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선수의 인터뷰는 전형적인 물타기다. 정치판에서 주로 쓰는 구태의연한 어법과 다를 바가 없다. 매스 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딴 후 열린 기자회견 말이다.
 
이승훈은 특별관리를 받고 있는 선수로 지목되었을 뿐이니 그에 대해서 어떤 사과나 변명을 해야 할 이유나 필요가 없다. 이승훈도 연맹과 코치진의 결정에 따라 운동을 해야만 하는 대표선수단의 일원이지 그러한 결정을 하거나 그와 관련해 책임질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일 테니 이승훈 선수가 물타기를 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사전에 연맹과 코치진으로부터 지시가 있었고 이승훈도 그에 동의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발언한 거라면 다르게 봐야겠지만. 어떻든 이승훈의 의도 유무와는 상관없이 그 인터뷰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물타기가 이루어졌고, 목하 진행중인 노선영 선수를 또다른 희생양으로 삼아 정작 책임져야 할 자들은 빠져나가려는 비루한 공작의 계기가 됐다.
 
매스스타트는 개인전, 팀추월은 단체전
 
매스스타트는 개인전이지 단체전이 아니다.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롱트랙의 유일한 단체전은 팀추월이고, 쇼트트랙은 계주가 단체전이다. 실질적 의미에서 국가를 위해 경기하는 선수들은 단체전 선수들이고 그래서 각국 팀으로 불리며 경기를 한다.
 
이승훈 선수의 인터뷰는 개인전과 단체전의 경계가 명확하게 되어 있지 않아 팀플레이만 집중적으로 부각됨으로써 마치 매스스타트가 단체전인 것처럼 인식되어졌다. 올림픽에서 한국팀이고 그래서 단체전이라는 논리는 맞지 않다. 단체전이 아니니 당연히 팀플레이 운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하겠다.
 
포털 메인에 걸린 한심한 기사가 뜬금없이 끌고 들어온 이상화 선수가 팀플레이를 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개인전인 매스스타트에 출전한 이승훈과 김보름이 팀플레이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하겠다. 그들이 딴 메달은 그들 개인의 메달인 것이지 함께 참가해 팀플레이를 했다는 타 선수도 그 메달을 따지는 않는다. 반면에 단체전인 팀추월과 계주는 그들의 팀플레이가 어떠했든 누구의 경기력이 저조했든 그들 모두는 같은 메달을 따게 된다.
 
국가대표 = 이승훈의 '탱크'
 
국가대표 선발이 이승훈 또는 다른 누군가의 개인적 메달을 따게 하기 위한 '탱크'의 역할만 해줄 선수를 선발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고, 그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는 빙상 연맹과 코치진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방치되거나 제외된다는 게 현재의 쟁점인 것 같다. 그 원인이 빙상 연맹의 파벌에 있다는 것인데 빙상인이 아닌 외부에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규정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무식하고 무능하고 누구도 책임 안 지는 몰염치한 집단이라는 비판은 할 수 있다.
 
특정인의 개인적 메달을 따려는 목적만으로 선수를 선발하고, 한국팀이라는 범주에 욱여넣어 타인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현재 시스템의 문제라고 하겠다. 이처럼 개인에게 일방적인 복종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갖고 팀플레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에 가깝다.
 
만약 우수한 선수들이 객관적인 기준과 평가에 의해 대표 선수로 선발이 되고, 그렇게 선발된 선수들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과 평가에 따라 '탱크'를 하고 메달을 딸 선수를 지원해주는 역할이 결정되거나 또는 선수들끼리 수평적 관계에서 국가의 메달 수를 늘린다는 전제에 동의하고 서로 소통해서 정해지는 시스템이라면 현재의 논란은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라도 단체전은 아니니까 그러한 각각의 역할을 팀플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선수들간의 양보와 배려인 것이며 납득할 만한 과정을 거쳐야 의미가 있다. 그리고 개인전에 출전하는 선수가 단체전에도 출전한다면 단체전의 팀플레이를 위한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알려지기로는 연맹과 코치진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강요해왔고 수용하지 않으면 대표 팀에서 제외되거나 개인전 출전 선수들만 특별관리함으로써 정작 팀플레이가 절실하게 필요한 단체전 선수들은 방치되었고 적절한 훈련을 거의 하지 못 했다.
 
