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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전교조 명단공개, 한나라당의 말기 증후군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전교조 교사 명단을 공개하면서 벌어진 후유증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 십수명이 명단 공개에 동참하고 나섬으로써 마치 헌법기관들끼리 충돌하는듯한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형국이 된 것이다. 사법부의 결정을 무시하고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한나라당의 행태는 대단히 몰지각하다. 대한민국은 국회의원이 통치하는 국가가 아니라 법치주의 국가다. 국회의원들이 사법부의 결정을 조폭판결이라 비난하고 집단행동에 나서며 '감히 사법부가 국회의원을 우습게 보다니 맛 좀 보라'는 식으로 사법부를 무시하는 것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헌법과 국민들을 우습게 알고 무시하는 것이며 도리어 그 위에 군림하겠다는 오만방자한 꼴사나운 행태다.

조전혁 의원이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전교조 교사 명단을 공개한 것이라면 사법부의 권위를 무시하면서 계속 명단 공개를 고집할 게 아니라 이제부터는 사법 절차를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계속 명단 공개를 고집한다면 조전혁 의원이 과연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전교조 교사 명단을 공개한 것인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조 의원은 이번 법원 결정에 대해 헌재에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과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 놓았다고 하는데 지금이라도 먼저 명단을 비공개로 돌리고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것은 자존심 싸움의 문제로 볼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합리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명단을 공개할 경우 조합원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취지로 공개금지 결정을 한 법원의 판단은 정당하다. 또한 명단 공개를 강행할 경우 하루 3천만원씩 전교조에 지급하라는 법원의 결정 또한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손해배상의 성격이 아니라 명단 공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법원의 결정을 강제하려는 수단이다. 하루 3천만원이 "아예 뼈와 살을 발라내겠다는 것"이라면서도 법원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데 하루 3백만원 정도라면 법원의 결정에 부담을 갖고 명단을 내렸을거라 예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교사를 선택해서 수업받을 선택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면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가 알권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또는 그 명단의 공개가 무슨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것은 오히려 국민의 알권리를 빙자해 교육 철학과 신념이 다르다고 판단하는 특정 단체를 생매장시키려는 의도로 명단을 공개한 것이라 오인받기에 딱 좋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교조 대 반전교조 구도를 조성해서 6. 2 교육감선거에 이용하려는 것이라는 오해에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일보 이미지 인용)

법원의 결정마저 무시하고 일단 명단 공개를 강행한 후에 '전교조에 소속된 것이 명예스럽다면 명단 공개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거나 '명문학교에는 전교조 소속 교사가 하나도 없다'거나 '좌파 교육을 한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논점과는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이것은 명예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침해의 문제인 것이고 교육철학과 신념에 관련되는 문제인 것이기 때문이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교육 철학이 자신과 다르다고 그들을 빨갱이라 몰아세우고 해체해버리려는 시도는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이념과도 배치된다.

조 의원은 이번 결정을 내린 서울 남부지법 양모 부장판사가 2007년에는 비슷한 사례인데도 다른 판결을 했다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것은 조 의원이 두 경우는 본질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와 관련해서 조 의원의 언행들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데 이것은 조 의원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보좌진의 문제인지 조 의원 개인의 고집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논점을 제대로 본 후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집단행동에 나서며 사법부의 결정을 무력화시키려는 한나라당의 행태는 마치 말기 증후군처럼 보인다. 한나라당의 이러한 행태는 전교조 대 반전교조 또는 좌파 대 우파로 편을 갈라서 이득을 챙기려는 대단히 졸렬한 짓이라는 비난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나라당이 일국의 집권여당이자 공당이라면 이런 한심한 힘자랑은 멈추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처신해야 한다.

조 의원의 명단 공개에 한나라당 십수명이 동참하도록 주도했다는 김효재 의원은 "조 의원 혼자 골목길에서 좌파에게 뭇매를 맞게 해선 안된다"고 제안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의 목적이 국민의 알권리 충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방증이라 추정하기에 충분하다.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은 갈등과 분열밖에는 없고 법원 결정을 무시하면서 이를 강행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폭'적 행동이다. 한나라당이 이런 편가르기를 통해서 이득을 챙기고 법과 국민 위에 군림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여기서 멈추고 법 절차에 따라야 할 것이다.

전교조의 문제는 '나는 옳고 너는 무조건 틀렸다'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름의 문제이고 어느 한 쪽을 죽여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서로 대립하는 주장들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 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명단을 공개해서 논점과 관련이 없는 말들로 본질을 호도하며 분열을 부추겨 온나라를 혼란상태로 밀어 넣을 게 아니라 교육을 입안하는 주관 기관이나 학부모 등이 모두 참여해서 최적의 해결점을 찾아내야 할 문제다. 그게 백년대계라고 하는 교육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의 책임있는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