비방을 연이의 베개속에 몰래 넣어둔다. 만신이 재차 보내준 비방을 본 양부인은 연이를 찾아가 초옥을 위해 수의를 만들어달라고 간청한다. 그 수의는 결국 연이가 입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양부인은 구미호보다 더 구미호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윤두수는 양부인을 만류하려고 해보지만 윤두수 역시도 양부인의 의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부인과 윤두수는 인간의 어리석음, 간악함, 나약함 그리고 이중성을 대변하고 있다.

구미호는 연이의 베개속에서 만신의 비방을 발견하고 양부인을 찾아 가 구미호로 변했을때보다 더 섬뜩하게 경고한다. "이 천벌받을 년! 내 당장이라도 니 년을 죽이고 싶지만, 내 딸 연이를 살려 준 나으리를 봐서라도 이번 한번만은 살려주마." 요물인 구미호가 인간에게 천벌받을 년이라고 호통을 친다는 작가의 상상은 얼마나 통쾌한가. 그것도 신분의 차별이 엄격했던 시대에 첩실인 구미호가 본부인인 양부인에게 저주에 가까운 호통을 친다는 상상이라니.

양부인은 연이를 죽이려는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제공자였던 가짜 도사를 붙잡아들이고 그를 사주했던 윤두수의 애첩인 계향을 부엌으로 끌고 와 몸종을 시켜 계향에게 사약을 먹이라고 명한다. 물론 그것은 사약이 아니라 총명탕이었고 과거에 사대부 가문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겠으나 정부인이 첩에게 사약을 내려서 죽일수도 있다는 발상이 또 재미있다.

조현감은 윤두수가 갑자년월일에 태어난 여자아이를 초옥의 몸종으로 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의문을 품는다. 윤두수의 집으로 찾아가 연이를 만난 조현감은 연이가 갑자년월일에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 때 양부인이 나타나자 연이에게 귓속말로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관아에 알리면 도와주겠다'고 한다. 조현감의 속셈은 연이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겠다는게 아니다. 바로 윤두수를 궁지로 몰아 넣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스토리 전개가 약간 루즈한듯했으나 등장인물들의 애증은 점점 더 깊어졌다. 정규를 사랑하게 된 연이와 그런 연이를 사랑하게 된 정규, 이들의 사랑은 뜻밖에도 물에 빠진 정규를 구하기 위해 구미호의 모습으로 돌아온 연이를 정규가 보게 됨으로써 위기에 빠진다. 한편 연이를 괴롭히고 미워하던 계향의 아들 윤충일은 어느 날 초옥의 옷을 입은 연이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는데 그런 연이의 마음은 이미 정규를 향해 있음을 알게 되고는 답답하기만 하고 정규가 미워지기까지 한다.

윤두수는 초옥을 살리기 위해 연이를 보살피지만 조금씩 연이의 착하고 고운 심성을 알게 되고는 만신을 찾아가 초옥과 연이를 모두 살릴 방도를 내놓으라고 한다. 만신의 비방대로 연이가 지어놓은 수의를 태우고 만새로운 방도를 찾아 나서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윤두수는 과연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짓을 하고야 말 것인가. 양부인은 어떻게든 연이를 제물로 삼기 위해 구미호보다 더 구미호같은 얼굴로 연이에게 어르고 등골 빼기를 반복한다. 얽히고 설키며 점점 더 깊어져만 가는 등장인물들간의 애증을 작가는 과연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기대된다.

만신은 연이 앞에 나타나 연이가 만드는 수의를 보고 연이가 입으려면 너무 크다고 말을 하고 엽전을 건넨다. 연이를 확실히 제물로 만들기 위해 사정을 염탐하러 온듯한데 엽전은 저승길 노잣돈의 용도로 건네준 것이 아니었을까. 연이와 초옥을 모두 살릴 방도를 찾으라는 윤두수에게 '벌써 연이의 아버지가 된 것이냐'고 묻는 만신은 비방일에 맞추어 마침내 관에 못질을 하기 시작한다. 만신은 도대체 누구이길래 구미호에게서 그리고 퇴마사에게서 요기를 느낄 수 있고 이 모든 정황을 낱낱이 꿰고 있는 것일까. 만신이 곧 작가인가 아니면 작가가 곧 만신인가.

작가는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 불가피했다고 항변하려고 하겠지만 추격장면은 약간 루즈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역시 작가의 신선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 전개였고 숨겨진 의미와 재미도 충분했으며 여전히 다음회를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이 드라마 '여우누이뎐'을 보는 내내 나는 일전에 '환경스페셜 - 생물들의 정글, 석호의 위기'편에서 보았던 작은 물떼새가 떠오른다. 물가에서 새끼를 부화한 작은 물떼새 어미는 위험을 인지하게 되면 새끼를 남겨둔 채 날갯죽지가 부러진 흉내를 내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위험을 자기 쪽으로 유인한다. 이처럼 모정의 크기는 미물과 인간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 '여우누이뎐'의 큰 주제와 결말도 이 정도선에서 결정되어질 것인지 아니면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잠시도 한 눈을 팔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