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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광화문 복원, 통일세는 현대판 당백전?



15일 광화문이 고종 중건 당시인 1865년 모습을 기준으로 복원되어 공개되었다. 외관상으로는 1865년 고종 때 광화문이 다시 세워지며 당시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이 쓴 글자 그대로를 유리원판 사진을 디지털로 복원해 제작한 현판으로 교체되었고 목조로 복원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광화문 복원에서 가장 의미가 큰 것은 경복궁의 중심축에 맞추어서 복원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이 정면으로 향하고 있는 곳은 관악산이다. 조선을 개국하고 도읍지로 선택한 한양은 비할 데 없이 좋은 도읍지였으나 왕궁인 경복궁을 건립할 때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경복궁이 정면으로 향하는 곳에 위치한 관악산이었다. 산봉우리들이 화염 모양같아 화산(火山)이라 불렀던 관악산과 관악산 자락에 있는 호암산(虎巖山)의 호기(虎氣)가 강해 무학대사는 관악산을 정남쪽에 두고 경복궁을 지으면 화산인 관악산의 기운에 눌려 나라에 큰 일이 날 것이라고 했었다고 한다. 당시 경복궁의 정남쪽을 두고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입씨름을 벌였다고 하는데 결국은 정도전의 주장대로 현재와 같은 방향의 경복궁이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에 경복궁을 건설하면서 관악산의 화기를 억제하기 위해서 상징적인 처방들을 했다고 한다. 관악산 꼭대기인 연주대 부근에 군데군데 물웅덩이를 팠고, 산 중턱에 물동이를 묻었고, 숭례문 앞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만들었고, 숭례문의 현판을 세로로 써서 달았고(崇禮의 두 글자가 위 아래로 있을 경우 불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로써 경복궁을 마주보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광화문 앞에 해태像을 세웠던 것들이 그것이다.

또한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虎氣)을 누르기 위해 호압사라는 절을 창건하게 하였다고 한다. 호암산은 숲보다 바위가 많은데 바위산의 산세가 마치 호랑이가 사냥감을 잡아먹을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호랑이 기운의 산세를 잡아두기 위해 호랑이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자리에 호랑이의 기운을 제압한다는 의미를 갖는 호압사(虎壓寺)란 절을 지었다. 이러한 연유로 호압사는 비보사찰이라는 개념으로 소개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광화문은 헐리게 될 위기를 피하지만 일제는 조선총독부 건물의 시야를 터준다는 이유로 광화문의 위치를 옮기고 방향도 4도가량 틀어놓았다. 그 후 한국전쟁의 와중에 폭격으로 석재만 남고 전소되었던 것을 1968년 박정희 대통령 때에 콘크리트로 중건했지만 당시 경복궁 중심축이 아니라 조선총독부 건물의 축에 맞춰 지어졌다.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 때에 중건된 광화문이 정면으로 향하고 있던 곳은 일제가 한국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서울의 남산 중턱에 세운 조선신궁(朝鮮神宮)이었다. 이 당시에 복원된 광화문의 중심축이 조선신궁을 향하게 된 것은 조선신궁을 향하도록 지어진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심축에 맞췄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심축을 이번에 바로잡은 것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광화문의 현판도 1968년 중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였던 현판을 걷어내고 1865년 고종 때 광화문이 다시 세워지며 당시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이 쓴 글자를 복원했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광화문이란 이름의 유래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햇빛 찬란한 하늘인 光天과 태평무사인 化日이 합쳐져서 태평성대를 뜻하는 광천화일(光天化日)이라는 설과 <위서>에 나오는 천자나 군주에 의한 덕화(德化)를 뜻한다는 설과 중국 고전 서경(書經) 구절인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 밝은 빛이 사방을 덮고 덕이 만방에 미친다)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것은 대단히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설사 풍수적 매카시즘이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굳이 그 자리에 방치해 둘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본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할 때 일본이 "우리가 지은 건물이니 비용을 모두 부담해서 그 건물을 통째로 옮겨가겠다"고 공식적으로 과민반응을 했던 것만 봐도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잘한 결정이었다고 하겠다. 패망한 일본은 바로 다음날 조선신궁 폐쇄행사를 갖고 해체작업에 들어가 그들의 손으로 소각하고 철수했으나 조선총독부 건물은 남겨두었는데 이러한 것들은 광복이 된 후 우리 손으로 직접 했어야 했던게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한다.



이번에 광화문 복원행사에 맞춰서 이 대통령은 통일세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뉴스를 보니 문득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하면서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했었던 것이 떠오른다. 조선정부가 대표적인 악화(惡貨)인 당백전을 발행했던 것은 심각한 국가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함이었다.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경복궁중건사업을 벌이면서 거기에 소요되는 재정을 악화인 당백전을 발행해서 충당하려고 했던 것이다.

남북간에 극단적인 대결구도를 조성해가고 있는 현 정부가 하필이면 광화문 복원에 맞춰서 통일세 발언을 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통일에 대한 시나리오가 무엇인지 모호하다. 남북한간에 긴장과 대결구도를 조성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켜서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시나리오라면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북한을 상대로 한 이 시나리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그 외에 현 정부가 갖고 있는 통일에 대한 시나리오와 비젼은 전혀 알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닷없이 통일세 신설을 들고 나온 이 대통령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남북한은 통일이라는 당면한 숙제를 안고 있고 통일을 위한 비용을 국민들이 분담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통일에 대한 비젼조차도 전혀 내놓지 못하는 현 정부의 통일세 발언은 언어도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통일세를 신설하려면 무엇보다 통일세를 신설해야 되는 당위성과 비젼을 내놓은 다음 그에 대한 국민들의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또한 이 통일세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조세저항이 뒤따를 것이고 통일세로 거둬들인 세금은 투명성과는 거리가 먼 한국의 지도층들의 쌈지돈인 눈 먼 돈으로 변해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