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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김탁구' 개코, 김탁구가 실명한다는 복선?

드라마 '제빵왕김탁구'는 김탁구의 선천적인 후각을 부각시키기 위해 상당히 과도한 장면까지 등장시켰었다. 저렇게까지 무리한 설정을 통해 작가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궁금했었는데 이제 그 단초를 풀어 놓은 것 같다.

김탁구가 만든 빵을 굽기 위해 진구가 오븐에 넣고 불을 켜는 순간에 김탁구는 가스 냄새를 맡고 제지하려고 몸을 날린다. 그러나 이미 늦었고 폭발하게 됨으로써 김탁구는 화상을 입어 실명의 위기에 처한다. 큰 병원에 가서 진료하는게 좋겠다는 의사의 권유를 들은 양인목과 양미순은 김탁구를 데리고 큰 병원에 가려고 하지만 김탁구는 살아오면서 한번도 치료를 받지 않았어도 별일 없었고 이번에도 그럴거라며 완강히 거절한다.

팔봉제빵점으로 돌아온 김탁구는 밤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역전다방에 맡겨 놓았다가 팔봉제빵점에 머무르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찾아왔던 가방을 열고 어릴 적 엄마와 찍었던 사진을 꺼내 본다. 김탁구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평생을 보고 살았을 사진을 마치 직접 들여다보기라도 하듯이 쓰다듬다가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는 그 가방을 어깨에 메고 더듬거리며 밖으로 나서고 팔봉제빵점 식구들이 이를 지켜본다. 그렇게 팔봉제빵점을 떠나는줄 알았던 김탁구는 제빵실로 들어가 밀가루 반죽을 꺼내 "얘들아, 잘 있었냐?"고 인사한 후 빵을 만들기 시작한다.

김탁구는 빵을 만들면서 팔봉선생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제가요, 그 분의 빵 만드는 모습을 본 건 딱 한 번 뿐이었는데 말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근사해 보이던지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이걸 지난 12년 동안 손버릇처럼 만들어왔다는 얘기냐? 빵이 죽도록 싫었다면서?" "제가 만든 것은 빵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과의 추억이었습니다."



김탁구는 그렇게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살았던 빵에 대한 추억을 털어낸 후 팔봉제빵점을 완전히 떠날 생각인 것이다. 그렇게 빵을 다 만들고 난 후 김탁구는 '이제 정말 됐다'며 제빵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작별인사를 한다. 그 때 양인목이 진구를 시켜 오븐을 예열하라 시키고 '빵을 만드는 것은 구워야 끝이 난다'며 미순에게 빵을 구우라고 한다. 다 구워진 빵을 놓고 제빵점 식구들에게 평을 하라고 하지만 모두들 혹평하게 되는데 양인목은 일단 눈을 치료한 후에 두 눈 부릅뜨고 본격적으로 빵을 만들어보라고 권유한다. 얼떨떨해하는 김탁구에게 양인목은 '그냥 잘 부탁드립니다'라고만 하면 된다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마치 신유경과 김탁구의 엇갈리는 운명인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 이 드라마 최고의 명장면 중에 하나로 꼽고 싶다. 김탁구가 더듬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신유경이 김탁구에게 선물할 모자를 들고 팔봉제빵점으로 찾아왔으나 구마준과의 약속 때문에 차마 불러내지는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돌아선다. 그 순간에 김탁구가 제빵실에 들어서면서 불을 켜고 불이 켜지는 것을 본 신유경이 다시 돌아서 팔봉제빵점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몰래 팔봉제빵점 안으로 들어와 김탁구와 팔봉제빵점 식구들이 하는 말들을 모두 듣게 된다. 이 장면에 삽입된 이승철의 '그 사람'이라는 절절한 노래가 시청자의 가슴을 후벼판다.



이 때 밖에서 모든 상황을 가늠해보고 있던 팔봉선생은 독백한다. "탁구야, 오늘을 꼭 기억해다오." 팔봉선생의 이 독백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눈으로 보지 않고도 빵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김탁구의 눈은 결국 보이지 않게 된다는 복선을 깔아놓은 것은 아닐까?

김미순과 닥터윤은 어떤 방법으로 거성가의 서인숙에게 복수할 것인지가 상당히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그 전모가 밝혀졌다. 닥터윤은 나사장을 통해 거성의 지분을 확보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거성은 프랑스에서 새롭게 기술을 도입하면서 전국에 있는 공장시스템을 새로 완전히 바꿀 계획중이라 자금확보가 필요해졌는데 김미순과 닥터윤은 여기에 투자를 하는 대신 지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렇게해서 김미순과 닥터윤이 원하는 지분을 모두 확보하기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에서 3년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닥터윤의 뒤에서 나사장과 닥터윤의 대화를 다 들은 김미순이 말한다. "2년에서 3년이라, 그 때까지 제 눈이 버텨줄라는가 모르겠네예." 아마도 김미순은 사고로 눈을 다쳤고 닥터윤이 애를 썼지만 결국 완전히 치료하지는 못했던 모양이고 결국은 실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탁구는 양인목의 격려에 힘을 얻어 눈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간다. 이 때 김탁구의 엄마 김미순도 닥터윤과 함께 병원에 들어서고 김탁구의 옆자리에 앉아 쳐다보기까지 한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김탁구는 엄마를 보지 못하고 김미순도 안대를 한 김탁구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렇게 둘은 12년 동안이나 오매불망 찾아헤맸던 엄마와 아들을 서로가 알아보지 못한 채 또 다시 엇갈리게 된다.

병원에서 돌아 온 김탁구는 마침내 앞을 보게 되는데 그는 양인목의 말처럼 '두 눈 부릅뜨고' 빵을 만들 수 있을까? 팔봉선생의 독백, 양인목의 말, 김미순의 실명위기 그리고 실명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선천적인 후각을 가진 김탁구. 작가는 이러한 단서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러한 단서들을 조합해서 한가지 추정을 해보려고 한다. 김미순과 김탁구는 짧으면 1년 길면 2년에서 3년 정도가 지나야 상봉하게 될 것이고 이 자리에서 엄마의 실명사실을 알게 된 김탁구는 자신의 눈을 엄마에게 주려고 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쪽이나 양쪽 눈을 엄마에게 내어준 김탁구는 선천적인 후각과 감각에 의지해 진정한 제빵왕에 오르게 된다는 얘기일수도 있다. 드라마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과도한 장면을 삽입하면서까지 김탁구의 '개코'를 강조하려던 작가의 의중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신유경은 준비해 온 김탁구에게 줄 선물인 모자를 양미순에게 건네주고 돌아가고 이를 건네받은 김탁구가 내용물을 확인하는데 "너한테 이 모자가 행운을 가져다 줄거야"라는 메모와 함께 '제빵왕 김탁구'라 새겨넣은 모자가 들어있다. 신유경은 어릴 때 거리에서 구걸하는 가족을 보고 그 가장에게 가진 돈 모두를 건네주고 가장으로부터 모자를 선물받은 후 행운의 모자라 여기며 애지중지 끼고 다닌다. 그리고 김탁구에게도 똑같이 행운의 모자를 선물한 것이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작가에게 모자는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이 모자는 왕관을 상징하려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김탁구는 제빵왕이 되어 왕관을 쓰게 될텐데 신유경은 무엇으로 왕관을 쓰게 될 것인지 이것도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시청포인트 중에 하나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