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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SPORTS

이동국을 욕하지 마라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웠던 토요일 밤이었다. 이길 수도 있었던, 오히려 내용면에서는 이겼던 경기였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하지만 축구는 골로 승부를 가르는 경기, 그런 맛에 축구란 경기가 재미있고 축구에 열광하는 것 아니겠나. 비록 이번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정말 잘 했다.

"아이고, 차라리 골대를 넘어가버리지." 박주영의 프리킥이 골 포스트에 맞는 순간 내가 내질렀던 말이다. '골대를 맞추는 팀이 경기에 진다'는 골대 징크스, 징크스란게 별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그래서 징크스에 울고 웃는 것 아니겠나.

경기 초반의 다소 허망한 실점, 나는 내 노트북이 떠올랐다. 낡은 노턴이 불안하고 불편해 알약을 다운받아 바이러스 검사를 해 본 후에 둘 중에서 선택하려고 했었는데 '설마 그 동안에 무슨 일 생기겠나' 싶어서 노턴을 삭제하지 않고 알약을 다운받았다. 그런데 설마 그 동안에 바이러스에 걸려버렸고 결국 노트북을 포맷하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실점한 장면은 마치 이런 것과 유사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볼에 시선을 빼앗겨 뒤에서 들어가는 선수를 놓친 수비수와 판단착오로 볼을 책임지지 못한 골키퍼, 서로가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미루며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으로 보였다. 끝까지 볼에 집착해서 골을 만들어 낸 우루과이의 수아레즈 선수가 잘 했다.



실점한 후 한국의 볼 점유율이 높았음에도 여전히 불안했다. 볼을 점유하는 시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슛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드필더 디에고 페레즈가 박지성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순식간에 수비수 2~3명이 한국 선수들을 에워싸는 우루과이의 협력수비가 돋보이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전반 후반을 넘어가면서 차츰 한국팀의 공격이 슛으로 이어지기 시작했고 후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전반과는 달리 바람을 맞으며 경기해야 되는데 이것보다는 오히려 비가 내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공격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한국팀 선수들의 체력이 관건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이동국이 교체 투입되었다. 한국팀에게는 이동국의 포스트 플레이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교체 타이밍도 적절하다고 보았다. 이 날 김재성의 움직임이 좋다고 보았기에 기성용과의 교체가 더 낫지 않은가 생각했었으나 기성용의 킥이 이청용의 골로 이어졌으니 역시 현장에서 보는 감독의 판단이 정확하다. 감독의 전술을 비판할 수는 있겠으나 가정만으로 도가 넘는 비난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교체 투입된 이동국의 첫 번째 볼 터치, "동국아, 니가 쳤어야지. 이젠 마지막 월드컵이야. 자신감을 가져." TV를 보는 관전자인 내가 이렇게 소리쳤을 정도로 이동국도 많이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경기장에 적응이 된 후부터 이동국의 포스트 플레이는 좋았다. 수비수와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면서 제공권을 따냈고 한국 선수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며 공격의 활로를 연 이동국의 플레이는 나무랄 데 없었다. 이동국이 한 게 없다고도 하는데 이는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인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공격수는 '골'로 말해야 되고 사람들은 '골'로만 기억할 뿐이니 어느 정도의 비난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는게 문제다.

이청용의 만회골로 동점을 만든 후 우루과이의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수비수를 늘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공격에 집중했던 한국팀 선수들이 이미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던 것 같다. 골 에어리어에서 클리어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코너킥이 반복될 때는 참 불안했었는데 결국 현실이 되었다. "정우야, 한 번에 먹으면 안 돼"라고 소리를 쳤지만 이미 체력이 많이 떨어졌을테니 역부족이었다. 그 한순간의 기회를 골로 연결시킨 우루과이의 수아레즈, 비록 적이지만 정말 좋은 플레이였다.