단체전인 팀추월의 경우 여러 강팀들의 경기를 보면 누가 선두에서 몇 바퀴를 탈 건지 등을 결정하고 상당한 훈련을 해왔던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일본 여자 팀추월 팀은 어메이징하다. 한국팀은 사전에 훈련을 통해 누가 선두에서 몇 바퀴를 타고 랩 타임을 얼마를 끊을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 조율했었는지 의문이 든다. 이것은 사전에 코치진과 선수들이 충분한 훈련과 소통을 통해 결정했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백철기가 '경기 직전에 얘기를 했다 안 했다'는 것으로 진실게임을 하는 것은 스스로 한심하고 무능하다는 자백으로 봐야 하지 않나?
 
백철기의 인식이 곧 뇌물
 
백철기의 인터뷰를 보면 가관이라는 말밖에 안 떠오른다. "이승훈을 페이스메이커로 써야 하나요"라는데 이것은 메달을 딴 이승훈을 끌어들여 감성을 자극한 논점 흐리기에 불과하다.
 
백철기가 "팀추월 경기에서는 이승훈이 탱크로 나선 셈"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재 논란이 되는 '탱크'는 단체전인 팀추월 경기에서 앞서는 선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개인전인 매스스타트에서 이승훈 또는 김보름의 개인적 메달을 딸 가능성을 높여주는 역할만을 해줄 목적으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는 선수를 말한다.
 
개인전인 매스스타트에서 '탱크'는 전략이라기보다는 일방적 희생의 강요이고, 단체전인 팀추월에서 선두에서 경기하는 선수와 그가 몇 바퀴를 끌어주었을 때 기록이 좋은지 등이 바로 단체전인 팀이 메달을 따기 위한 전략이며 그게 팀플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대표팀은 개인전 출전 선수들을 특별관리함으로써 정작 단체전인 팀추월에서는 이러한 팀플레이 훈련을 해오지 않았던 것이고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거나 방치돼 왔다는 것이다.
 
백철기는 이승훈도 희생을 했다며 몰아가려는 것 같은데 이승훈 또는 김보름이 단체전인 팀추월에서 선두에서 몇 바퀴를 탔던 그건 결국 그들의 개인적 메달을 늘리는 것이 되니 그러한 단체전 전략을 갖고 희생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말인즉슨 '탱크' 논란은 단체전인 팀추월이 아니라 개인전인 매스스타트에서 이승훈 또는 김보름을 위해 희생을 강요하는 문제다.
 
일본 여자 팀추월 팀은 금메달을 땄는데 해당 팀의 주축 선수인 다키기 미호 선수는 개인전에서도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그런데 그녀는 팀추월 메달을 위해 연 300일 이상을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했고, 경기에서는 세 바퀴 반 이상을 선두에서 탔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들이 메달을 따기 위해 수많은 훈련을 해본 결과 나온 전술이며 팀플레이인 것이지 이것을 갖고 그녀가 희생을 했다고 하는 것은 몹시 바보스러운 짓이다.
 
게다가 그녀는 단체전인 팀추월과 개인전 등 순전히 기록 경기에서 세 개의 메달을 따냈다. 반면에 한국은 기록보다는 단지 순위만 중요한 개인전인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개인의 메달 가능성만을 위해 단체전인 팀추월 훈련도 방치되었고, 개인전 순위를 등한시해도 된다고 지시함으로써 선수 개인의 올림픽 참가 자격 없음으로 판명나 선수 개인의 선수 인생을 망쳐버렸다. 이제 백철기와 연맹은 이승훈도 희생했다는 가당치도 않은 궤변으로 선수 개인을 매장시켜서 그 모든 과오를 무마시키려 하고 있다.
 
쟁점은 백철기가 언급했듯이 '올림픽 경기는 선수들끼리 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것'인데 한국의 연맹과 코치진은 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미리 정해놓고 그에 따라 선수를 선발하고 훈련을 해왔으며 그에 동의하지 않는 선수는 제외되거나 방치해왔다는 것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과 평가에 따른 결정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이고 문제제기다.
 
