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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시크릿가든' 성추행을 대하는 바람직한 장면

   
   
   
SBS 특별기획 드라마 '시크릿가든', 예전의 '체인지'란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같다는 생각으로 보지 않던 드라마였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채널을 돌려가며 드라마 재방송을 보다가 성추행과 관련한 눈에 띄는 에피소드가 방송되었기에 기록해 보고자 한다. 드라마에 등장했던 성추행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실제로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성추행을 대하는 꽤 바람직한 장면이 삽입되어 있었다.

이 드라마가 꽤 분량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데 그동안 시청하지 않았기에 정확히 어떠한 갈등구도가 형성되고 진행되어 왔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그에 연관된 정황은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소개를 보면서 추정하고 꿰어 맞추어 보았다.

길라임(길택자 ; 길라임과 같은 방을 쓰는 단짝 친구인 임아영은 길택자라고 부르는데 길택자가 본명이 아닐까 짐작되나 정확한 건 모르겠다)은 김주원과 몸이 바뀌어 있는 관계로 김주원의 몸으로 백화점 사장역을 수행하게 되는데 김주원이 까칠하게 굴었던 박봉호 상무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게다가 길라임은 결재서류에 김주원의 사인까지도 변경함으로서 박봉호 상무를 당황스럽게 한다.



길라임이 사장실로 올라가는데 백화점 한 코너에서 백화점의 여점원과 손님 사이에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점원은 왜 엉덩이를 만졌느냐고 따지고 대들고 있고 손님은 내가 언제 그랬냐며 오히려 여점원에게 치수 재는 척하면서 몸을 밀착시키고 부볐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중이다. 손님은 더 나아가 십년째 백화점 VVIP인데 잘리고 싶냐며 협박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손님이란 자가 여점원을 성추행한 것이 처음이 아닌 상습적이었던 모양이다. 여점원은 저번 달에 왔을 때도 추행을 했지만 그 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았는데 두돌 된 딸 얼굴을 볼 수가 없다며 따지고 대든다. VVIP란 자가 여점원에게 잘리고 싶냐고 으름장을 놓지만 여점원도 이번에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는지 '변태자식, 나쁜 새끼'라고 막말을 하며 VVIP에게 맞선다.

성추행 현행범인인 VVIP는 궁색해지자 '당장 사장 오라고 하라'고 말을 돌리는데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길라임이 사장이라고 VVIP 앞에 나선다. VVIP는 사장이 너무 젊어서인지 약간 당황해하나 '직원 교육이 전혀 되어 있지가 않다'며 명함을 꺼내더니 '사실 서로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일텐데'라고 말하며 길라임에게 명함을 건네 준다. 그러자 흥분한 길라임은 '저기 죄송한데 입 닥치시고 어금니 무세요 턱 나갑니다'라고 말하며 VVIP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임아영의 표현으로는 '변태 자식 얼굴에 뻑 선빵을 날린 다음에 레프트 라이트 훅 어퍼컷으로 마무리하니까 그 자식이 뻥 나가떨어지면서 쌍코피 팍'이었다고 하는데 속된 말로 길라임이 VVIP란 변태자식을 아주 죽사발(粥沙鉢)로 만들어 놨다는 얘기가 되겠다.



이상의 에피소드는 현실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장면으로 보인다. 여점원 하나 성추행 당했다고 사장이 VVIP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경찰서에 갔다면 아마 미쳤다는 소리나 들을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성추행을 당하는 여점원들이 있겠지만 상대가 VVIP라면 그냥 적당히 무마시키거나 드라마상의 VVIP의 협박처럼 백화점에서 잘리게 될 것이다. VVIP가 현행범인인 주제에도 여점원을 협박하고 사장인 길라임에게 명함을 건네며 '사실 서로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일텐데'라고 말을 하는데 변태자식인 VVIP의 언행에는 대충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임아영으로부터 VVIP 폭행 소식을 들은 김주원은 길라임이 있는 경찰서로 와서 길라임에게 아마도 자기였다면 '경찰 부르고 신상파악하고 CCTV 자료 확보하고 고소를 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상대가 백화점 VVIP라면 실제로 이렇게 하는 사장도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성추행을 당한 여점원이 직접 CCTV 화면을 확보해서 경찰을 불러 고소하고 처벌을 요구한다면 성추행 사건은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아마 그 여점원도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만약에 CCTV 화면 자료와 같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애꿎은 여점원만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열 받은 김주원은 길라임에게 고생 좀 해보라며 절대 빼주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돌아서 나간다. 그러다가 성추행범을 보자 '저 변태양반 저기 저 깡패같은 자식이랑 절대 합의해주지 마세요. 아주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고 저런 자식은. 힘 내시고'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지는데 그 순간에 길라임과 김주원은 몸이 바뀌게 된다.