"동국아, 이 자식아. 그걸 놓치냐." 운명의 순간, FIFA도 '가장 기억해야 할 순간'으로 선정했다는 그 순간 내가 내질렀던 말이다.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이었다. 골이 되었다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갈 수도 있었다는 안타까움보다는 이동국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었다.



2002년엔 히딩크호의 엔트리에서 탈락되어, 2006년엔 부상으로 인해 경기장이 아닌 TV로만 경기를 지켜봐야 했던 이동국이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이었을까. 그렇게 홀로 절치부심하며 수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외롭게 버텨왔던 그 순간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음에도 이를 살리지 못한 이동국의 안타까움은 얼마나 컸을까. 선수로서는 마지막일 수도 있는 월드컵 무대에서 그 동안의 서러움을 한 번에 날릴 수 있는 그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이동국은 아마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이런 걸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는 걸까. 이번에도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당한 부상이 대표팀 탈락으로 이어질 정도였더라면, 월드컵 경기 내내 벤치만 지켰더라면, 부상을 당하지 않아 월드컵 전 경기를 뛰었더라면, 차라리 그런 천금같은 기회가 이동국에게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운명의 장난 치고는 정말 너무도 잔인하다. '월드컵의 신(神)'이 이동국을 시샘했던 것일까, 그래서 이동국에게 티켓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왜 이동국이 이렇게까지 심하게 욕을 먹는지 모르겠다. 이동국을 욕하는 사람들에겐 짧은 한순간에 불과하지만 이동국에겐 12년이란 기간을 홀로 외롭게 수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버텨왔던 그런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이동국보다 더 안타깝고 각골통한(刻骨痛恨)인 사람은 없다. 이제 월드컵 무대에서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고 허무하고 쓸쓸하게 돌아서야 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고 생채기를 헤집어 소금을 뿌리는 잔인한 짓들은 제3자가 봐도 정말 불편하다.

축구 경기를 하다보면 공격수가 그런 골 찬스를 놓치는 일은 허다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박주영도 많은 골 찬스를 놓쳤고 프리킥 골로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한국팀에게 패배를 안겨 준 수아레즈도 한국과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쳤다. 가정을 전제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만약 이동국이 이번 월드컵에서 전 경기를 뛰었더라면 몇 골은 넣었을 것이다. 12년을 기다린 축구 선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40여분, 그것만 보고서 목불인견의 욕을 배설하는 것은 정말로 보기 흉하다.



이제 월드컵 무대에서 이동국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이도 나이지만 이동국에게 배설하는 욕설을 대신 감내하면서까지 그를 대표팀에 발탁할 감독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 중에 하나였던 이동국이 끝내 '비운의 스트라이커'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이렇게 허무하고 쓸쓸하게 월드컵 무대에서 퇴장해야 된다는 사실이 또 안타깝다. 이동국, 그가 너무 상처 받지 않고 하루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그라운드에서 좋은 활약을 해주었으면 한다.

K 리그에서 뛴다고 국내용이라 비아냥거리는 것은 한국 축구의 현실을 모르는 소리일 뿐이니 조금도 개의할 필요가 없다. K 리그가 살지 않으면 한국 축구도 발전하기 힘들다. K 리그를 무시하면서 어떻게 좋은 선수가 나오길 바라고 한국 축구가 세계 정상의 수준에 오르길 바란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길 진정으로 바란다면 실수한 선수들을 욕하고 국내용이라 비아냥거릴게 아니라 티켓을 사서 K 리그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달려가는게 맞을 것이다.

월드컵 8강 진출이 좌절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가장 좋은 경기를 펼쳤고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 아쉬움은 더 크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특정 선수를 눈살 찌푸려질 정도로 비난하는 것으로 달래려는 것은 대단히 비겁하다. 한국팀 경기가 끝나니까 더 이상 월드컵을 안 본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축구 경기를 본 게 아니었던 것이고 진정한 축구팬은 아니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