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정부의 금양호 처리, 애국심도 침몰한다

천안함의 침몰로 인해 많은 수의 군인들이 실종되거나 사망했고, 천안함 인양과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던 민간 어선 금양호가 불의의 사고로 침몰함으로 인해 여기에 탑승했던 선원들도 모두 실종 또는 사망했다. 그런데 이 두 경우의 실종 및 사망자에 대한 정부의 사후처리는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는데 이를 보고 있으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이 든다.

천안함의 침몰이 상대적으로 더 중대한 사건인 것은 사실이고 조속한 원인파악과 사후처리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그에 못지 않게 금양호에 대한 사후처리 또한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금양호 처리의 문제를 차일피일 미루었고 금양호 실종자 가족대책위원회도 무관심과 정부의 강압에 못이겨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금양호 문제는 종결되어 버렸다.

이제 선거정국에 돌입했으니 국민들의 관심도 선거로 쏠리게 될 것이고 결국 그렇게 그들은 모두에게서 잊혀져 갈 것이다.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고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여야 정치권의 속내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금양호 처리의 문제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의지에 달린 문제다. 천안함 희생자들의 경우 아무런 사고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전사자에 준한 예우로 장례를 치렀던 것과 같은 차원으로 보면 된다.

금양호가 침몰한 후 희생자들을 의사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자 정부에서 처음에 수색작업이 끝나고 돌아가다 사고가 난 것이라 의사자 인정이 곤란하다는 황당한 얘기를 했었다. 그러더니 실종선고를 기다려야 한다는 민법 규정을 들먹이고 있고, 시신이 발견된 2명에 대해서 인천 중구청이 직권으로 의사자 인정을 신청했는데 의사자 심사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려봐야 한다고 하고 있다.

지금은 의사자 인정 심사위원회가 언제 열릴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도 보이는데 어렵게 의사자 심사위원회가 열린다해도 의사자 인정 신청한 2명에 대해 의사자 인정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금양호 희생자들은 시체도 못 찾고 보상도 못 받고 속된 말로 개죽음 당한 것과 같은 신세가 된다. 그냥 생업에 종사했었다면 아무 일 없었을 수도 있었는데 괜히 천안함 실종자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가 이곳저곳에서 험한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자란 직무 외의 행위로 위해(危害)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가 사망한 사람을 말하는데 그들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의사자로 인정받을 수 있기 위한 행위는 모두가 공권력이 해결해야 하는 공무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미처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발생한 재난상황에서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이들은 공무원에 준해서 처리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색작업 중이 아니었다는 황당한 얘기를 할 이유도 없고, 선체 인양은 시도해보지도 않은 채 민법의 실종선고제도를 들먹일 하등의 이유도 없다. 그것이 문제라면 인정사망(認定死亡) 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의사자 심사위원회가 열리길 기다려야 한다느니 그 심사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느니 할 이유도 없다. 의사자 심사위원회는 보건복지부에 두게 되어 있다. 이 모든 건 정부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지 다른 문제가 있어보이지 않는다.

금양호에 탑승했던 선원들이 자발적으로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것은 그들의 사리(私利)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왜 군인들보다 홀대당해야 하는지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그들의 처리가 차일피일 미루어지다가 유야무야된다면 국가적 위난의 상황을 구조하기 위해서 목숨 걸고 앞장 설 사람이 얼마나 나오겠는가. 국방부에선지 군(軍)에선지 누군가가 금양호 선원들은 자발적이 아니라 징발이었다고 말을 했다는 기사를 본 듯한데 인두겁을 쓰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애국이니 안보의식이니 이런 게 틈만 나면 편가르기를 선동질해서 이득을 챙기는 무리들이 써 먹는 레퍼토리처럼 거창한 게 아니다. 맨날 모여서 애국과 안보의식을 강요하고 '때려잡자 김정일'을 외쳐댄다고 애국심과 안보의식이 고취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 천안함 사건에서처럼 국가적 위난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을 구조하기 위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그게 바로 애국이고 안보의식이다. 금양호에 대해 정부가 납득할만한 처리를 하지 않는다면 자괴감과 상실감은 커지고 애국심이나 안보의식도 같이 침몰하게 될 것이다.

"그 희생과 피해의 정도 등에 알맞은 예우와 지원을 함으로써 의사상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맨 처음에 나오는 말이다. 국회에서는 검토해 보겠다고 말만 잘 하고 돌아서면 도로아미타불인 정운찬 총리가 꼭 보았으면 한다. 그 분이 어떤 철학을 갖고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대학자로서의 명성에 걸맞는 양식있는 행보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