제 몸으로 돌아 온 길라임은 경찰서 안으로 들어 와 김주원 역시도 제 몸으로 돌아왔음을 알고는 환호한다. 그리고는 김주원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이 씨가 된다며 유치장 안에서 고생 좀 해보라고 말하고 돌아 나가다가 역시 성추행범인 VVIP에게 다가가서 '변태 양반 절대 합의해주지 마. 아까 완전 세게 맞았잖아. 그리고 직원분께 빌어라. 안 그럼 죽는다'고 말한다.



성추행범인 VVIP는 '너 뭐야? 뭔데 아까부터 사람 열받게 해. 나 잘 모르나본데 내가 합의가 뭔지 모르고 살아 온 올곧은 반평생이야'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형사가 '조용히 안 해요? 뭘 잘했다고 떠들어요'라고 면박을 주고 길라임은 형사에게 수고하라며 인사하고 나간다. 당황한 김주원이 '어디 가? 그냥 가면 어떻게 해. 끝까지 함께 해야지'라고 소리치지만 형사로부터 '거 댁도 좀 조용히 해요'라고 핀잔을 듣고 설상가상으로 '변호사 올 때까지 일단 집어 넣어'라고 지시함으로써 까칠하고 콧대 높던 백화점 사장 김주원은 경찰서 유치장에서 1박2일을 하게 된다.

한편 박봉호 상무가 김주원의 외조부이자 백화점이 속한 그룹 창업주인 문창수를 찾아 와 김주원에 대한 일을 보고한다. 문창수는 김주원이 대체 왜 VVIP를 팼느냐고 박봉호에게 묻는다. 박봉호는 '고객과 여직원 사이에 신체 접촉이 있었는데 여직원이 과민반응을'이라고 대답하는데 이 때 박봉희가 단호하게 박봉호의 말을 자르고 나선다.

박봉희는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가 어딨어? 성추행은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상황을 막론하고 성립되는거야. 그걸 왜 과민반응으로 치부해. 그리고 그걸 남자가 보고만 있어? 백번 생각해도 김사장이 잘한 일이지'라고 말한다. 박봉호가 '누님 그게 아니라'라고 변명하려고 하지만 박봉희는 '시끄러. 쓸데없는 소리 할거면 가'라고 쏘아붙이고 문창수를 향해서는 '회장님은 하던 거나 하세요'라고 말하며 상황을 정리해 버린다.

성추행과 관련한 두 남자의 말문을 일거에 막아버린 박봉희의 이러한 언행은 여성들이 성추행을 대하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보아하니 박봉희는 문창수의 네 번째 부인으로서 만난 지 삼백일을 맞는데 김주원과 그룹 경영자의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박봉호의 누나이기도 하다. 이들 사이에 정확히 어떤 갈등구도가 형성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겠으나 성추행과 관련한 박봉희의 태도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등장한 성추행 에피소드는 사회 구성원들이 성추행 사건을 대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극화했다고 할 수 있다. 성추행 피해자인 여점원의 적극적인 대처에서부터 사장이나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그리고 당사자가 아닌 박봉희가 성추행 사건을 대하는 인식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가장 바람직한 장면들로 전개되었다.

벌써 네 번째 부인과 살고 있고 연예인과의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는 호색한으로서 드라마상의 성추행범인 VVIP와 '사실 서로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일 문창수가 찍소리도 못하게 입을 막아버린 장면은 상징적인 의미까지도 부여해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돈과 권력을 이용해 어리거나 힘 없는 연예인들로 하여금 성상납을 시키거나 받고 그로 인해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서도 죄의식조차도 없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변태자식들의 상징이 문창수로 보이기에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변태자식들이 어떤 반성을 한다거나 바뀔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