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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SPORTS

아까운 일본, 성급했던 구로다(黑田)氏

밤에 끝난 월드컵 16강 경기에서 일본이 파라과이와 승부차기 끝에 패함으로써 일본도 월드컵 8강 진출은 실패했다. 이로써 오카다 매직도 끝이 났다. 일본이나 파라과이나 양팀 모두 기대 이하의 경기력으로 지지부진한 경기를 했다. 일본은 슛이 골대를 맞추는 불운도 있었지만 이를 '골대징크스'라고 봐주기도 어려운게 파라과이가 시도했던 대부분의 슛이 골키퍼 정면으로 가는 불운이 더 많았다.

파라과이의 이런 불운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경기운이 오히려 일본에 있는 것 같았고 승부차기까지 끌고 간다면 일본이 승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지만 파라과이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보다 승리에 대한 열망이 더 강했던 모양이고 그 순간 경기운이 파라과이로 기울었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운은 일본에 있었던 것 같은데 차라리 일본이 좀 더 공격적으로 나왔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일본도 나름대로는 선전했고 뼈 아픈 승부차기 실축 하나로 아깝게 8강 진출에 실패하게 되었다.

일본이 월드컵 16강에 오르기는 했지만 일본의 경기력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일본이 잘 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상대팀들의 경기력이 안 좋았던 탓에 일본이 16강에 올랐던 것 같다. 나는 일본의 경기를 보면서 유독 일본과 경기하는 상대팀들의 경기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마도 상대팀들이 일본을 1승 상대로 너무 쉽게 생각했고, 그래서 대비를 제대로 못한게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수준 이하의 졸전 끝에 패한 카메룬이 그렇고, 실망스러운 경기운영 끝에 간신히 승을 챙긴 네덜란드가 그렇고,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로 수준 미달의 경기를 했던 덴마크가 그렇다. 카메룬은 첫 경기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봐주더라도 덴마크의 경기를 보고는 정말 화가 났다. 덴마크가 일본에 졌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수준 떨어지는 경기를 했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 경기를 봤다면 입장권을 환불해달라고 어깃장을 부리고 싶을 정도였다. 파라과이의 경우도 조별 예선 경기를 보면 전력이 탄탄해 보였는데 일본과의 16강전에서는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졸전 끝에 승부차기로 간신히 승리했다.

그래도 일본의 수비조직력은 은근히 끈끈한데가 있었고 이런게 상대팀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한다. 오카다 일본팀 감독의 수비전술을 보면 경기에 이기는 것 보다는 지지 않는데 초점이 있는 것 같았고 어쩌면 이게 소위 '오카다 매직'의 실체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어쨌거나 일본 선수들이 월드컵 무대에서 나름대로 선전했었는데 경기 내용과 성적을 보면 '오카다 매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국가 대항전에서 일본이 경기를 한다면 이상하게도 양면성을 갖고 보게 된다. 일본이 지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웃 나라인데 이겨도 괜찮다는 생각, 일본이 지게 된다면 잘 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아쉽기도 하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일본이라는 나라, 참 아이러니하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툭하면 망언들을 쏟아 내 안티로 돌아서게 만드니 말이다.

사실 이번 월드컵에서 일본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가졌었으나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인 구로다(黒田)氏의 글로 인해 일본이 예선 탈락하기를 바라며 덴마크를 응원했었고 16강전에서는 내심 파라과이가 이겨주기를 바랬다. 한국이 첫 원정 16강을 달성하던 날 JPNews가 산케이 신문 인터넷판에 실린 구로다씨의 기사를 올렸다. 구로다씨는 이 기사에서 "한국의 전 TV가 '절규'를 되풀이했다"거나 "나이지리아전이 가슴이 철렁거리게 하는 시소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 '비명'도 계속 이어졌다"며 월드컵에 대한 한국 언론이나 한국인들의 과열된 응원열기가 비이성적이라는 뉘앙스의 주장을 했다고 한다.



물론 기사에 언급된 구로다의 말은 사실이고 그만의 표현방식일 수도 있으므로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의 의도와는 다소 다를 수도 있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그가 한국에 대한 잦은 독설로 논란을 빚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구로다의 말이 다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왜 남의 잔칫집에서 고춧가루를 뿌리고 초를 치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말 다하고 살면 욕은 많이 먹더라도 속은 참 편할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는 구로다씨의 발언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젠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탓도 있겠지만 발언 내용이 그다지 대단하지 않고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에 대한 시기나 질투 정도쯤으로 보였던 탓도 있겠다. 나는 구로다씨의 기사를 읽으면서 '이 사람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일본도 이틀 후에 벌어질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만 기록해도 16강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유리한 상황이었고 그리 된다면 일본도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절규'하고 '비명'을 질러댈텐데 말이다. 구로다씨는 아마도 일본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굉장히 낮게 보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구로다(黑田)는 '모를 내기 전의 논'을 뜻한다고 하는데 구로다씨는 모를 심기도 전에 제초제부터 먼저 뿌릴 정도로 성급한 사람이 아닌가하는 추정을 해봤다. 하여튼 일본이란 나라, 참 불가사의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