백철기가 "정재원 선수도 하나를 얻었으니까(팀추월 은메달) 이승훈 선수에게 하나를 줄 수 있는 선수"라고 했다. 이게 웬 황당한 궤변인지 어이가 없다. 이승훈 선수가 팀추월 은메달을 따서 정재원 선수에게 주기라도 했다는 건가? 정재원 선수도 세빠지게 훈련하고 경기해서 따낸 메달이 아니라 이승훈 선수가 잘해서 메달을 따게 해주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승훈 선수의 '탱크'를 해준 댓가로 특정 선수가 단체전인 팀추월에 참가하지 못 했고 대신에 정재원 선수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세간에서 제기하는 의혹이 맞다는 건가? 이게 맞다면 이승훈 선수도 여기에 동의했을 거라는 건데 그렇다면 이승훈 선수도 연맹 코치진과 공범인 가해자로 봐야 되는 것이고 전혀 다른 논점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로 변한다.
 
백철기가 '너가 얘를 도와주면, 다음에 얘도 너를 도와주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그러한 인식이 뇌물을 주고 받는 자들 간에 갖는 인식이다. 그런데 이게 맞지가 않다. 정재원이 이번에 희생해서 이승훈 메달을 따도록 도와줬지만 4년 뒤 올림픽에서는 이승훈이 희생해서 정재원의 메달을 따도록 도와주는 상황이 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두 선수 다 4년 뒤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승훈이 희생하거나 정재원이 금메달을 딸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관점을 바꿔서 만약 이번 올림픽에서 이승훈이 '탱크'를 하고 정재원이 뒤에서 힘을 비축했다면 정재원의 메달 색깔은 어땠을까? 이승훈은 '탱크'를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물론 지나간 것에 대한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연맹의 행태에 비추어보면 이승훈이 만약 '탱크'를 거절했었다면 연맹과 코치진의 특별관리를 받지 못했을 것이고 단체전인 팀추월 훈련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정재원도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언제든 당할 수 있다. 이승훈이 선수 생활을 연장한다면 여전히 이승훈의 '탱크'를 하게 될 것이고, 4년 뒤 올림픽에서도 이승훈의 기록에 더 큰 의미를 둔다면 또 '탱크'로 나서야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정재원의 메달 가능성이 더 높은가의 여부는 현재의 시스템 하에서는 의미가 없다. 정재원이 4년 뒤 올림픽에서 여전히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지도 모르는데 이번에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야말로 희생만 한 꼴이다.
 
또한 향후 4년 동안 정재원보다 더 우수한 선수가 출현한다면 정재원은 그때도 팀플레이라는 명목 하에 '탱크'로 희생하라고 강요받는 날이 올 수도 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이승훈이 워낙 유명한 선수이고 우상으로 느껴질 수 있을 테니까 '탱크'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그게 간단히 결정될 성질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단순히 국가의 메달 수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누군가의 희생이 수반되는 '탱크'가 효과적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선수들과 코치진 간에 충분한 소통과 논의를 거쳐 서로간에 양보와 배려 및 협력 관계를 이루어서 결정되었을 때에 전략이 되는 것이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맹과 코치진이 사전에 일방적으로 결정해놓고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전략이 될 수 없으며 권력에 의한 강요일 뿐이다.
 
지금 판단해야 할 것은 올림픽에서 한국의 메달 수 하나의 가능성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게 힘을 실어줄 것인가이다. 운동만 하고 살아온 선수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힘을 실어줄 것인가? 현재 진행중인 노선영 죽이기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해답은 사실 역지사지해 보면 간단하다. 꿈을 갖고 열심히 운동만 하고 살아왔는데 누군가의 메달 가능성을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고 거절하면 불이익을 받거나 기회마저 박탈당한다면, 국가의 메달 수를 늘리기 위해 희생했으나 메달 딴 선수에게만 모든 스포트라이트와 지원 그리고 혜택이 집중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일 테니까.
 


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ohn Doe 2018.04.08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