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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미디어와 언론

김형오 의장님 숨을 곳은 없습니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진행이 참 요상스럽다. 지난 9일엔 최거훈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이상한 기자회견을 하며 민주당에게 헌재에 부작위심판을 청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민주당이 헌재에 국회의장의 부작위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당론으로 하겠다고 하더니 드디어 헌재에 부작위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청구 서류를 접수했다.

이 사람들 전부 눈치보기 게임을 해서 승리한 사람들만 국회의원이 된 건지는 몰라도 눈치보기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눈치보기 전문가들이다. 한마디로 서로가 부담을 떠안기는 싫다는 것이고 누구도 책임지고 싶지는 않으니 일단 헌재로 떠넘기고 시간이나 벌어보자는 얘기들로 보인다.

지난 9일 최거훈 국회의장 비서실장의 기자간담회는 대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이런 황당한 기자회견을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나서서 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 기자회견의 내용은 관전자의 입장에서는 고려할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거기에 대해 민주당이 즉각 화답하고 나서며 또다시 헌재로 달려가는 것을 보니 이들 사이에 무슨 딜이 진행되었던 것은 아닌지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고 슬슬 짜증이 밀려 온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기관이지 해석하는 기관이 아니고, 국회의장의 의중이 반영되었다고 하더라도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나서서 함부로 말을 해도 되는건지와 같은 뻔한 얘기는 접어두자. 그렇더라도 지난 7월 미디어법 강행 처리 당시 직권상정 권한을 행사하고 질서유지권을 발동하는 등 헌재의 결정문대로 위법한 절차에 의해 야당 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했고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법률안을 가결 선포한데 대해 상당한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바로 국회의장이다. 그러면 굳이 헌재에 심판을 청구하지 않더라도 거기에 대한 대국민 사과부터 하고 헌재의 결정문대로 위법상태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하는게 옳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젠 헌재의 결정문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나몰라라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 있으면 부작위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라'고 배짱을 부리는 국회의장을 대체 어떻게 봐줘야 되는지 모르겠다.

헌재의 결정문을 보면 '의사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된 후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즉시 재투표에 부쳐 가결한 것이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했고, 권한이 없는 사람에 의한 임의의 투표행위나 대리투표로 의심받을 만한 행위 등 극히 이례적인 투표행위가 모두 인정되어 위법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거 솔직히 이 정도의 저급한 행위를 했다면 무엇보다 먼저 수치스러워해야 정상인 것 같은데 또 다시 헌재의 판단을 받으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언론악법 재논의 촉구, 헌재결정 수용!'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중인 민주당 사퇴 3인방이 아침을 맞는 모습
출처 ; 천정배 민주당원 블로그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위법행위에 대해 법 해석기관에 달려가 위법한 행위가 맞는지 판단해달라고 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치스럽고 우스운 일인데 이젠 그 위법행위의 시정을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으니 헌재는 자신들의 위법행위를 시정하라는 판단까지도 해달라고 헌재로 달려가 떼를 쓰고 있다.

한나라당이야 어차피 국회의장 뒤에 숨어서 국회의장을 압박하기만 하면 되고 여야 사이에 낀 국회의장은 나 혼자서만 희생양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 욕을 먹든 뭘 하든 헌재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얘기로 보인다. 국회의장이 당시에는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한나라당이 지원하고 방어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상황에서 국회의장의 언행은 입법부의 수장의 그것이라고 보기엔 너무 무책임하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디어법 논란과 관련해 상당부분은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책임이 있다. 헌재에 의해서 명백히 결론이 내려졌음에도 이마저도 외면하려고 한다면 국회의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의 뒤에 숨을 수 있지만 국회의장은 숨을 곳이 없다. 국회의장으로서의 직무를 소신있게 처리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의사가 없었다면 당적을 포기하면서까지 국회의장이 되지는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