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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공당임을 망각한 한나라당, 제 눈의 들보부터

강기갑 민노당 의원에 대한 무죄 판결에 이어 PD 수첩에 대한 무죄 판결까지 나오자 한나라당이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 요즘 한나라당에서 터져나오는 말들을 보면 과연 공당이 맞는가 의심하게 만든다. 한나라당에서 내놓은 보도자료 중에서 율사출신인 의원들의 발언들은 그래서 더욱 실망스럽다.

PD 수첩은 기소 자체가 좀 우스운 것이었으니 무죄 판결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보기에 이상할 것은 전혀 없고 당연한 결과다. PD수첩에 대한 기소에 대해서는 검찰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왔었고 처음 사건을 배당받았던 임수빈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 검사는 기소불가 입장을 밝히고 사임하기까지 했었다. 그 후 촛불시위가 잦아들자 수사팀을 교체해서 수사를 재개했고 결국 기나긴 재판과정을 통해 무죄 판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둘러싸고 한나라당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정작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한심한 행태로 보인다. PD 수첩 무죄 판결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수는 있겠지만 법원의 판결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엉뚱한 이념을 덧씌워서 이념 대결로 몰고 가면서 법원 비난에 올인하고 아예 사법부마저 갈아엎을 태세인 한나라당은 공당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 같다.

국민들이 굴욕적인 한미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자 '주변국들도 조만간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 수입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WTO에 제소 당할 것'이라고 국민들을 협박했다. 하지만 현재 WTO에 제소당한 것은 일본이나 대만이 아니라 한국이다. 캐나다는 한국을 WTO에 제소했지만 일본이나 대만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 쇠고기 협정이 마치 한미 FTA의 걸림돌인양 대국민 홍보를 했지만 한미 FTA는 올해도 연내에 미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얘기가 솔솔 흘러 나온다. 한미 FTA 최고의 성과로 홍보되던 자동차 부문은 미국으로부터 재협상 요구마저 받고 있다. 한미 쇠고기 협정을 그렇게 굴욕적으로 서둘러서 한국이 이득을 취한게 도대체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


(헌법질서가 무단횡단은 아닐텐데요)

특히 대만은 '한국 정부와 한나라당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라고 훈계해 준 경우다. 대만은 지난해 한국 수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허용하기로 미국과 합의했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재협상 요구 시위에 직면했다. 한국 정부 여당과 똑같이 미국과의 재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버티던 대만 정부 여당은 결국 국민들의 요구에 응했고 대만 의회는 지난 5일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부위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만 총통의 지지율이 30%까지 떨어지고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대패하자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자릿수에 육박해도 경찰을 앞세워 오히려 국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강제해산시켰다. 대만의 경우는 이미 한국의 선례가 있고 한나라당의 표현대로 '한국 시중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정상적으로 소비되고 있기에'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미국의 양해를 구하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만 정부 여당이 보여 준 일련의 집행 과정은 한미 쇠고기 협정의 졸속 타결을 합리화하려고 했던 한국의 정부 여당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나라당은 PD 수첩을 물고 늘어지고 법원을 비난하는데 올인할게 아니라 집권여당으로서 먼저 수치스러워해야 하고 국민들에게 사죄하는게 순서가 아닐까한다. 나같은 필부도 BSE, CJD, vCJD, OIE, 다우너소 등 광우병 관련한 상식은 있다. 촛불집회 와중에 한국의 정부 여당이 '촛불을 든 이들은 과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과장과 왜곡에 찬 선동을 따라 길거리에 나선 것'이라고 몰아붙이던때 미국에서는 다우너소 도축 금지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도 NYT를 통해서 보았다. 이번 법원의 무죄 판결이야말로 '국민의 건강한 상식이고 보편적 양심에 부합'하는 것이다.

강기갑 의원에 대한 무죄판결도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한 공무집행에 대해 저항하는 어느 정도의 폭력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 무리하게 공무집행 방해죄로 기소를 한 검찰과 그렇게 지시한 정부 여당에게 잘못이 있다. 국회내에서의 폭력을 금지하는게 목적이라면 폭력을 문제삼아야 하는게 법리를 떠나 논리적으로도 맞다.


(법원 앞에서 항의  보수국민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MBC ‘PD수첩’ 제작진에 무죄 판결을 내린 문성관 판사와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퇴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두 사람이 즉각 퇴진할 것을 요구하는 구호 등이 붙어 있는 종이 박스를 태우고 있다. 사진 - 동아일보)

이 판결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었다는 어떠한 것도 찾을 수가 없다. 피고인이 민노당 의원이고 민노당 의원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는 이유로 '이념 대결'로 몰고 가면서 일부 보수단체의 과격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면 완전한 판단착오다. 이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서 편향된 이념적인 시각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것이다.

"숨죽인 정권붕괴세력에 홍위병식 광풍을 몰고 올 죽창을 쥐어준 꼴"(장광근 사무총장), "'사법 판결'이 아닌 '사법 정치'", "사법 독선"(안상수 원내대표), "군대의 하나회 비슷한 사조직이 집단적 움직임 주도"(정몽준 대표). 이게 과연 집권 여당인 공당에서 내놓는 보도자료인지 의심스럽다. 한나라당으로서는 판결결과에 납득하지 못할수도 있지만 집권여당으로서 걸맞는 언어로 정당하게 의견을 표출해야 공감대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내놓은 보도자료 중에 '경력 10년 이상 검사나 변호사를 법관으로 임용'하자는 의견도 보이는데 시도해 볼만은 하지만 한국의 실정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10년 동안이나 정치 검찰로 잔뼈가 굵은 검사를 법관으로 임용한다면 사법의 독립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한국 전체의 시스템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사법부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것은 한나라당의 발등을 찍는 도끼로 되돌아갈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