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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김명민의 아우라가 어른거리던 드라마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보면 특정 캐릭터의 경우에는 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 해당 작품과는 관련이 없는 다른 배우가 연상될 때가 간혹 있다. 연출자가 캐스팅을 결정할 때도 고심을 거듭하겠지만 완성작을 감상하는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연상하는 배우가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좀 더 적합한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이것은 그 작품의 완성도나 실제 연기하는 배우의 연기력과는 별개의 문제로 보면 되겠다.

영화배우나 연기자들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부터는 소설책을 읽다가도 특정 연예인을 염두에 둔 듯한 캐릭터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아마도 작가가 그 특정 연예인의 열혈팬이 아닐까 추론해 볼 정도로 마치 특정인을 모사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존 인물과 유사한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럴 때는 만약에 해당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제작하는 경우에는 특정 연기자를 캐스팅한다면 꽤 그럴싸한 그림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자이언트'가 바로 이랬던 경우다.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시청했던 것은 아니고 간혹 주말에 재방송을 보고는 했었는데 그때마다 '자이언트'에 등장하는 이강모 역은 계속해서 김명민이 어른거리고는 했었다. '자이언트'의 이강모 역은 이범수를 캐스팅함으로써 이범수의 이미지에 맞게 어느 정도 대본 수정의 과정을 거쳤겠지만 이강모 역은 아무래도 김명민을 염두에 둔 듯한 캐릭터였다는 생각을 끝까지 떨쳐내게 하지는 못했다.



드라마 '자이언트'의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이강모 역에는 김명민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아마 그런 해프닝이 없었더라도 이강모 역을 보면서는 나는 김명민을 떠올렸을 것이다. 만약에 김명민이 이강모를 연기했더라면 실제로 어떤 캐릭터가 탄생했을지 드라마의 성적은 어땠을지 이러한 가정을 전제로 추론해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좀 더 입체적이고 디테일한 캐릭터가 탄생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고 이범수의 연기력에 대해서 평가하거나 폄론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정도로 이강모 역을 보면서는 김명민의 아우라가 어른거렸다는 얘기를 하고자 함이다.

드라마 '자이언트'는 방영도 하기 전에 커다란 논란이 되었다. 드라마 제작진이 1970~80년대 경제 개발이 이뤄진 서울 강남 지역 개발을 배경으로 건설현장에서 성공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기획의도를 공개하자 이명박 대통령을 미화하는 드라마라는 우려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결과적으로 루머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특정 배우를 압박해서 드라마 출연을 금지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명민의 '자이언트' 출연이 결정되었다는 한 언론보도가 나오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김명민의 드라마 출연을 막기 위한 움직임은 해당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부담을 갖기에 충분할 정도로 심각하게 번졌다. 김명민이 '자이언트'에 출연하는 것이 결정되었다는 한 언론보도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김명민 소속사측과 '자이언트' 제작사측 간의 불협화음도 김명민이 '자이언트' 출연을 거절한 하나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명민의 '자이언트' 출연을 반대한다는 청원까지 등장하는 상황이었기에 이러한 부담도 상당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드라마의 정확한 내용을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현존하는 특정인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극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역사적 사실을 바꾸고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는 드라마에 대해 단순히 사실(史實)과 다른 내용을 지적했을 뿐임에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설사 특정인을 미화하는 드라마였다고 하더라도 그런 경우는 '드마라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다른 속사정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떤 경우가 됐든 악용하고 왜곡한다면 비판의 잣대로 보는 게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가 특정인을 미화하고 악용될 수 있는 거라면 드라마 제작을 막는 데에 비판을 집중해야지 특정 배우의 출연을 막으려고 압박하거나 출연을 결정한 배우들을 쫓아다니며 욕설을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물론 특정 배우를 아끼는 팬으로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어떤 드라마에의 출연을 반대하는 의사를 표현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루머를 동원해서 조직적으로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자이언트'는 그리 좋게 평가할만한 드라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끔 재방송을 보다가 보면 이강모란 캐릭터는 '육백만불의 사나이'나 '터미네이터'쯤은 되는지 죽여도 죽여도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 밑바닥에서 고생하지만 그 중에는 필히 큰 도움을 주는 은인이 나타나고 모르는게 없고 못하는게 없어 정관재계의 고위 인사들을 떡주무르듯 하는 가히 신이라 불릴만한 인물이다. 드라마의 내용도 애초의 거창한 기획의도와는 달리 종국에는 삼남매의 단순한 복수극을 마지막으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드라마 '자이언트'는 우여곡절 끝에 이범수가 캐스팅되는 등 드라마가 시작도 하기 전에 논란의 대상이었으나 동시간대 시청률 1위로 올라서며 기획된 50부작을 연장해서 60부작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자이언트'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강력한 경쟁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중도하차하는 등 운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난과 부담을 감수하고 출연해서 연기했던 이범수의 역할도 컸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래도 이강모란 캐릭터는 여전히 김명민의 아우라가 어른거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김명민이 연기했다면 이강모는 어떤 캐릭터로 창조되었을지 드라마가 끝이 난 지금도 나는 궁금하다. 명확하지도 않은 사실관계만 가지고 특정 배우의 출연을 방해하기 위해 압박하는 부적절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특정한 배우가 출연한다고 해서 드라마가 악용되는 목적보다 좋게 평가받고 시청률도 올라갈 거라는 발상은 순진하다 못해 단순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